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난 사회적인 이슈를 갖고 쓴 작품이나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그걸 소설로 엮어가는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물론 대부분 쓴웃음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즐겁고 유쾌하고 통쾌한 면도 있었고 날카롭게 현대 세상을 비웃는 것이 그만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회적인 이슈를 문제화한 것이긴 하지만 기대를 하고 잡았지만 역시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물론 5백여 쪽이 넘는 내용을 별로 지루할 틈도 없이 단숨에 읽었고 스토리 전개도 나름 서스펜스를 집어넣어 추적과 추격을 따라가지만 그 역량은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결론은 없는 결말…
 
나가미네는 열다섯 먹은 딸, 에마를 키우며 혼자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다. 한편에선 딸이 불꽃놀이를 보러 가서 안 돌아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는 나가미네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또 한편에선 가이지 등 세 명의 청소년들이 여자를 납치해 성폭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처음부터 기분 나쁜 예감에 사로잡히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더구나 읽는 동안 요즘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어린아이들 납치 사건과 살해 사건 등 정말 끔찍한 일들이 모두 떠올랐다. 소름끼치는 현실이나 책에서 그리는 세상이나 다를 바 없다.

차라리 에마가 희생당한 걸 알게 되었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을 정도로 이야기는 끔찍하지 않는가. 만약 내가 또는 내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이성을 지키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선 한 술 더 떠 가해자들이 청소년, 즉 미성년이라는 설정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분명 한 사람이 무참히 살해되고 그 가족이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막상 가해자들은 미성년자들이라는 법 아래 안전하게(!) 보호된다.

세 명의 가해자는 분명 그 역할이나 정도 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희생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찌 분노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경찰이, 법이 그들을 보호하는데 말이다. 흔히들 죄를 미워하지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게 막상 내게 닥친다면 그런 소리가 나올 것인가? 영화 <밀양>에서도 ‘용서’라는 주제를 잘 다뤘지만 왜 내가 아닌 하느님이, 법이 용서를 하게 하는가 말이다. 경찰에게 잡히는 것이 더 안전한 해결방법이라는 걸 아는 가해자가 잡힐 때 잡히더라도 “조금만 더 즐기고”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나도 완전 뒤집어질 뻔 했다.

점점 더 사이코패스가 많아지는 세상이다. 또한 그 범죄의 수법이나 방법도 점점 더 악랄하고 더 극악무도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딸 키우는 부모들은 어디 세상 무서워서 딸 키우겠냐고 한다. 벌만이 최선의 예방은 아니지만 법이 그리고 사회가 어느 정도는 이를 막고 이를 예방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경찰이 지키는 것은 약자나 희생자가 아니라 법일 뿐이다’라는 어느 경찰관의 말이 이처럼 와 닿는 세상에서 어찌 안전하게 살아갈까. 정의의 칼날이 아니라 어쩌면 분노의 칼날이 더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 씁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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