90년대에 들어서자 사회적 분위기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6.29를 이끌어 냈던 민주화의 열풍은 한 때 야권에 몸담았던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으로 한 풀 꺾였다. 시민들은 더 이상 시위대에 빵을 사다 주지 않았다. 최루 가스를 감수하면서까지 응원하던 이들은 사라지고, 막히는 도로와 매운 연기에 모두 한두 마디씩 불만을 내뱉었다. 이제 살만해졌는데 왜 그러느냐고. 이정도면 민주화 아니냐고.


우리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아직도 세상에 바꿔야 할 것은 너무 많은데 깃발을 들어도 따라주는 이도 없었고, 숨으려고 해도 숨겨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 시기였다. 고등어가 나온 것은. 


동아리 방 긴 의자에 누워 누군가 먹다 남긴 것 같은 ‘고등어’를 처음 읽었다.













살아있는 고등어 떼를 본 일이 있니? 그것은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 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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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유도 모르고 헤엄치고 다니다 결국 좌판에 누워 누군가에게 팔리기만 기다리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누군가의 밥상머리에 올려질 때 우리는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후회하는 것인가? 같은 시기에 나온 최영미라는 시인의 시는 나의 허무주의를 더 자극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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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의 치열한 삶이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열정을 뿜어지지 못한 채 간직한다면

우리의 고뇌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음 해 나는 바로 군대에 갔고, 전역하고 나니 나의 고통의 90년대는 저물고 있었다. 나는 어느 투박한 아낙의 손에 창자를 난도질 당하고 시장 좌판에 누워 있는 현실을 두려워 했고, 누군가의 술안주가 되어 번개탄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악몽을 매일 꾸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런 두려움조차 이제는 사라져서 물이 흐르는 대로 부유하는 시체만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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