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달콤한 나의 도시>로 단번에 반해버린 정이현의 단편집이다. 나이 서른 즈음에 겪는 기가 막힌 연애 심리를 보여준 이 작품을 무릎을 치며 읽었다. 때론 달콤한 낭만이 때론 씁쓸한 현실이 함께했지만, 책을 읽으며 주인공 오은수와 함께 연애를 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공감했다고 할까. 다른 친구들은 연애보다는 의외로 현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오은수에 더 공감했던 것 같다. 여자 나이 서른 즈음이라는 게,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이 사회 안에서 참 불안정한 위치니까 말이다.

이 단편집에는 <타인의 고독> <삼품백화점> <어금니> <오늘의 거짓말> <그 남자의 리허설> <비밀과외> <빛의 제국> <위험한 독신녀> <어두워지기 전에> <익명의 당신에게> 등 모두 열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현 시대상을 함께 자세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훑어본 느낌이다. 대다수의 작품 결말은 안정, 안주 그런 것이었지만, 평안함이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속 한 켠에 지나간 아픔, 공포 또는 비밀 같은 것을 나의, 내 가족의 이기를 위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적 결말보다 더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안정적인 끝, 그 끝은 앞으로 남은 생에 대한 또 다른 불안과 비극의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또한 우리의 인생 아니겠는가. 끝없이 반복되는 불안과 잠시의 안정, 그 안정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나만의 비밀, 불안 말이다. 연애 얘기보다 한층 깊고 다양하게, 사회적인 사건이나 현대성을 보여준 정이현, 우리 사회를, 우리 모두의 이기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인간의 불안을 현실적으로 날카롭고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우리 부부는, 우리는, 여전히 침대의 양 끝단에서 잠을 잤다. 훼손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긍정적인 안주다. <어두워지기 전에>
‘남편이 다정하게 잔을 부딪쳐왔다. 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 부정적인 안주다. <어금니>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진정한(!) 진정성은 어쩌면 <오늘의 거짓말>에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출근해서 남의 주민등록증과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들어 상품 후기를 거짓말(!)로 작성하는 주인공은 결국 머니를 벌기 위해 거짓말로 산다. 하지만 자신의 거짓말을 믿고 러닝머신을 산 윗집에 사는 그분은 누군가를 너무 닮았다. 그래서 알고 싶다. 정말 그분이 그분인지. 스무 개도 넘는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하는 직장을 그만 두는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이디로 러닝머신의 진정한 리뷰를 작성한다. 그리고 노인에게 편지를 쓴다. 물론 부치지 않을 편지지만 주인공은 묻는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나는 왜, 당신이 아직도 여기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왜.” 주인공은 그간의 거짓말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녀의 마지막 바람이다. ‘그럼 나는, 저 미지의 1979년에 대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될까? 1979년 7월 7일 서울의 대기 온도와 바람이 불어오던 방향, 바람의 속도 같은 것들. 1979년 7월 7일생의 불완전한 거짓말, 진짜 비밀의 공포에 관하여.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작품들 모두 각각의 색깔이 있었고 흥미로웠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삼풍백화점>이었다. 우리 기억에 참 쓰라린 사건으로 남아있는 삼풍백화점 붕괴에 얽힌 얘기를 작가는 주인공인 나와 R의 우정(!)으로 담담하게 끌어나가고 있다. 그 시대도 그 시대에 평범하다면 평범했던 주인공도 삼풍백화점 붕괴를 겪었고 이젠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위험한 독신녀>에서 서른여덟의 주인공이 맞선남을 두 번째로 만나는데, 한 살 연상의 남자가 탐색 모드를 가동한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생각한다. ‘끝이 두려워지는 문답이었다. 그러나 결혼 경력이 없는 서른아홉 살의 총각이 흔한 것은 아니었다.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나 같으면 그래도 괴로웠을 것 같다만 그게 현실이라 받아들여야 한다니…   

<어두워지기 전에>에서 단적으로 보여주는 정이현식 현실이다. ‘문은 결국, 열리거나 닫힌다.’  되도록이면 정이현의 현실이 앞으로도 계속 인간과 세상을 향해 열리는 문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