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충격적인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한강이 이런 글을 쓰는 작가인 줄 몰랐다. 여기저기 한강에 대한 글이 올라올 때마다 메마르면서도 수줍은 듯한 작가의 모습과 그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는 독자들을 보면서 내 나름대로 아마 어떤 막연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처음에 문학사상사에 이상문학상으로 오른 <몽고반점>을 보면서 난 무슨 중국집 얘기인줄 알았다. 그게 성인 여자의 엉덩이에 남아있던 푸른 반점이란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맞다. 사실 몽고반점은 우리가 태어날 때 엉덩이에 있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사라지는 그 반점을 뜻하는 것이니 오해한 내가 무식한 것이다.

아무튼 이 작품집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이란 세편의 작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작품 속의 화자는 첫 작품에서는 엉덩이에 몽고반점을 갖고 있는 여자의 남편이었는데 너무나 평범했던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몽고반점>의 나는 앞 작품 여자의 형부로 벗겨지기 시작하는 머리에 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마지막 작품, <나무불꽃>에서는 <채식주의자>의 언니이면서 <몽고반점>의 아내이다.

첫 작품을 읽을 때는 화자의 얘기를 따라가면서 특이하게,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 어떤 정신적인 변화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여자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면서 화자에 공감한다. 그냥저냥 평범한 사람인 작품 속의 ‘나’와 현실적인 독자인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는 여자의 정신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을 읽으면서 조금씩, 실제 이야기의 중심은 몽고반점을 가진 여자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법적으로 처제인 그 여자의 몸(특히 그 반점)에 집착을 보이는 예술가 형부와 몸을 섞기에까지 이르는 여자를 조금쯤은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할까. 결국 마지막 작품에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동생을 멀쩡한(!) 남편이 이용했다는 생각에 둘을 정신병원에 넣는 여자가 화자로 등장해 독자들을 이끈다. 평범한 사람으로선 도저히 동생의 광기도 남편의 예술도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동생이기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도우려고 애쓰는 여자의 심정이 십분 잘 표현되어있다.

결국 이 세 가지 이야기의 중심엔 몽고반점을 가진 여자가 있다. 너무나 평범해서 너무나 평범한 남자와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가던 여자가 어느 날부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한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그냥 단순히 어떤 철학이나 어떤 신념 또는 종교적 이유로 고기를 안 먹는 게 아니고, 그녀가 설명한 이유에 의하면 이 모든 게 꿈 때문이다. 끔찍한 꿈을 계속 꾸면서 그녀는 고기를 멀리 하게 되고, 멀리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그녀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그것은 그녀가 ‘식물적’이 되고 심지어는 ‘식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일반사회에서 ‘돌아버렸다’는 한 마디로 정의되는 여자의 상태는 ‘식물이 되어가는’ 도중에 오히려 너무나 동물적인 섹스를 형부와 나누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몸에 꽃과 가지를 그려 마치 식물인 척 하지만 그 식물들은 결국 두 인간의 동물적인 육체를 통해서가 아닌가. 여자에게 여전히 몽고반점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형부는 그 몽고반점에 대해 환상을 갖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그게 정말 예술적인 가치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따지지 않겠다. 어쩌면 그 몽고반점에 대한 환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몸을 섞는 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동생도 남편도 결코 이해하지 못한 삼부작 끝의 여자는 오히려 그런 현실이 더 꿈같다. 하지만 여자는 안다. 언젠가 깨어났으면 좋을 꿈이지만 결코 깨지 않을 꿈이라는 걸…

“어두운 숲이었어. 아무도 없었어. 뾰족한 잎이 돋은 나무들을 헤치느라고 얼굴에, 팔에 상처가 났어. (…)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서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에게 희생양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점점 더 동물적이 되어가는 사람들. 인간의 마음과 욕망이 너무나 평범하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욕심과 탐욕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이 되는 현대 사회를 단칼에 잘라버리는 듯 한강의 이 연작 작품집은 충격이었다. 아무튼 센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