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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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음에 읽혔다.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숨차게 읽었다. 하지만 한 달이 넘게 정리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서만 이 책과 대화를 나눴다. 그 집안의 서사를 이해하려고 애썼고 함께 느끼고 공감했다. 한 집안의 여자 남자 어머니 아버지 남편 아내 아들 딸 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때론 성심껏 때론 힘겹게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그 가족에 얽힌 인물들 모두 제몫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이, 그 아픔이 모두 내 것이 될 때까지 난 이 작품이 내 안에서 녹아들도록 기다렸다.

그 각자의 이야기는 얽히고설킨 삶들을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흥미롭고 더 복잡하지만 오히려 이야기를 뭉뚱그리는 식이어서 더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전체적으로는 너무나 큰 줄기에서 사방팔방으로 뻗는 작은 물줄기처럼 이야기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역사 속에서 세월 속에서 그것은 커다란 서사였다. 한 시대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펼쳐나가는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표현되어 있다. 시대에 갇혀, 집안에 갇혀 어쩔 수 없었던 개인이라고 명명하기엔 너무나 아픈 인간의 삶, 사랑, 우정, 심리 모두 기가 막히게 잘 살아있다. 지겹도록 아름답고 슬프게 얽힌 인연들, 어찌할 수 없는 운명들은 서사였다. <혼불> 같은 분위기가 나는 것은 서사적인 한 집안의 복잡다단한 삶, 그 안의 모든 인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었다.

‘오라버니를 보자마자 나는 그냥 울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너로 인해 죽겠구나. 그게 어떻게 알아졌는지 모르지만 저절로 알아진 걸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물리고 싶었다. 사지로 어린 딸을 몰아낸 엄마가 미웠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별 도리가 없기는 했다. 매번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집도 살 만한 곳은 아니었으므로.’

이 작품에서 제일 큰 역할을 하는 게 서사 다음에 바로 작가만의 말맛이었다. 시대의 말맛 지방의 말맛 사랑의 말맛 인생의 말맛 들이 모두 살아있다. 인간사 모두 결국 인간들이 내뱉는 말로 인해 독이 되고 사랑이 되고 그게 또 인생이 된다. 시대의 탓도, 개인 성정의 탓도 있겠지만 말맛은 언어로 축약되고 그 단순함 안에 깊은 맛을 간직하고 있다. 큰 소리가 되어 나올 때도 울음으로 이어질 때도 그 말맛은 그 깊이를 더한다.

‘-동티여.
금기를 건드린 인간에게 열받은 지신이 가차없이 내리는 재앙이 동티다. 그렇다면 신벌의 표적에 착오가 있는 게 분명하다. 최약국이 해코지받을 정도로 잘못 쑤석거린 신의 영역은 없었다. 칠칠치 못하게 만사형통을 자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시샘이라고 할밖에 없었다. 신에게 딱히 기댈 게 없는 순탄하고 잘난 인생에 대한 억하심정.
-암만, 그게 바로 동티라.’

그 다음으로는 글맛을 들 수 있다. 그 시대의 삶을, 풍경을, 인간사를, 각자의 심리를 어찌 그리 잘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시를 읊을 때면 나도 한 수 읊어지고 싶고 국화주를 한잔 할 때면 이슬 머금은 그 국화주 한잔이 하고 싶어진다. 이른 아침, 겨울 풍경을 또 어찌 그리 적확하게 표현하며 깊은 밤, 봄은 금방 봉오리가 터질 듯하고 여름 한 낮의 넘침도, 서러운 가을밤도 모두 작가의 펜 아래 아스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화주를 만드는 장면에서 국화주에 쓰는 물에 대한 말이다.

‘물은 가을에 내리는 이슬을 받아서 쓴다. 고된 작업이다. 우선은 밤이 되기 전에 풀잎들을 천으로 깨끗이 닦아 먼지나 불순물을 없앤다. 그리고 그 아래마다 작은 항아리들을 나란히 늘어놓는다. 그러면 새벽에 맺힌 이슬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또르르 독 안으로 굴러떨어지는데, 철 내내 모아야 합치면 술 큰 한 동이 양은 되었다.’

또한 이는 난이가 언니 향이를 생각하며 하는 생각이다.

‘산자고는 앉은뱅이 작은 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치곤 하지만 내 눈은 꽃을 찾는 데 발달한 모양이었다. 산자고로 차를 만들려면 먼저 꽃을 깨끗하게 다듬어 그늘에서 이레 정도를 말린다. 그렇게 마른 꽃잎을 햇볕에 한 시진 넘게 더 말려서는 남아 있는 습기를 마저 없앤다. 그러곤 번철에 덖어 밀봉해두었다가 한 송이씩 잔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우려내면 된다. 꽃이 언니를 닮았으니 언니가 퍽 좋아했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제일 마음이 아팠던 건 역시나, 역시나 어쩔 수 없는 사랑이었다.

‘승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분명 탈속한 이는 아니었다. 널브러져 산발한 채로, 빈틈없이 꼼꼼하게 젖은 얼굴이 어렸다. 사랑이었다. 그것도 제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사랑이니 그 지경일 것이었다.’

“내 맘한텐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네 맘대로?”
(...)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사랑은…… 사랑은 그랬다.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는 것이었다. 미안해하며 또 미안해하며 그리고 또 미안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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