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기에
로랑스 타르디외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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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 주느비에브. 죽어선 안 돼. 난 고독이 무언지 안다고 믿었지. 하지만 이제 머지않아 네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그건 순전히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네가 죽는 순간 비로소 난 혼자가 될 거야. 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산 세월 동안에도 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내게 삶의 용기를 주었어. 세상 어딘가에 네가 존재했으니까. 비록 널 볼 순 없었지만 그래도 나와 똑같은 시련을 겪어야 했던 여자가 아직 건재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 서로를 만질 순 없었어도 우린 함께 손을 잡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이제 네가 사라져버린다면 난 흔들릴 거야. 더는 발밑에 단단한 땅을 딛고 서 있지 못하게 될 거야.’

뱅상은 2005년 어느 날 사랑했던 여인, 아내였던 여인 그리고 아이의 엄마였던 주느비에브의 편지를 받는다. 둑어간다고, 둑기 전에 다시 한번만 그를 보고 싶다는 편지를 받자마자 그는 그녀를 만나러 길을 떠난다. 위 글은 길을 가면서 뱅상이 속으로 되뇌던 말이었다. 겪어선 안 될 시련을 겪고 그 슬픔과 고통이 그들을 갈라놓은 그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들은 그렇게 다시 만난다.

가끔 신문이나 뉴스에서 누군가의 실종에 관한 기사를 보면 언니는 늘 그랬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상태에서 그리고 어딘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고는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거 아니냐고. 저런 실종은 거의 타살 되어 어딘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묻혀있는 거 아니냐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었다. 그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의 심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일까봐 더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그런 일을 겪은 가족, 즉 사랑하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 가족의 심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루하루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할까.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둑는 존재이므로,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어도 세상을 뜨는 건 순서가 없듯이 그렇게 순리라고 생각하고 체념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뱅상과 주느비에브는 겉으로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 서로에게 얽매인 삶을 살았던 것일까. 아이를 잃어버린 날, 그들의 삶은 모두 정지해버린 것일까. 서로가 반추하는 그들의 삶은 어찌 보면 살았다고 볼 수 없겠다. 그 긴 세월을 그냥 보내버린 것일 뿐.

“왜 삶의 밝은 면만 기억해야 하는 걸까? 빛을 눈부시게 만드는 건 어둠인데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끔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만일 우리가 클라라를 잃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난 순간의 가치를 몰랐을 거야. 흙과 소소한 것들의 가치, 당신과 내가 함께하는 이 몇 시간의 가치를. 우리의 사랑보다도 강한 우정을 말이지. 슬퍼하지 마, 뱅상.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간다고 중요한 무언가를 잃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난 이 순간을 갖게 된 걸 감사해. 영원은 시간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깊이 속에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주는 현기증 속에 있어. 내가 누구한테 감사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죽음이 무언가를 향해 열려 있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이 빛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될 거야. 빛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어. 그렇지?” 

결국 영원하지 못한 것은 태어나면서 둑음으로 치닫는 인간의 삶이다. 이 세상에서의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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