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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여러분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이 말은 책의 서두에 작가가 소개하는 레온 트로츠키의 말이다. 전쟁이라는 단어처럼 사람을 참 난감하고 처참하게 하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한 게 아닌데, 내 잘못이 아닌데, 도대체 왜 전쟁은 우리 한가운데로 들어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가족을 산산조각내고 내 목숨까지도 노리는 것일까. 전쟁이 우리에게 진정 나쁜 건, 우리가 우리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가족과 사회, 세상에 쌓아온 사랑과 애정을 산산이 박살내고 먹고 자고 마셔야 하는 우리의 일차적인 본성을 날 것 그대로 되살려 내기 때문에 극한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동물이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을 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희망을 어찌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 전쟁 가운데에서 생존해야 하고 살아내야만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그래서 더 마음 아프고 뼈가 저릴 지경이었다.
‘현대 전쟁사에서 가장 긴 도시 점령으로 기록된 ‘사라예보 점령’은 1992년 4월 5일부터 1996년 2월 29일까지 지속됐다. 유엔 추산에 따르면 만 명가량의 사람들이 죽었고 오만육천 명이 다쳤다. 하루 평균 329개의 포탄이 도시에 떨어졌고, 1993년 7월 22일의 3,777개가 하루 최고치였다. 약 50만 인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만 채의 아파트가 파괴됐고, 십만 채가 훼손됐다. 전체 건물의 23퍼센트가 심각하게 훼손됐고, 그보다 많은 64퍼센트가 일부 훼손됐다. 2007년 10월 현재, 보스니아 세르비아 군대의 지휘관인 라도반 카라지치와 라트코 믈라디치는 헤이그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 의해 전시범죄, 대량학살, 반인류범죄 등의 죄목으로 기소당한 상태지만 아직 잡히지 않았다.’
이는 작가가 말하는 사라예보의 실제 상황이었다. 실존 인물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이 작품에는 첼리스트와 애로라는 스나이퍼 그리고 평범한(!) 몇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 평온한 때에는 각자의 삶을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사라예보가 전쟁에 휩싸이고 도시가 지형적으로 사면이 언덕으로 둘러싸인 긴 띠 모양의 편평한 땅이고, 그로 인해 언덕 위의 적들은 건물로 박격포탄을 날리고 언제 어디서 스나이퍼의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첼리스트는 사라예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였다. 어느 날, 빵을 사려고 줄을 선 시민들에게 박격포탄이 떨어진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가운데 22명이 죽었다. 그래서 첼리스트는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박격포탄이 떨어져 구멍이 난 장소에서 22일 동안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하기로 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케난은 전쟁이 일어나도 사람들이 서로 도울 거라는 신념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는 가족을 위해, 손잡이도 없는 물병을 주는 이웃을 위해 물을 가지러 적들의 스나이퍼가 노리는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전쟁 전에 사격선수였던 애로는 군대에 의해 스나이퍼로 차출되어 적들의 군인들을 죽이다 첼리스트를 사수하라는 명을 받는다. 아내와 아들을 간신히 외국으로 보낸 드라간은 빵집에서 잠깐씩 일하는데 그건 그나마 그가 먹고사는 최적의 일이다. 이들은 전쟁 중에서도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려고, 인간의 존엄성을 최대한 지키면서 생존하려고 애쓴다. 목숨을 걸고.
이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생존하는 것이다. 군인은 총을 쏘고 첼리스트는 첼로를 연주하고 길거리에 시체가 뒹굴게 내버려두지 않고 약이 필요한 환자가 있는데, 죄수처럼 집에만 머물고 싶지 않아 약을 들고 적의 총알이 날아드는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어떤 여자가 친구를 초대했어요. 친구가 돌아오자, 여자는 커피 한잔 줄까 하고 물어요. 아니, 괜찮아 하고 친구가 대답하죠. 그랬더니 여자가 말해요. 잘됐다, 그걸로 샤워를 할 수 있겠어, 라고요.” 전에 들어본 농담이지만, 그래도 드라간은 웃는다. 이 농담은 다섯 가지 정도의 변형된 버전이 있는데, 그때마다 주인공 여자는 말도 안 되는 적은 양의 물로 뭔가 엄청난 일을 해낸다. 이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드라간은 이제 물 반 리터로 몸 전체를 씻을 수 있다. 반은 씻는 데 쓰고, 반은 헹구는 데 쓴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할 만하다. 따뜻한 물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극한의 상황에서 이렇듯 씁쓸한 유머를 할 수밖에 없지만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보란 듯이(!),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생존하는 이들에게 한편 박수를 보냈고 또 한편 희망이 벅찼다. 최악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인간이지만 최선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인간이다. 정말 감동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