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대단한 필력이다. 스토리를 끌어가는 힘이 마치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듯하다. 귀찮아서(!) <속죄>를 영화로 보고는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귀찮아서 책으로 굳이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계속 들려오는 그의 작품에 대한 리뷰들을 보면서 그래, 한 권 정도 읽어주자 했었다. 그래서 골랐는데 세상에... 이렇게 대단한 필력이라니. 내용 때문에 읽는 내내 짜증이 좀 나기도 했지만 정말 멋진 작품이다.
나레이터가 스토리 초기에 밝히듯이 정말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정말 사소한 일(!)로 이 대단한 작품은 시작한다. (사실 비극으로 마무리 되는 그날 일을 어찌 사소하다고 볼 수 있으랴. 그저 한편에선 거대 풍선을 타고 몇 명은 들에서 일을 하고 또 누구는 피크닉을 하는 그저 평범한 어느 오후를 이렇게 표현한 것뿐이다.) 여자 친구와 들에서 피크닉을 하려던 나레이터는 그날 들에서 일어난 일로 충격에 휩싸인다. 물론 그 충격이 엄청나긴 했지만 그 일만 있었다면 이야기는 그저, 삶에서 우리가 사건, 사고로 인해 겪을 수 있는 비극적인 에피소드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만난 제드라는 인물로 인해 이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사랑 아닌 사랑, 이런 사랑으로 빠져 들어간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일종의 비뚤어진 사랑에 관한 정신적 문제를 앓고 있는 일종의 병리학적 심리 소설이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커플들에게 일어나는 갖가지 왜곡된, 일방적인, 지배-피지배 간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을 법한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 이 작품의 실마리이다.
‘궁전은 버킹엄 궁전, 왕은 조지5세, 궁정 밖의 여자는 프랑스 인, 때는 1차 세계 대전 직후였다. 그녀는 수차례 영국에 와서, 사모하는 왕을 얼핏이라도 보기만을 바라며 궁 문밖에 서 있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었다. 그녀는 왕을 만난 적도 없었고 또 그 이후로도 만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깨어 있는 매 순간 왕을 생각했다. (...) 그녀가 확신하는 것은 오로지 왕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답하여 그녀도 왕을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에게 심하게 분개하고 있었다. 왕은 그녀를 내쫓으면서도 계속해서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그는 그녀만이 알 수 있는 신호를 보냈다. 아무리 불편하고 아무리 당혹스럽고 부적절하더라도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며 앞으로 언제나 그러리란 걸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왕은 버킹엄 궁전의 창문에 달린 커튼을 이용하여 그녀와 의사소통을 했다. 그녀는 평생을 이런 미망의 감옥 같은 암흑 속에서 살았다. 버림받은 울분으로 가득 찬 그녀의 사랑은 그녀를 치료한 프랑스 정신과 의사에 의해 하나의 증후군으로 분류되었고, 그 의사는 그녀의 병적 열정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바로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다. 처음엔 그 제드라는 남자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나중엔 그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 그런데 결국 그게 일종의 정신병이라는 걸 알게 되자 그때부터는 안쓰러움이 함께했다. 물론 이 작품을 형성하는 게 이게 다는 아니다. 이 큰 줄기로 인해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 일상 변화 그리고 곁가지로 엮여있는 인물들의 행보 등등도 흥미로웠다. 또한 각 인물들의 태도를 보면서 ‘만약 이게 나라면...’이라는 순진한 대체, 비교도 저절로 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또 한편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이언 매큐언의 필력을 최대한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사랑은 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유형이었다. 설사 그 영향이 나한테서 온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세계는 내면에서 결정되고 개인적인 필요성에 의해 추동되며, 외부에 의해선 좌우되지 않았다. 그가 그르다는 것을 그 무엇도 증명할 수 없을뿐더러 그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줄 그 무엇도 필요 없었다. 내가 그에게 열렬한 사랑을 토로하는 편지를 보낸다 한들 뭐가 달라졌겠는가.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작은 방에 웅크리고 앉아 조몰락거리며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지도 않은 우리의 상호작용으로 희망과 실망의 드라마를 써 내려가는데. 그는 언제나 물리적 세계를 세밀히 들여다본다. 물리적 세계에 놓인 사물들의 우발적인 배치, 혼란스러운 소음과 색채를 들여다보면서 현재 자신의 감정 상태와의 연관성을 찾아내려 한다. 그렇게 해서 또 늘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자신의 감정으로 세상을 조명하고 세상은 그의 감정이 택하는 모든 변화를 용인해 주었다. 절망이 솟는 것은 대기의 어둠이나 새 소리의 변화에 나의 경멸이 담겨 있는 탓이었다. 즐거움은 어떤 예기치 않은 즐거운 원인, 가령 꿈속에서 내게 받은 다정한 메시지라든가 기도나 명상 중에 ‘일어난’ 직관 같은 것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은 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