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
성석제 엮음 / 창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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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유쾌하고 즐겁고 꼬인 데 없이 깔끔하고 맑은 느낌의 작가 성석제가 이번엔 우리 문학의 좋은 문장들을 찾아 배달해주는 문학 집배원이 되어 돌아왔다.

문체가 시원스럽고 황당한 이야기도 시치미 뚝 떼고 술술 풀어내는 글발로 봐서는 말발도 시원, 유창할 거 같았는데, 실제로 강연을 들어본 성석제는 어찌나 수줍어하면서 주저주저하면서 말을 이어가던지 살짝 안쓰럽기도 하고 심지어는 조금 실망이 될 정도였다. 그건 사실 <소풍>에서 입가에 검은 소스를 잔뜩 묻히고 정신없이 자장면을 먹는 소년 같은 모습이기도 해서, 곰곰 생각해보면 맑은 소년 같은 얼굴의 아저씨라고나 할까. 내게 성석제는 그런 편안한 느낌의 작가였다. 그런 옆집 아저씨가 내게 문학 편지를 배달해주는 집배원이 된 거다.   

‘저는 저수지 가득한 잘 익은 술과 같은 아름다운 빛깔의 문장이 많은 사람의 가슴과 머리로 흘러갈 수 있도록 수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일을 잠시 맡았습니다.
문장에는 아름답고 슬프고 즐겁고 힘찬, 인생 희로애락애오욕의 모든 특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 문장이 냇물과 도랑을 따라 흘러갈 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냇가를 따라 달리셔도 좋고 도랑에 발을 담그셔도 좋습니다. 문장으로 푸르러진 마음의 풀밭에 누워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시든가요.
저수지의 물로 세수를 하고 둑 위에 서서 얼굴에 묻은 물을 바람에 말리던 때를 떠올립니다. 수문 반대편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에 바람이 집을 짓던 것처럼 모든 문장은 자연스럽게 제자리에 깃들이는 법이니 이 자연스러움에 흔연히 함께해주시기를.’

사실 처음에 책을 보고서는 별로 땡기질 않았다. 그냥 뭐랄까. 스테이크면 스테이크, 김치찌개면 김치찌개 또는 라면이면 라면... 한 맛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음식 대신에 왜 잡탕 찌개의 느낌이랄까. 이것저것 마구 때려 넣어서 그 어떤 맛도 아닌, 그저 먹을거리 정도랄까, 그랬다. 그랬는데, 막상 저녁마다 조금씩 읽다 보니 정말 각각의 글이 각자의 맛을 곱게 내고 있었다. 마치 구절판 같다고나 할까. 따로 각각의 맛을 간직하면서도 함께 먹으면 최고의 맛을 내는 구절판 말이다.

왜 아니겠는가. 성석제 집배원이 찾아낸 우리 문학의 최고 문장들이니 말이다. 이문구, 김유정, 이기호, 채만식, 박완서, 황순원, 김구, 로얼드 달, 김중혁, 공선옥, 백가흠, 윤성희, 양귀자, 김승옥, 최명희, 박지원, 김연수, 권여선 기타 등등 또 기타 등등의 작가들이다. 거기에 성석제가 곁들이는 잔잔한 해설 또한 공감 백배다. 이 책은 문학의 햇살과 봄비를 한꺼번에 맞이하게 해준 이 봄의 문학 전령사다. 

자신을 둑이라고 고함치던 4만명의 ‘개자식들’에게 헌사를 바치는 빠블로 네루다의 자서전 얘기엔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춘향전>에서 찾아낸 문장을 소개하고 난 뒤의 성석제의 권고는 정말 꼭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다.

‘소풍을 가십시오.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 고운 태도 아장 걸어 소풍을 가십시오. 거추장스러운 옷 훨훨 벗어 걸어두고 답답한 구두 벗어던지고 바람 따라 흔들흔들, 실근실근 해보십시오. 풀잎도 입에 물어보고 꽃향기에 온 인생의 몇초라도 맡겨보고 세상 인물 아닌 것 같은 날 훌쩍 소풍을 나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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