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저것은 늙은 사람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서로 팔짱을 낀 젊은이들과 숲속의 새들, 저 죽음의 세대들은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취해 있고 폭포에는 연어가 튀고 바다에는 고등어가 우글거리니 물고기와 짐승과 새들은 여름 내내 나고 자라서 죽는 모든 것들을 찬양한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따온 이 구절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이야기가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점점 더 젊은(거칠고 되바라지는 의미도 포함하는!) 세상이 되어가는 이 세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노인들의 불쌍하고 안쓰러운 또 어쩌면 따스한 이야기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으슬으슬 밀려드는 공포감에 오금이 저렸다. 영화도 나왔던데,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다니. 애초에 보긴 글렀다. 아무튼 처음부터 날 것 그대로 눈앞에 툭툭 던지는 그 모습에, 그 냉혹함에 마치 내가 쫓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직 준비도 되지 못한 독자 앞에 시작부터 속속들이 악당인 인물이 턱하니 등장한다. 그에게 동정이나 연민, 또는 감상을 기대하기란 처음부터 무리다. 게다가 우리가 영화 같은 데서 흔히(!) 보는 멋진(!) 킬러도 아니다. 그는 그저 악당일 뿐이다. 동전으로 남의 운명을 점치고 걸리는 것은 뭐든 간단하게(!) 처치해버린다. 작가는 그에게 나름대로의 철학을 부여하려고 한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철저한 악당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사건은 불길하다. 사막에서 난타를 당한 트럭들 그리고 그 안의 희생자들을 발견한 모스는 지폐다발이 엄청 든 가방을 가지고 최대한 신중하게 그리고 몰래 자리를 빠져나온다. 하지만 다 둑어가면서 물을 찾던 한 남자가 마음에 걸려 한밤중에 물을 갖고 다시 그 자리를 찾은 모스는 누군가 다녀간 것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쫓기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쫓고 쫓기는 게임이 시작된다. 더불어 뒤를 쫓는 보안관 벨의 이야기가 평행적으로 이어진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노인’이란 사람 목숨을 아끼고 사랑을 중시 여기고 명예를 지킬 줄 알고 아무 이유 없이 싸움이나 투쟁 또는 전쟁을 하지 않고 남을 해칠 줄 모르는 옛(!) 사람을 일컫는 것이겠다. 이젠 사람을 해치는데 생각도 한번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판치는 세상이니까. 내가 가는 길에 걸리적거리는 건 뭐든 그냥(!) 없애버리면 간단하니까.

학교교육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대답이 40년 전엔 수업 중 떠들기나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문제 같은 것이었다면 이제 40년이 흐른 지금은 강간, 방화, 살인, 마약, 자살 같은 문제로 바뀌었다. 보안관 벨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즘 세상을 보면 정말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세상이 점점 망해가고 있다고 오래 전부터 말하곤 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내가 나이가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것도 하나의 징후다. 하지만 강간하고 살인하는 일을 껌 씹는 일과 구별할 수 없는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내 느낌이다. 4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아마도 다음 40년 동안은 난데없이 아주 괴상한 것이 등장할지 모른다. 너무 늦은 게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정말 매일 밤 책을 드는 순간부터 몸이 알아서 먼저 긴장을 했다. 두려운 책읽기였다. 그런데 일상, 문을 열고 닫는 등의 자잘한 행동에 대한 너무나 세세한 묘사는 읽기가 거북할 정도였지만 대신 지루하지 않았던 건 특이했다. 게다가 애매모호한 많은 표현들은 몇 번을 읽어도 여전히 애매했다. 이해를 잘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누구의 대사인지, 누구의 생각인지, 명확하지 않은 대목이 많아서 마치 대충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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