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공화국에서 살아남기 - 김주덕 변호사의 사기 예방 프로젝트
김주덕 지음 / 가야북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세상은 살아볼수록 겁이 나는 곳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면서부터 처음에 제일 날 힘들게 했던 건 전세 아파트 계약이었다. 생각 같아선 구박을 받아도 계속 부모님 그늘에 있고 싶었건만,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방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어쩌랴. 그런데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여러 예방책을 세우게 되었다. 등기부등본도 두 번, 세 번 떼어달라고 했고, 주인이 불안정한 사업을 하는 사람인지(본인의 의지가 아닌 채로 망할 수도 있지 않은가! -참고로 고의성이 없으면 형사사건이 안 되고 민사사건이란다. 즉, 금전상의 피해를 입힌 사람을 고소해 벌을 받게 할 수는 없고, 채무불이행에 대한 민사사건으로 배상을 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단다!), 은행에 잡혀있는 대출도 부동산에서 함께 가서 말소하도록 잔금도 주인이 아닌 부동산에 이체해주었고, 말소하자마자 증명서를 부탁했다. 비행기 값이 들어도 미리 한번 내려와 동사무소에 가서 계약서를 갖고 확정일자를 받았다. 남들은 별 것 아닌 것 갖고 그렇게 유난을 떠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 당시 내 전 재산이었다. 남들 눈에는 새발의 피지만 나중에 이름도 없는 요양원에서 주민등록증도 뺏기고 매 맞으며 남은 여생을 보내지 않으려면 그 정도는 해놓아야 했던 것이다. (오바란 거 안다. 하지만 남편도 새끼도 없는 내 미래를 누가 알랴!) 이 모든 게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했던 일이다.

세상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연일 사건, 사고가 뉴스로 전해지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이 사회에 대해 그런 경계를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참 슬픈 일이지만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이 책의 제목 사기공화국은 우리 현재 사회를 말할 수도 있고, 사기가 만연하는 사회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사회,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와 타인을 등쳐먹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 사기공화국이다. 이 책은 ‘왜’ 사기를 당하는지, ‘구체적인 사기수법’은 어떤지,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쓴 비교적 상세한 전천후 보고서다. 오랜 세월 형사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를 거쳐 현재 변호사를 하고 있는 저자는 사기꾼, 피해자를 오랫동안 봐왔고, 실제로 법이 어떻게 이들을 대하는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저자가 단순한 사건만을 열거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사기꾼과 피해자의 심리까지 꿰뚫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먼저 ‘돈’이 최고의 권력으로 자리 잡은 이 나라의 현실을 설명한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와 어떻게든, 무슨 수를 쓰든 많이만 벌면 된다는, 이 사회에 만연하는 도덕적 해이를 말한다. 일하지 않고 노력을 덜 들이며 많이 버는 방법을 쫓고, 단번에 일확천금을 하려고 욕망을 불사르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아직도 사람만 믿고 빌려주는 주먹구구식 거래는 더 많은 사기에 노출되게 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법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사기에, 사기당한 사람의 피폐 정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벼운 사기범 처벌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도둑과 강도에 비해 사기죄는 ‘사람을 속여 재물을 편취하는 것이고, 가장 기본적인 무기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분식회계 같은 회사의 거짓말로 회사가 망하고 나면 결국 공적 자금이 들어간다. 그건 곧 우리의 세금이다. 개인의 재물 편취 사기뿐만 아니라 이런 대규모 사기까지 개인부터 사회까지 전반적으로 사기에 대한 의식을 새로이 하고 사기가 발을 못 붙이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사기의 재구성에서는 애정사기부터 결혼사기 취업사기 이자사기 부동산사기 피싱사기 프랜차이즈사기 주식사기 도박사기 역술사기 사이버범죄사기 보험사기 브로커사기 외국투자사기 국제결혼사기 등등 별별 사기가 다 나온다. 일단 케이스를 하나하나 보여주고 원리를 설명해준다. 왜 사기를 당했는가. 그 다음엔 사기꾼과 피해자의 심리가 나온다. 왜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또 다른 신종 케이스도 보여준다. 사기 케이스를 다 열거할 수는 없다. 원리를 이해했고, 왜 당하는지 심리를 이해했다면 이제 응용하는 것은 내 역할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저자의 속 시원한 말투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얘기하면서도 이래서 당했다, 저래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등의 설명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이 재밌다. 정말 말솜씨가 그만이라 읽는데 전혀 지루할 틈도 없이 빠져든다.  

사기의 구성요건에서는 누가 왜 사기를 당하기 쉽고 누가 사기꾼인가에 대한 얘기와 사기를 당했을 때 해야 할 일 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친구 중에 정말 의심 많고 똑똑하고 지적인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3천만 원의 사기를 당했다고 얘기했다. 그것도 형부한테. 내용인즉슨, 임대사업을 하던 형부가 투자를 부탁해왔는데, 처음에는 1천만 원의 적은(!) 돈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월 20만원의 높은 이자를 주는데, 몇 달 문제없이 계속 이자가 들어오자, 3천만 원의 적금을 든 것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까지 해 집어넣은 것이다. 결국 사업은 부도가 났고 친구는 원금을 못 찾은 것은 물론, 사기당한 돈까지 적금을 부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너 같이 똑똑한 애가…”라는 내 말에 친구는 “그게, 욕심이란게 한순간이더라구…”라고 했다. 똑똑한 척하는 사람들이 더 쉽게 당한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자만심에 상대의 신분도 확인하지 않고 뻔히 보이는 사실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 사기사건의 동기는 ‘궁핍이 아니라 탐욕’이라고 저자도 말한다. 욕심이 문제인 것이다. 귀가 얇은 어리석은 사람들, 자기분야에선 똑똑할지 몰라도 험한 세상을 살아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들, 거절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사기 당하기 쉽다고 한다. 그럼 누가 사기꾼인가. 본인은 절대로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더 진실한 척, 착한 척, 자신에 대한 정보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서 말이 많은 사람, 알게 된지 얼마 안 돼 돈 얘기를 꺼내는 사람, 거래를 서두르는 사람들이다. 예전엔 깔끔하고 세련된 스타일이 많았지만 이젠 어리숙한 척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기 예방 십계명에서는 외부적인 사기환경 뿐만 아니라 사기꾼을 끌어당기는 내부적 요인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역설한다. 평소에 사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남을 쉽게 믿지 말고, 사람을 잘 분별하고, 허황된 욕심을 부리지 말며, 거래는 신중하게(개인 간의 돈거래는 원칙적으로 금지!) 하고, 매사를 철저히 확인하고(서류작성!), 법과 제도에 허점이 많으니 절대로 법을 너무 믿지 말고, 일 처리할 때는 신속한 대응을 하고 사기를 당하면 신속한 조치를 취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줄 알아야 하고,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었다고 자기 자신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는 열 가지다. 저자는 각 단계별로 아주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놓았다. 

결국 이 책은 사기에 대한 보험이다. 당하고 읽으면 늦는다. 전 재산 모두 사기 당하고 집안과 사업은 엉망진창이 된 다음에 후회해 봤자다. 당하기 전에 조심하고 예방을 해야 한다. 증명하기 어려운 사기, 법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내가 조심해야 한다~! 첫눈에 반하는 연애처럼, 교통사고처럼 사기도 한순간이다. 눈에 콩깍지가 쓰이는 것이다. 서두르면 사기 당하기 쉽다. 일은 천천히, 대신 일이 벌어진 다음에는 신속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 또한 돈 얘기가 나오면 종교도 이단이듯, 돈을 빌려달라는 진실한 재벌 2세, 능력 많은 사업가는 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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