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개
양쯔쥔 지음, 이성희 옮김 / 황금여우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마치 한편의 위인전을 본 듯하다. 6백70여쪽의 이 두꺼운 책을 끝냈을 때, 내게는 아직도 티벳 초원의 사자개가 으르렁거리고 달리고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인간보다 더 영리하고 의리를 지키고 충성을 다하는 사자개. 그들의 생각과 행동엔 분명 영웅적인 면이 있었다. 하지만 두꺼운 책을 좋아하는 나도 5백여쪽이 지나가자, 살짝 반복도 느껴지고 좀 지루해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는 즐겁고 그다지 어렵지 않은 독서였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유쾌하게 의인화된(!) 동물 세계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그 동물이 보통 동물이냐고… 다름 아닌 사자개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지명 그리고 음식 또는 예절 같은 것들이 두 번, 세 번 살펴보게 하며 시간을 잡아먹기도 했지만 그것은 또한 이국적 문학의 매력이기도 했다. 앞부분에서는 읽어가며 연속 등장인물들을 돌아보며 읽었지만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곧 개들의 이름도 인명도 모두 쉽게 머릿속에 그 느낌이 떠올랐다. 

사자개는 원래 야수였는데, 어느 때부터 티벳의 고원에서 인간들과 짐승들을 야생의 금수들로부터 지켜주는 개라고 한다. ‘몸은 나귀만 하고, 성질이 사납고 목소리가 우렁찬 것이 마치 사자와 같다’고 한다. 책에 그림이 있는데, 털이 북슬북슬한 것이 꼭 개와 사자를 모두 닮았다. 이야기는 티베트를 강제합병 하기 직전의 불안한 시대에서 시작한다. 유목민에다 다민족이니 이를 통합하기 위해 각 지구마다 한족을 보내 동태를 살피게도 한 때였다. 한짜시(한족의 상서로운 사람)라고 불리는 나레이터의 아버지는 기자의 임무를 띠고 시제구로 가다 사자개를 이끌고 있는 샹아마의 아이들을 만난다. ‘천국의 과일’이라는 땅콩을 준 인연으로 아이들과 사자개(사자개의 주인공격인 깡르선거)는 시제구로 들어오게 되는데, 한짜시는 두 부족이 몇 세대 전부터 철천지원수였던 것을 모른 채였다. 샹아마에 유령들이 떠돈다고 그곳을 떠난 아이들과 깡르선거는 갈 곳이 없었던지, 계속 시제구의 영지견들과 마주치고 결국엔 붙잡혀 원수의 아이들을 복수하기 위해 ‘손 자르기’ 형벌이 가해질 참이었다. 한짜시와 시제구사의 승려들은 아이들의 손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을 빼돌리나 결국 들키고… 그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과 논쟁, 그 사이로 시제구를 지키는 영지견들과 깡르선거, 또한 샹아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속인이 어마어마한 무기로 키운 당샹나찰 등의 만남과 전투가 계속된다.       

‘발생한 위험을 즉각 해결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영지견 사자개의 치욕인 것이다. 사자개들은 치욕 속에서는 절대로 살 수 없다. (...) 그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충성과 희생이며, 모든 동물을 월등히 앞선다는 명예, 인류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용기이다.’ 그 와중에 사자개들과 얽히고설키게 된 한짜시는 사자개들의 성품과 위엄에 매료당하고 사랑하게 된다. 

‘사자개들은 말만 못 한다 뿐 무엇이든 다 알고 있는 듯 했다. 정말 희한한 건 사람보다 더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거였다.’ 양의사인 메이둬라무도 사자개들을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또한 먹이를 얻기 위해서만 싸움을 하는 늑대와는 달리 ‘사자개가 살아가는 목적은 먹이를 포함한 어떤 실리적인 목적도 초월한다. 늑대 떼들과 혹은 낯선 사람들과, 야수들과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절대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존과 식욕과 전혀 관계가 없을 지라도 인간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의리 때문에, 천막집과 영지의 안전을 위해 싸웠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다.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들이 어떤지 알려주는 대목이 있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래? 시제구 초원하고 샹아마 초원의 갈등은 역사가 깊다구. 아주 아주 깊어. 너무 깊어서 이제는 누가 맞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야. 너 이거 알아? 부락간의 전쟁은 초원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야. 초원의 역사는 부락 간의 전쟁의 역사라고. 싸움이 없으면 부락도 없고, 초원도 없어. 손 자르기? 그것 말고도 발 자르기, 귀 베기, 코 베기, 심지어 산채로 가죽 벗기기, 머리 자르기 이런 일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구. 옛날에는 별것도 아닌 일이었어.”

야수보다 더 용맹하고 집 지키는 충견보다 더 충직한 사자개는 늘 늑대와 비교가 된다. ‘늑대는 자기 배를 신으로 삼고, 평생 배불리 먹기 위해 산다. 사자개는 도를 하늘로 삼는다. 그들의 전투는 이미 식욕의 저급한 차원을 벗어났으며 ‘충성과 신성한 정의, 직책을 위해서’라는 정신력을 보여준다.’ 개에게서 인간보다 더한 인간성을 발견하는 아버지, 한짜시에게 이런 사자개는 영웅이었다. 인간보다 더 영웅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자식을 빼앗기게 생기자, 백사자 까바오썬거는 자기 새끼를 잡아먹는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다른 이가 사랑할 수 없다. 자기가 미워하는 대상은 물어 죽이고 잡아먹는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도 물어 죽이고 잡아먹는다. 왜냐하면 사랑은 소유니까. 다른 사람은 절대 소유하지 못하게 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개의 면모인 것이다. 개는 자기 새끼들에게 누군가 해를 끼칠 것 같으면 자신이 먼저 새끼를 둑인다. 그것을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면 지독한 사랑의 감정에 따른 소유로 볼 수도 있겠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깡르선거는 시제구 영지견들의 대왕 사자개도 물리치고 자신의 주인인 샹아마의 일곱 아이들을 찾아가는데, 마지막 관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송귀인 다츠가 살아있는 병기로 키운 당샹나찰과의 피할 수 없는 전투였다. ‘피하기는 하지만 물리지 않고, 퇴각하지만 속도의 변화가 없다. 누가 약자의 기지가 찬미를 받을 만한 행동이 아니라고 말했던가? 그는 번개가 치는 가운데 번개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다. 광풍이 부는 가운데서 광풍의 세력을 피해내고 있다. 그는 사람이 탄복할 만한 영웅적인 기개는 없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탄복하는 영웅적인 능력의 음혈왕 당샹나찰도 그의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그로부터 시절은 변해 초원에서 강력한 힘을 가졌던 사자개들도 유목민들도 폭설 등의 자연재해와 문화대혁명 때 다시 부활한 부락간의 전쟁 등으로 인해 대다수 둑어 갔다. 하지만 사자개의 둑음도 무릅쓰고 타자를 보호하려는 충성심과 영웅적인 행동은 사람들 마음에 남았다. ‘그 고귀하고 우아하며 신중하고 위엄이 넘치는 사자개의 모습, 조금도 이기적이지 않고 타인만을 위하는 사자개의 품격, 대의를 지키는 늠름하고 용감한 충성스런 사자개의 정신은 한 번 바라만 봐도 평생 오매불망 잊지 못하게 된다.’ 양의사 메이둬라무가 리니마와 그녀의 애정행각을 다 보았던 어린 아이, ‘아오떠지’를 외치던 맨발의 소년 빠어추쭈와 결혼을 하는 설정은 좀 약해보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불가능할 것도 아니다. 사랑이니까… 

덧붙임: 원래 늑대는 우리나라 평안도에서만 난 짐승이라 ‘늑대’는 한국 고유어라는데 이 작품에서 숱하게 사자개와 늑대를 대척점에 놓고 비교를 한다. 보통 서양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늑대는 사실 이리(wolf)라고 한다. 궁금한 건 한자어로 어떤 글자가 과연 늑대로 번역이 된 걸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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