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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머니
이시다 이라 지음, 오유리 옮김 / 토파즈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제목에 속으로 한참 웃었다. 강남의 ‘큰손’이라든가 굳이 ‘큰돈’이라 하지 않고 빅머니라 하다니 말이다. 더구나 ‘파도 위의 마술사’라는 멋진 원제를 놓아두고 저런 단어를 제목으로 삼다니. 작가도 아니고 사실 일개 독자일 뿐인 나도 ‘돈’이라는 단어 대신에 늘 ‘머니’라는 단어를 쓰기 때문에 저 제목과 모종의 공감대랄까 그런 것을 느꼈던 것이다. 내가 ‘돈’이라는 우리 말 대신에 ‘머니’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새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 대한 일종의 반항 때문이다. 너무 현실을 모른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난 아직 물질이나 ‘돈’ 대신에 사람을 더 믿는다. 시집 간 친구들 말의 공통점은 모두 ‘돈’ 많은 넘(이 단어도 실제 단어보다 뜻을 약화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사용한다)을 물으라는 것이다. 그게 최고라고. 이 세상엔 아직도 그 비인간적인 ‘돈’보다 더 가치 있고 더 행복할 수 있는 따뜻한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새 우리 세상은 ‘돈’이 하나의 진리가 되어버렸다. ‘돈’ 때문에 울고 ‘돈’ 때문에 웃고. 그 넘의 ‘돈’이 뭐길래 말이다.
이 작품은 ‘돈’에 대한 얘기이다. 읽다 보니 재미도 있고 흥미진진하고 즐거웠다. 한 젊은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못하자, 카지노에서 좀스러운(!) 도박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그 승률을 따지며 어떻게든 먹고 산다. 확률이든 운이든 어떤 식으로든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돈’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내게 기계와 승부를 하는 주인공의 승률에 좀 의아하기도 하고, 어떻게 기계와 온종일 시간을 보내며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지 특이하기도 했다. 내게 일이란 신성한 것이고 ‘돈’이란 그 일에 대한 대가일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띤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식의 삶은 미래가 없는 인생 낭비로만 보였다.
물론 카지노에서 젊은이가 보내는 시간은 이야기의 도입부에 불과하다. 젊은이는 거기서 한 노인을 만나고 그 노인에 의해 주식을 알게 되고 무수한 ‘돈’이 소리도 없이 움직이는 ‘마켓’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그것도 공부고 노력이고 또 다른 세상의 형태이다. 비록 물건을 생산하거나 육체적 노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켓은 어찌 되었건 ‘돈’이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권력세상인 것이다. ‘투자가 편한 직업이라고? 새빨간 거짓말. 몸을 움직이지 않는 만큼 머리와 심장은 더할 수 없이 혹사당해야 한다.’고 시라토는 말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또한 그에 대한 쾌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단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조건이지만.
주식의 원리는 더 없이 간단하다. 주가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는 것이 주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식의 이점을 최대한도로 끌어내도 난 주식을 믿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을 20억어치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20억을 손에 쥐기 전에는 내게 그 20어치의 가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 다음 날 장이 폭락하거나 회사에 악재가 낀다면 그 가치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극적인 생각을 갖고 부자 되긴 글렀다고 할 것이다. 물론이다.
요즘엔 펀드가 한창이다. 은행원이 하도 꼬셔서 작년에 펀드를 네 개나 들었었다. 큰 액수도 아니었고 ‘돈’을 벌어보자는 생각보다는 펀드가 뭔지 알고 싶은 호기심에 시작했었다. 5백만원을 넣은 중국펀드. 늘 원금 아래에서 놀더니, 중국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소식에 어느 날 4백2십만원이 되었다. 최악의 상황은 제로가 되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시작하긴 했지만, 내가 힘들여 번 ‘돈’이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잊어버리고 한 3년 놓아두라고 했지만, 난 6개월 만에 그 펀드라는 것이 내 적성엔 안 맞는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장이 좋아져 10% 정도의 이익이 나자, 곧 해지해버렸다. 장이 더 좋아져 남들이 아무리 20% 아니 200% 이익이 났다고 좋아해도 난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주식에 손을 대거나 펀드를 하지 않을 작정이다. 왜냐… 정신적인 노력과 고통도 노동이라면 노동이겠지만 그 안엔 생산적인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을 쫓아 이익이 났다 싶으면 웃고 손해가 났다 싶으면 울고. 그런 정신적 피폐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난 그보다는 땀 흘려 번, 적은 내 ‘돈’을 내 손에 쥐고 웃는 것이 더 좋다.
물론 이 이야기가 단지 그저 ‘돈’과 ‘마켓’ 이야기라면 소설이 아니라 경제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엔 다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돈’을 매개로 ‘돈을 읽는 흐름’과 ‘돈’을 넣고 ‘돈’을 먹는 법이 인간 심리와 함께 아주 흥미롭게 전개되어있다. 또한 퇴직 노인들을 상대로 한 보험사기, 그에 따른 인생사도 복수와 얽혀, 어찌 보면 신나는 액션물처럼 속이 다 시원할 정도로 재밌다. 첫 투자를 실패로 날리자, 노인이 젊은이에게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분할하는 것이네. 마켓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욕망을 갖고 있어. 하지만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야만적인 사람은 시장에선 단순한 사냥감이 되고 말지. 갈기갈기 뜯겨 쥐도 새도 모르게 퇴출된다 그거야. 자금을 분할함으로써 자신의 욕망도 분할한다.”
은행과 손해보험사의 변액보험사기를 당해 자살까지 내몰리는 노인들을 구한다는 복수를 명분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이 이야기는 결국 ‘돈’ 놓고 ‘돈’ 먹기의 얘기인 것이다. 공모와 사기도 불사하고 시라토를 감옥에까지 가게 하는 고즈카 노인은 결국 자신의 딜에는 성공했다. 또한 마지막 시라토와 헤어지기 전에 시라토에게 하는 말은 마치 진리처럼 들린다. “일본인들은 돈을 뒤가 구린 것, 더러운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돈 가지고 돈 버는 일은 땀 흘리지 않고 득을 보는, 나쁜 일이라 본다고. 이제는 그런 단계를 넘어설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딜에서 만약 실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한 시라토를 감옥에 가게 하면서까지 그 일을 했어야만 했는가? 감옥에서 시라토가 잘못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정도의 공부를 해서, 연구와 분석을 해서 누구나 마켓에서 ‘돈’을 벌까? 누구나 노인이 꾸몄던 공모와 사기를 쳐야 했다면, 또한 감옥에까지 가야 한다면 누구나 그 일을 할까? 그렇다면 그 마켓이란 곳은 모든 개미 투자자들의 희망이고 삶의 빛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에 따르는 불행도 만만치 않은 것이 아닐까?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밌었지만 난 결국 이야기 기조에 들어있는 원칙과 방법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럼 그 리스크는 누구 몫인데? 결국 투자자, 내 몫이 아닌가. 그래도 마켓의 ‘빅머니’ 파도에 몸을 던지겠는가? 당신이 고즈카 노인처럼, 시라토처럼 ‘파도 위의 마술사’가 될 자신이 있다면, 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