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영원한 고전이라든가 베스트셀러라든가를 읽고 실망할 때가 있다. 글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는 들려오는 소리에 너무 큰 기대를 했다가 ‘그 정도는 아닌 걸’ 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겐 <위대한 개츠비>가 그랬다. 물론 좋은 책이었지만 내 마음엔 여전히 ‘그 정도는 아닌 걸’이라는 생각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번엔 별 기대 없이 읽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이 작품집이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다. 이 변덕 같으니라고.

하지만 내 마음을 잡아 끈 작품은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와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이었다. <젤리빈>과 <행복의 잔해>도 꽤 괜찮았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물론 그 소재의 상상력이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었지만 같은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간 <막스 티볼리의 고백>에 비해, 단편이라 그랬는지 그 재미나 비극성에서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영화가 나왔다는데도 별로 보고픈 생각이 안 들었다.

반면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친구를 갖고 싶은 호의와 자신만을 위해 친구를 희생시키는 그 이기심과 너무 많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전쟁을 해야 하는 그 비극성이 섬뜩함으로 다가왔다. 치졸한 이기주의가 선의와 당위성으로 포장되는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잘 드러내준 작품이었다. ‘순결하고도 일관된 이기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작품이다.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에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아니, 한 남자가 생각하는 한 여자가 등장하는데 결국은 평범한 인생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그 씁쓸함을 잘 그리고 있다. 우연이 필연이 되었더라면 이 남자의 인생은 좀 달라졌을까. 

‘멀린은 아홉시에 아주 조용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 문을 꽉 닫은 뒤 그는 마른 수족을 떨면서 잠시 그러고 서 있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평생 바보였음을 깨달았다.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 같으니!”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는 너무 많은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신의 섭리를 거역한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은 천국뿐이었다. 그곳에 가면 그 자신처럼, 이승의 삶을 제대로 쓰지 않고 낭비해버린 자들만 만나게 되리라.’ 

<행복의 잔해>는 작가 자신도 감상에 젖은 소품이라는 비난을 각오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진정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를 주는 것 같다. 삶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든, 행복이든 불행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오히려 더 아프게 다가왔다.

‘이 두 사람에게 삶은 재빨리 왔다가 사라져버렸고, 쓰디쓴 악감이 아니라 동정을, 환멸이 아니라 오로지 아픔을 남겨놓았다. 그들이 악수를 나눌 때, 이미 달빛이 충분히 퍼져 있어서 둘은 서로의 눈 속에 솟아오르는 상냥한 친절을 볼 수 있었다.’   

맨 뒤의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각각의 설명도 아주 흥미로웠고 옮긴이의 말도 이 작품의 시대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작가에게 보낸 독자의 편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재밌지 않은가. 

“선생님, <콜리어스>지에 실린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단편소설 작가치고 선생님은 아주 훌륭한 미친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평생 허풍치고 뻥치는 소리를 꽤나 많이 들어왔는데, 이제까지 본 뻥쟁이 중에서도 선생님이 최곱니다. 선생님한테 편지지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또한 이 옮긴이의 말이 어찌나 맘에 와 닿던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경우를 만나거나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 공감하지 않던가 말이다.

‘틀림없이 우스개인데 역자부터가 우습지 않아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전이라든가 거장이라든가 정전이라든가, 후대가 붙인 이런 저런 권위의 딱지들을 떼어버리고 다시 보면, 이 가볍고 팔랑거리면서도 미묘하게 축축한 환멸과 슬픔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야기들은 우리 눈앞에 이제는 사라진 한 시대의 풍경들을 쓱쓱 선명하게 스케치해 펼쳐 보여주고 있더란 말이다. 심판도 비난도 해설도 덧붙이지 않고, 바로 ‘재즈 시대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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