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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문단에서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정희 선생님의 책을 이제야 만났다. 한국문학을 좋아한다는 말도 다 뻥이라고 해도 정말 할 말이 없다. 웃긴 건, 80년대, 90년대에 한국문학 책을 많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땐 선생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책방은 물론이고, 도서관도 헌책방도 꽤 많이 돌아다닌 시절이었는데도 어디서도 그 이름을 본 기억이 없다. 이 책도 나온지 십년이 지났는데, 최근에야 이름을 들었으니 말이다.
모두가 못 살고 모두가 힘든 시절, 남매는 엄마가 집을 나가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외가댁도 전전하고 큰 집도 전전한다. 친척들 집에서 천덕꾸러기로 구박을 받고 언어폭력에 시달려도, 남매는 굶지 않고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집도 얻어놓았고 아이들을 길러줄 새엄마도 올 거라며 아이들을 데려간다. 여러 집이 세 들어 사는 곳에 방 한 칸에 연탄, 석유곤로를 사용해도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고 학교도 다닌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노랗게 물들인 새엄마는 어느 날, 아버지가 공사장에 간 사이 사라져버린다. 아버지는 새엄마를 잡아오겠다고 떠나고 아이들만 남게 된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나락으로 떨어져간다. 나름 성숙한 누이라고 허약한 남동생에게 밥도 해먹이며 엄마 노릇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세상이란 아이들만이 헤쳐 나가기엔 너무 힘겨운 곳이고 또 아이들이 짐작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부지기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은 안집할머니의 말씀처럼 그런지도 모르지만.
‘인생살이가 소꿉놀이 같아. 한바탕 살림 늘어놓고 재미나게 살다 보면 어느새 날이 저물어오지. 그러면 제각각 놀던 것 그대로 그 자리에 놓아두고 제집으로 가버리는 거야. 사람 한평생이 꼭 그래.’
어려웠던 시대상과 불완전한 가정, 또한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 등이 소소한 일상과 함께 삶의 이면을 보여준다. 인생의 쓰디쓴 모습이랄까.
우주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되라고 우미라 하고, 우주에서 제일 멋진 남자가 되라고 우일이라 이름 지어진 남매가 다 비워내고 새가 되는 이야기라고 하면 좀 억지일까. 아니,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의 비극, 그 이유는 단 하나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돈을 벌지 못해 가난해지면 여자들을 때리고 아이들을 내던진다.’ 우미의 엄마도 처음에 집을 나간 건 아버지한테 맞아서였다. 아버지가 새 살림 장만을 하느라 장에서 돈을 쓰자, 어린 나이에도 아이들은 ‘아버지가 지갑을 열 때마다 안타깝게 줄어드는 돈을 보며’ 한숨을 쉰다.
‘이 세상에 한 번 생겨난 것은 없어지는 법이 아니라고, 먼 옛날의 별빛을 이제사 우리가 보는 것처럼 모든 있었던 것, 지나간 자취는 아주 훗날에라도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연숙아줌마는 말했었다.’ 우미, 우일이라 이름지어 그렇게 부르던 목소리가 왜 이제사 우미에게 들리는가. 우일이 따라 다 비우고 새가 되려는 찰나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