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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눈물 나도록 좋았다. 이 소설, 정한아의 <달의 바다>…
일해야 하는 주말 토요일 아침, 몇 장만 넘겨보려고 했는데 다 읽고 나서 눈물 펑펑 쏟고도 그 흥분을 진정하느라 왔다갔다 오전 시간이 다 갔다. 어쩌면 내가 조금 오바를 하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감성적인 요즘에 딱 맞아떨어져 그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는 슬픔과 아픔이 어쩌면 더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픔을 따스함으로 변화시키는 이 글의 힘은 읽는 독자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글을 쓴 작가, 정한아에게서 나온 것이다.
달이나 우주에 가고 싶어 하는 모든 세상사람 가운데 실제로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실제 우주비행사가 되었고 우주를 다녀온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모가 바로 그 중의 한 사람이란다. 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모가 전해주는 우주와 우주비행사가 되는 이야기는 의외로 신뢰가 간다. 그리고 대학 졸업하고도 계속 취업시험에 실패해 몇 년 째 백수건달인 은미와 멋진 외모를 갖고 있지만 너무나 여성적이고 여자가 되는 수술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 민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 은미와 민이가 할머니의 부탁으로 십육 년이나 소식을 끊은 고모를 만나러 미국엘 간다. 어린 아들 찬이를 한국에 보내고 미국에서 우주비행사가 된 고모의 이야기와 기타 등등, 그리고 미국에서의 고모와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째 이야기가 무덤덤한 것 같다. 하지만 이 글 안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세상 이야기 우리 각자의 이야기 아픔과 슬픔이 스멀스멀 기어드는 인생 이야기 환상과 현실이 묘하게 섞여드는 이야기 나름대로의 깨달음 들이 모두 이불장에 차곡차곡 개켜 넣은 이불처럼 각각 모양도, 색깔도 다르게 정갈하게 표현되어 있다. 약간의 반전에 배신을 당하지만 그 배신은 곧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우리는 오히려 그 배신에 감사하게 된다.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것뿐이야.”라고 고모는 말한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어쩌면 제대로 된 선택보다 잘못된 선택을 더 많이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결과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냐에 따라서 우리의 ‘진정한’ 삶은 달라지는지도 모르고.
고모 말대로 우리가 만약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작은 위안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는 고모는 그래서 세상에 빚진 것도 없고 자유를 얻기까지 했다.
그런 고모의 마지막 편지는 최고의 보석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언제든지 명령이 떨어지면 저는 이곳으로 완전히 정착할 준비를 시작해야 돼요. 그때가 되면 더 이상 편지는 쓰지 못할 거예요. 지구와 달을 오가는 우체부는 없으니까요. 만약에 그런 날이 오더라도 엄마, 제가 있는 곳을 회색빛의 우울한 모래더미 어디쯤으로 떠올리진 말아주세요. 생각하면 엄마의 마음이 즐거워지는 곳으로, 아, 그래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밤하늘의 저 먼 데를 쳐다보면 아름답고 둥근 행성 한구석에서 엄마의 딸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주셨잖아요?”
이제부터 난 달을 볼 때마다 계수나무와 방아 찧는 토끼 대신 은미의 고모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최악의 인간’이 된 소설가, 정한아의 다음 이야기를 벌써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이렇게 눈물 나도록 따스한 세상 이야기를 해준 정한아가 고맙다.
다 읽고 나서, 눈물 펑펑 흘리고 나서 사랑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은 책이다. “눈물 나도록 좋은 책, <달의 바다>, 꼭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