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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떠났어
지빌레 베르크 지음, 구연정 옮김 / 창비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지독히 추웠다. 동독의 겨울을 살고 있는 안나와 함께하는 동안 나도 함께 정말 추웠다. 흑과 백의 색깔만이 지배하고 있는 동독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안나는 금지된 것이 많은 사회에서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엄마는 알코올에 찌들어 있고, 안나는 꿈과 희망을 어떻게 꿈꿔야 할지도 모르면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쓴다.
지독히 외로웠다. 혼자서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방을 정리하는 막스와 함께하는 동안 나도 함께 정말 외로웠다. 경찰인 아버지 덕분에 남들보다는 좀 더 따뜻하게 살고 있지만 대화도 없는 아버지와의 삶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간혹은 아버지의 침묵이 견디기 어려운 막스는 그래서 일기를 쓴다.
이 작품은 곧 열네 살이 되는 안나와 막스가 각자 서로 다른 일기를 쓰는 독특한 구성으로 시작된다. 많은 것이 금지된 동독의 사회에서 춥고 외로운 청소년기를 보내던 두 아이가 어느 날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치는데 알고 보니 바로 위, 아래 집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둘은 함께 식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고 그리고… 길을 떠난다. 무작정. 왜? 둘은 친구가 그리웠고 서로 그리워하던 친구를 만났으니까.
둘은 끔찍하게 짜증스러운 동독의 겨울을 떠나 남쪽, 불가리아를 거쳐 이딸리아나 그리스로 갈 생각이었다. 얼마 안 되는 푼돈을 들고 배낭 하나씩을 매고 둘은 히치하이크를 해서 트럭을 얻어 타고 폴란드를 거쳐 모험길에 나선다. 간혹은 따뜻한 밥과 음료를 사주는 친절한 사람들도 만나지만 인신매매단을 만나 고생을 하기도 한다.
나라에서 도망치다 잡히면 감옥에 가기도 하고 총살을 당하기도 하는 걸 아는 이 아이들이 왜 그렇게 험난한 모험길에 나섰을까. 어쩌면 떠나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족이 가족이 아니고 친구가 친구가 아닌 세상에서 더 이상 살기 싫은 것이다. 그건 진짜 삶이 아니니까. 그래서 진짜 친구를 만나 진짜 삶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삶에는 반복이란 게 없어. 그렇다면 모든 걸 좀더 잘할 수도 있을 텐데. 삶에서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은 제대로 하기 위해 모든 걸, 정말로 모든 것을 시도해봐야만 한다는 거야.’
정말 어둡고 추운 동독이라는 금지의 땅에서 안나와 막스는 무작정 떠난다. 자유를 찾아서, 친구를 찾아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더라도, 정말 못된 사람을 만나더라도 둘이 함께라면 서로를 도우면서 근사한 어른이 되지 않을까 바래본다.
‘우리는 서로 꼭 붙잡고 우습게 생긴 작고 둥근 창을 내다봤어. 용기를 낸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어. 이제 어떤 일이 다가올지는 상관없어. 그게 뭐든 우리가 떠나온 것보다는 나을 거야. 뭔가 새로운 일이 있을 거야. 물론 그 순간 갈매기 한 마리가 창문을 지나 날아갔지.’
공부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안정만이 최고가 아니란 걸 가르쳐주는 책이다. 밥을 준다고 부모가 아니고 학교에서 함께 책상에 앉아있다고 친구가 아니다. 함께 생각을 나누고 모험을 나눌 수 있는 가족과 친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쿨한 문체도 아주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