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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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주위에 우표를 모으는 친구나 오빠 들이 있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우표 가운데에는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는, 이름도 특이한 나라의 우표들이 있었다. 그 우표들이 어땠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 세상 어딘가에 도미니카라는 자그마한 나라가 있고 그 안에도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거라는 신비함 같은 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자라면서 물론 그렇게 작은 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 작은 책 한 권으로 그들의 삶 정치 사회 역사까지 단번에 어우르게 되었다. 오스카와 그의 가족 이야기 덕분에.   
남아메리카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은 나라 도미니카, 그 나라의 수도인 산토도밍고에 살았고 이후엔 미국에 이민자로 살았던 오스카와 그의 가족 이야기가 마치 현대 세계사 안에서 정말 전형적인 인간사, 가족사, 정치사를 겪은 것처럼 광대하게 펼쳐진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대를 살았던 한 가족의 이야기가 격변의 회오리에 휘몰아 들어가듯이 나도 이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어떤 여자라도 홀릴 정도의 몸매와 기술을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고 여자라면 또 누구나 자신의 얼굴이나 몸매의 미를 한껏 자랑해도 되는 나라, 숨기는 것 없이 거침없는 사랑, 내숭 떨 필요 없는 연애, 들이대고 받아들이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관습과 습관 속에 녹아 있는 만남이 정상인, 어찌 보면 관능이 살아 숨 쉬는 나라에서 오스카는 예외의 삶을 살았다. 그의 삶엔 마가 낀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만 보고 몸은 점점 뚱뚱해져 왕따가 될 정도고, 연애엔 꼴통이다 싶을 정도로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고, 필이 꽂히고 말이 좀 통한다 싶은 여자마다 그저 친구 관계로만 머물고, 어쩌다 정말 인연이다 싶은 여자에겐 이미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래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그의 성미 때문에 끝 간  데까지 가는 그의 사랑 방식엔 집요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게다가 그의 엄마 누나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독재자의 나라에서 자신을 지키기가, 가족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게 되고, 그 시절에 난무하던 폭력과 잔인함에 치를 떨게 된다. 이성과 합리성은 필요 없는 것이다. 권력과 힘이 모든 걸 결정하고 좌지우지한다. 그에 휘둘리는 국민 개개인들은 언제 그 삶이, 그 일상이 파괴되고 짓이겨질지 모르는 것이다. ‘깜둥이는 꼭 저주가 아니더라도 허다하게 죽어나갈 만큼 세상은 비극으로 가득하다.’ 이런 세상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사랑을 삶의 지표로 삼고 심지어 목숨까지 거는 사람들은 사랑이 관능과 달콤함만 선사하는 게 아니라 배신과 후회, 씁쓸함까지 동반한다는 걸 망각한다. 그것도 너무 어린 나이에 말이다. 그게 오스카 엄마의 삶이었다. 이에 가족의 관계까지 위협받는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것은 가족 간의 버팀목이나 위로가 되기보다 상처가 되고 치유할 수 없는 흉터가 되는 것이다.
오스카 와오는 짧지만 놀라운 삶을 살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변도 살피지 않는 사랑의 삶을.
문체가 무척 시원스럽고 인물들의 성격만큼이나 거침이 없고 읽기에 유쾌하고 즐겁다. 일상이 무료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이 작품으로 다시 활기를 찾게 되지 않을까. 인생은 굵고 짧게! (비록 길고 가느다란 인생을 살고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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