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도널드 맥카이그 지음, 박아람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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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주 어릴 적에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이 나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받은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장면은 띄엄띄엄 몇 장면만 기억이 나지만 이후에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그 강렬했던 스토리는 결코 잊지 않았다. 역사나 정치,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사랑 등 워낙 다루는 주제도, 등장하는 인물들도 방대한 작품이었고 멋지고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들의 매력으로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지만 우리가 흔히 속편이라고 인식하는 ‘원작 이후의 스토리’보다는 사실, 같은 이야기를 좀 더 폭넓게 그리고 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것 같다. 물론 레트에게 포커스를 좀 더 맞추고 스토리가 세세한 면에서 약간 다르긴 했지만 레트의 어린 시절부터 남북 전쟁을 거쳐 타라의 농장이 타버리는 장면까지 그리고 영화와는 약간 다른 결말까지 거의 7백여 쪽에 달하는 이야기를 단숨에 읽었다. 마치 영화를 보듯이, 마치 한편의 서사 드라마를 보듯이 말이다.

남북 전쟁을 전후해 이루어졌던 사회 격동의 이야기를 폭넓게, 수많은 인물들과 그리고 있는 이 이야기는 당시 그리고 현재 미국사회를 이해하는데 마음이 아프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짧은 역사지만 그들도 인류가 함께 모여 사는 데 있어서 필수인 악과 선을 거쳤고 서로 다른 이념으로 전쟁을 치렀고 또한 사회적 변혁을 겪으며 결코 순탄치 않은 역사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 많은 주제 가운데에서도 역시 내가 제일 주목한 것은 사랑이었다. 세월이 변해도 어떤 사회에서도 인간에게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숭고한 감정, 그것이 또한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이나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남녀 간의 감정이든 간에 사랑임에는 틀림없으니까.

“당신은 남자가 가진 것을 전부 쥐어짤 겁니다, 스칼렛. 몸과 마음, 영혼, 생각까지도. 그리고 그것을 전부 갖지 못하면 끔찍하게 괴로워하겠죠. 난 당신의 마음과 영혼을 전부 원하지 않을 테니 당신은 상처를 받을 테고……” - 애슐리가 스칼렛에게.

‘뭐가 잘못된 걸까? 왜 그렇게 좋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걸까? (...) 그럴 수 있을까? 존의 사랑만으로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여자의 마음은 절대 남편의 헌신으로 돌아설 수 없다!’ - 로즈메리의 생각.

“아뇨, 오빠가 가져가요. 우리 버틀러 가는 사랑에는 늘 젬병이에요. 너무 늦게 사랑하거나 엉뚱한 사람을 사랑하거나 전혀 사랑하지 않거나. 스칼렛한테 이 스카프를 주세요. 예전에 전 이걸로 오빠의 사랑을 확인했어요. 이제 우리 가여운 메그의 사랑까지 더해졌어요. 오빠, 부탁이에요. 이걸 사랑하는 여자한테 주세요.” - 로즈메리가 오빠 레트에게.

“곁에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거나 허전하거나 아니면 불행할 것 같은 그런 여자가 있었느냔 말입니다요.” “기분이 좋거나 가끔 전율을 느낀 적은 있지. 하지만 그런 사랑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럼 아직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는 겁니다요.” 투니스 보노가 확고하게 말했다. “진짜 사랑은 안 해보신 겁니다요. 사랑은 그런 느낌이거든요.” - 사랑에 빠져본 적 있느냐고 묻는 레트의 친구 투니스와 레트의 대화.

사랑이 가득 담긴 노란 실크 스카프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럼요. 아무것도 아니죠. 우리 친절하고 아름다운 숙녀분에게는 아주 작은 싸구려 사랑의 징표일 뿐일 테니까.”라는 자조적인 조롱이 되고 최고로 비싼 카메오 브로치를 받은 벨이 왜 자신에게 그걸 주느냐고 묻자 레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왜냐면 벨, 당신한텐 노란 실크 스카프를 줄 수가 없거든.”

결국 그 노란 스카프가 애슐리의 어깨띠가 되어 있는 걸 본 레트는 서로 다른 많은 여자들 모두 사랑할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 애슐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를 선택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선택하니까요.” 그리고 덧붙인다. “남녀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모르는 채 평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사랑이 아닌 가짜 사랑을 받아들이고 사는 거죠.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타다 남은 차가운 재를 구분하지 못한단 말입니다.”

“(...) 그런데 남자들은 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하게 구는 거죠?”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 노처녀가 남자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았으면 왜 노처녀가 됐겠냐고?” - 샬럿이 묻자 줄리엣이 하는 답변.

“우리 새리는 아무나 골라서 결혼할 수 있었지. 사과 주스에 벌이 모여들 듯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거든. 근데 나를 발견한 거야. 사랑은 그렇게 우연히 찾아오지.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니까.” -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과장수 노파 부부에게 결혼한 지 얼마나 됐냐고 레트가 묻자 남자가 농담을 하다 결국 대답한 말.

“예전에 저희 아버지가 버틀러 가에는 나쁜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버틀러 가에 저주가 내렸다고. 아무래도 그 저주는 사랑의 결핍 같아요. 저는 아버지의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존과 결혼했고, 순수하고 친절한 착하디착한 존을 무시했죠. 잘못을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렸죠. 멜라니, 순수함이나 친절, 선량함 같은 것은 아주 조금씩 누적되면서 천천히 그 효과를 발휘한답니다. (...) 결혼은 착한 남자하고도 해보고 방탕한 남자하고도 해봤으니 다시 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혹시라도 다시 하게 된다면 절르 필요로 하는 사람과 했으면 좋겠어요.” - 로즈메리가 멜라니에게 쓴 편지에서.

스칼렛의 사랑 아닌 사랑에 상처받고 엉망이 된 레트를 무법자들 소굴에서 찾아내 데리고 나오는 테즈에게 레트가 하는 이 말은 최고의 사랑의 정의이다… 세상 사람들아, 우연히 다가오는 사랑, 하라 그리고 지키라!

“사랑은 우연이야, 테즈. 언제 다가올지 모르지. 그러니 영혼을 걸고 지켜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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