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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그리고 주인공은 덧붙인다. “설명해야 할 시신이 하나 있다. 세 번이나 사랑한 한 여자가 있다. 등을 돌린 친구도 하나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찾아다닌 소년이 하나 있다.” 작품의 맨 첫 장에서 주인공은 우리에게 이 작품의 글의 주제와 결론을 모두 얘기해준다. 물론 4백여 쪽을 다 읽기 전엔 그 깊은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하겠지만.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의 섬뜩함을 잊을 수가 없다. 맑은 아이의 얼굴이었을 뿐인데도 검은 바탕에 이런 제목의 책, 게다가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한 사람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라니 섬뜩할 만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다 읽고 보니 슬프고 애처로운 얼굴일 뿐이다. 그 삶이, 그 사랑이, 그 우정(!)이 너무나 안타깝고 기가 막히다.
요즘이야 성형 등으로 얼마든지 나이와는 상관없이 얼굴에 사기를 치는 게 가능하겠지만도, 사람들은 흔히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인생을 살면서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많이 웃었으면 그 일들의 흔적이 얼굴에도 곱게 나타난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막스는 태어날 때부터 할아버지의 얼굴을 갖고 태어났다. 점점 젊어지는 얼굴과 몸이 되는 것이다. 아주 어릴 적엔 부모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지고 청소년이 되면서 막스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막스가 살아가면서 겪게 될 어려움을 미리 예견한 부모님의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라는 말씀으로 막스는 세상을 살아가고 또 우연히 알게 된 친구 휴이의 우정으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또 하나 평생을 가는 단 하나의 사랑, 앨리스와 그 가족과 얽힌 사랑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막스 앞에 있는, 겉으로 보기엔 친구처럼 보이는 새미…
사실 한 사람이 태어나 부모의 보호를 받고 친구들과 우정을 맺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자식을 얻고 그 자식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고 일을 해서 생계를 책임지는 그런 모습이 평범함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안 계실 수도 있고 그 중 한분이 안 계실 수도 있고, 평생 가야 제대로 된 친구 한 명 못 사귈 수도 있고 여러 번의 사랑에,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할 수도 있고 자식 없이 세상을 뜨는 사람들도 많을 수 있다. 결국 어느 것도 우리 인생에 평범함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내 인생은 내 나름대로 내 운명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막스의 경우, 그 순서가 거꾸로여서 더 우여곡절을 많이 겪지만 말이다.
이야기가 진척됨에 따라 막스의 나이는 젊어졌고 인생의 곡절도 함께 발전했다. 앨리스와 그 가족과의 인연도 막스가 느끼는 만큼 안쓰러웠지만, 끝 부분에서, 휴이의 그 끝없는 우정(!)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반전 아닌 반전에 정말 가슴 아팠다.
“평생 살아오면서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했단다. 시간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그렇다. 시간은 늙어가는 사람에게도 젊어지는 사람에게도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대부분 늙어가다 둑고, 특이하게는 막스처럼 젊어지다 둑는다. 그래도 막스는 “너무 짧은 인생. 슬픔만 가득한 인생. 그러나 난 내 인생을 사랑했소.”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