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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비행기 - 팝아트 소설가 죠 메노 단편집
죠 메노 지음, 김현섭 옮김 / 늘봄 / 2008년 11월
평점 :
이 지구상에는 태풍, 지진, 전쟁, 홍수 등 재난과 재앙이 끊이질 않는다. 자연적인 재앙도 있고 인간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으로 만들어지는 재난도 많다. 인간사, 세상사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니 받아들이고 살아라 한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유령비행기의 이 작가, 죠메노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독특하고 짧은 단편을 스무 편이나 우리에게 선사하면서 말이다. ‘대형 참사에서부터 일상적인 비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재난을 잠재우려는 의미를 갖고’ 이 단편들을 썼다고 한다. ‘재앙에 직면함으로써, 우리가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얼마나 서로 닮은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어쩌면 그가 말하듯이 우리 모두 이 재앙에 속해 있으면서 일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우리 모두 닮아가듯이. 그러면서 우리 모두 어쩌면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보다 더 독특한 그림들은 보너스다.
지독한 외로움이 느껴지는 <1973년 스톡홀름>에서 누군가는 은행을 털러가고 친구는 은행털이범에게 힘이 되기 위해 달려가고 인질을 잡고 며칠을 보낸다. 이게 바로 경찰보다 인질범을 더 신뢰하고 인질범에게 연민을 갖게 되는 ‘스톡홀름 신드롬’에 대한 얘기가 나오게 되는 에피소드이다. 친구였던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게 되고 적이었던 사람들은 연인이 되기도 하는 게 이 세상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건드리기만 하면 구름이 되어도 남자는 여자에게 키스를 한다. 구름이 되더라도 그게 이 세상 전체보다 더 가치 있는 거니까.
‘그러나 아마도 그녀에게 키스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권태와 맞먹을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구름이 되어간다>
<너는 놀라운 여학생이다>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정말 나쁜 짓을 하려던 소년은 놀라운 소녀를 만나 서로에게 상상도 못할 도움이 된다. <나는 파티 걸의 고요한 순간을 원한다>에서 잡동사니를 수집하는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이 삶이란 하나의 연속적인 비극이란 것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나는 파티 걸의 고요한 순간을 원한다>
수많은 사람들처럼 역시 길을 잃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아니다. 나는 괜찮아. 그냥 너무 외로워서 전화한 거다. 라디오에서는 같은 노래만 흘러나오고 해서,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게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란다.’ -<달의 건축양식>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훌륭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아내야만 해.” -<유령비행기>
‘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이것이 둘이서 함께 바라보는 마지막 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모든 어리석은 일들이 의미를 가진다. 엘리자베스는 최후의 설탕 입힌 컵케이크를 먹을 것이다. 최후의 양말 한 켤레를 신을 것이다. 최후의 핫 초콜릿을 마실 것이다. 핫 초콜릿을 마시다가 혀를 데는 것도 마지막일 것이다. 혀를 덴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도 마지막을 것이다. 재채기를 하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머리를 적시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늙어가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잠드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꿈을 꾸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빛의 에어포트>
마지막이란 건 그렇다. 모든 의미 없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거, 그래서 이 삶이 더 단단하게 우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거, 그래서 더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거, 그런 거 같다. 최초는 사람을 설레게 하고 최후는 사람을 애틋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