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말할 때가 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ㅣ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처음 제목을 봤을 때부터 흥미로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드는 거부감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알려준다는 것인가. 왜지? 그게 뭣 땜에 필요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고 또 많이 읽는 나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제목이었기에 끌리기도 하면서 거부감이 동시에 일었던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책을 읽는 목적이 달랐다. 저자는 교수이고 평론을 할 때도 있고 또 글을 직업으로 삼는 많은 사람들에 일단 초점을 맞췄다. 또 책읽기가 곧 교양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왜 이런 책이 나오게 되었는지도 이해가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는 좀 다른 방향인 것이다.

나는 책에 대해 직업적으로 말할 필요도, 의무도 없는 일반 독자이기 때문이며 또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그냥 책읽기를 좋아해서이기 때문이다. 즉 책에 대해 말하려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인생에 대한 내 주관적인 이해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려고 읽는 것이란 얘기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그것이 꼭 교양과 연결되는 건 아니다. 보통은 시간을 때우려고 책을 읽거나, 또는 그건 오히려 세상을 모르고 현실을 등한시한다는 몰이해를 동반하기도 하는 게 일반적으로 내가 듣는 한국적 사고이다. (우리 직원 한명은 아주 자랑스럽게, “전 책 안 읽어요! 그런 걸 뭣 하러 읽어요?”라고 한다. 그 말은 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본인이 잘났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지만 책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건 없건 이 책은 여러 가지 비독서의 방식을 알려주고 실제로 상황을 보여주고 흥미로운 예를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경우만 비독서가 아니라, 대충 훑어보는 경우나 다른 사람에게 들어 귀동냥한 경우 또는 읽고 나서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 등 다양한 경우의 비독서 방식을 예로 드는 것이다. 사실 어떤 책은 영화로 보기도 했고, 학교 다닐 때 텍스트로 조금 공부한 경우도 있고, 또 하도 유명한 책이라 대충 내용은 알고 있을 경우, 면밀하게 따져보면 읽은 게 아닌데, 우리는 그 책들을 읽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또 분명히 읽었는데 전혀 내용이 생각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난 가끔 예전에 내가 쓴 리뷰를 읽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책 내용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이걸 내가 썼던 말이야? 하면서. 저자도 그런 예를 들고 있다.) 

담론의 상황들 편에서는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경우, 즉 쓰지 않은 책이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해야 하는 상황, 작가이면서도 책 내용을 모른다거나 작가 앞에서 어떻게 얘길 해야 하는지 또는 사랑을 얻기 위해 하는 얘기들 등등 다양한 상황들이 마치 소설처럼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흥미롭고 생각해볼 거리도 많은 장이었다.

대처요령을 말하는 장에서는 일단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책을 꾸며대고 또 자기 얘기를 하라고 조언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공감하며 읽었다. 어차피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나와 관련된 것이다. 교양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다. 내가 읽고 어떤 느낌을 가졌으며 어떤 것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는지 그런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어차피 독서라는 건 내가 아는 만큼, 내가 이해하는 만큼 내가 얻는 것이다. 또한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건 내가 다르게 느끼고 다른 방향으로 이해했다면 그것 또한 내게 더 중요한 점이 된다. 가끔 내키지 않는 작품을 읽지도 않고 그 작가, 별로다라고 평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비독서의 한 전형이겠다.

이 책은 제목과 주제에 맞게 잘 써진 책이다. 또한 흥미로운 대목도 많고 너무 학술적이지도 너무 흥미 위주도 아니다. 이론과 예가 적절하게 객관적으로, 재밌게 표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