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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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봤을 때 표지를 보고 좀 놀랐다. 끔찍했기 때문이다. 구덩이에서 뱀도 기어 나오고 구덩이에 갇힌 아이들 표정은 엉망으로 찌푸려져 있고 빨갛고 긴 손톱도 솟아나와 있고. 아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길래? 혹시 몇 년 전에 본 <Hole>이란 공포영화랑 비슷한 게 아닐까? 그 영화는 구멍으로 들어갔던 네 명의 청소년 이야기였다. 다 둑고 후에 혼자만 살아나와 그간 있었던 얘기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정말 소름끼치는 공포영화였다. 물론 무척 재밌었지만 말이다. (혹 못 보신 분이 계시다면 추천이다. 공포영화를 꺼리는데도 그건 끔찍했지만 재밌고 볼만한 공포영화였으니까. ^^;;)

이 <구덩이>도 다 읽고 나니 기가 막히게 재밌었다. 물론 앞의 영화처럼 완전 공포 스릴러는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재밌게 따라가면서도 함께 의문투성이의 추리를 동시에 하게 됐다. 다 읽고 나면 겉표지도 기가 막히게 표현되어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겉표지건만 읽기 전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게 좀 안타깝다. 그게 바로 묘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지독히 운이 없는 집안의 아이 스탠리는 어느 날 운동화를 한 켤레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이름만 캠프인 소년원에 갇힌다. “이게 다 아무짝에도-쓸모없고-지저분하고-냄새-풀풀-나는-돼지도둑-고조할아버지 탓이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처럼 시키는 대로 매일 구덩이를 파게 된다. 왜? 왜? 왜? 그런 의미 없는 일을 시킴으로써 자유를 박탈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게 하여 사회갱생의 길로 이끌 수 있을까?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단서가 조금씩 드러나고 중간에 한번 왜인지 결정적인 단서를 주지만 결말까지 가기 전엔 진짜 이유를 알 수 없다.

스탠리가 간 곳은 ‘초록호수 캠프’이지만 호수는 없고 밋밋하기만 한 황무지이다. 집안이 가난해서 한 번도 캠프를 가본 적이 없는 스탠리는 감옥 대신 이 캠프를 선택하지만 이 캠프는 그 캠프가 아니었다. 스탠리는 뚱뚱하고 덩치만 클 뿐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더 작은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소년원에도 위계질서가 있다는 걸 안다. 친한 척을 하다가도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르는 것도 그곳의 생리였다.  

‘그날 밤, 스탠리는 간지럽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낮에 자기가 달리 행동할 수는 없었나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뭔가를 발견하면 하루를 쉴 수 있는데도 그걸 다른 아이에게 양보하고, 다른 아이가 훔친 물건 때문에 누명을 써도 자신이 했다고 말해주는 눈치도 있었다. 그렇게 매일 땡볕에 힘들게 구덩이를 파며 스탠리는 생각을 한다. 친구와 서로 도울 줄도 알고 하루하루 더 튼튼해지고 강해진다. 후에는 친구를 위하는 생각에 자신감까지 넘친다.  

이야기가 마냥 소년원에서 일어나는 아이들 얘기만 있으면 사실 추리라고 할 수 없겠지만 이 책에는 평행적으로 옛날 옛적에 이곳에서 있었던 이야기, 즉 스탠리의 조상들과도 연관된 얘기가 함께 즐겁게 펼쳐진다. 이런 이야기들을 재밌게 읽어가는 가운데 언뜻 놓치고 갈 수도 있는 복선이 수도 없이 많다.

그 옛적에 사랑도 쉽지 않았겠지만 더구나 백인 여선생과 양파장수 흑인 쌤의 사랑이야기는 너무나 달콤하고 아름답다. “오, 쌤. 날은 더운데 나는 춥기만 해요. 손이 차고, 발이 차고, 얼굴이 차고 그리고 내 심장이 차가워요.” 모든 걸 고칠 줄 알았던 쌤은 “그것도 제가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이런… 결말이 어떻게 되든 고칠 건 고쳐야지. 아암… 사랑뿐만 아니라 옛이야기와 현대 이야기가 서로 겹치고 얽히는 곳이 정말 많다. 물론 무딘 난 다 읽고 나서야 한꺼번에 다 깨달아버렸다. 히야~ 그런 이야기였단 말이지.

이 기가 막히게 황당한 이야기가 아름답고 슬프게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그 기조에 흐르는 주제는 운명에 굴하지 않고 실패하면서도 배우는 것이다. 또한 선하게 사는 것, 약속의 중요성, 배려와 우정 등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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