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여자로 태어난 죄

조선이 버린 여인들 - 實錄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
손경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월

인도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읽고 인도여자들의 고달픈 삶을 보면서 인도에서 태어났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이기적인 안도감이 나도 모르게 들 때가 있다. 남자들이 더럽다고 해서 온몸(분명 온몸이랬다~!)의 털을 제거해야 하는 일부 아랍국가 여성들, 여자들이 다른 남자랑 도망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어릴 적에 성기의 일부를 잘라내 성행위를 할 때마다 고통을 받는 일부 아프리카 여인들의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이건 조선이다. 조선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따져보면 우리의 조상들이고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역사 속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우리 삶의 일부였다.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여자는 그 시대에 늘 억압받고 자유롭지 못했다. 같은 행동을 해도 남자는 괜찮고 여자는 괜찮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물론 이에 대해선 말들이 많다. 원래 조선 여자들이 기가 세서 그걸 제압하려고 그랬다는 등, 그래도 대문 안에선 여자들의 권력이 세지 않았느냐는 등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여자들의 경우는 조선시대에 여자로 태어난 게 죄였다. 또 저자도 암시했듯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의 경우가 묻혀 버렸겠는가. 이 책은 조선이 버린 여자의 33가지 경우를 소개하고 있다. 사대부 여자 뿐만 아니라 첩 노비 여승 기녀 무녀 들이 모두 그 희생자였다. 여자들은 열녀 논리로 묶어놓고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성을 누렸던 조선시대에서 여자들은 늘 약자였기에, 그 약자에 대한 법이 또한 정치가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던 고로 이 여자들은 그런 시대에 여자로 태어난 게 죄였다.

시대가 어떻든 남녀 간의 문제는 현재시대와 다를 게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기가 막힌 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결과는 현대와 어이가 없을 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첩이나 노비 등 하층민에게까지 관심을 보인 왕실이었지만 그 관심이 누구에게나 정당한 판결을 가져다주진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성군의 판결이라도 주위의 반대를 비롯, 시대와 정치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 것이 바로 이 사건들의 주인공들이었다.

이 책에는 여자들이 관련된 다양한 경우를 다루고 그에 대한 조선시대의 제도와 당시 세태의 현실인식과 당시의 윤리까지도 자료를 통해 다루고 있다. 비슷한 경우가 많이 나오다 보니 끝에는 조금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으나 처음부터 시종일관 무척 흥미로운 책읽기였다.

사실 저자가 어떻게 해서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고 또한 그녀가 보는 여성들에 대한 현대 남자, 여자들 그리고 그녀 개인의 의식에 더 관심이 갔다. 저자가 밝힌 자신의 경험과 진솔한 얘기 들은 결국 우리가, 우리 시대가 우리 여성을 어떻게 보는지, 왜 그렇게 보게 되었는지에 대한 단적인 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이 지구상 어딘가에서 힘없고 약해서 당하는 모든 이에 대한 시선이 이해와 공감으로 넘치고 언제 어디에서건 정당하고 정직한 판결을 이끌어냈으면 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