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 *^^*)
얼마 전에 드라마 <황진이>에서 하지원이 멋진 연기를 펼쳐 주목을 받았다.
재밌고 잘 만든 드라마였는데, 난 텔레비전이 없어 어쩌다 띄엄띄엄 봤다.
물론 볼 때마다 좋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다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드라마 황진이의 인생에서는 기생이라는 직업(!), 즉 예인을 강조했던 것 같다.
그녀의 문학, 춤, 음악 등등을 여인의 숙명적인 운명을 따르거나 술을 따르는 쪽보다는,
시대적인 어려움을 무릅쓰고 한 여인이 당당하게 자신의 끼를 발산시키는 쪽을 부각 시켰다. 물론 좋은 드라마답게 스승과 제자의 관계, 갈등, 경쟁 등등 또 남성들 중심의 세계에서 그 남성들과의 관계 등등도 무척 상세히 그려졌던 것 같다.
이번 영화 <황진이>는 일단 송혜교라는 예쁘디예쁜 배우, 그리고 원작자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 등등으로 이목을 끌었다. 한 마디로 아름다운 영화였다. 곱디고운 한복의 아름다움과 함께 영상미, 시장이나 뒷골목 등등 정말 어디 한 군데의 틈도 없이 잘 만들었다. <스캔들>이나 <음란서생> 등의 한국 고전영화에서 봤던 소세모습이나 화장모습 등 당시 일상의 모습이 차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똑같이 되살아났다. 봐도 봐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도도하고 당당한 여인의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송혜교도 노력 많이 했다고 본다. 살이 쏙 빠져, 소녀의 이미지보다는 이제 성숙한 여인의 이미지를 풍기기도 했다. 조금은 불편한 장중한 목소리는 그녀의 노력의 일환으로 보겠다. 그저 예쁜 소녀였던 송혜교를 이젠 배우로 불러도 좋으리라…
영화는 드라마와는 달리, 일단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같은 레벨로 올라갈 수 없어 사랑하는 여인을 끌어내리려 했던 남정네, 놈이는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망쳤다는 후회를 하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진 것이다. 살짝 김기덕의 <나쁜 남자>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사랑은 사랑인 것을 어쩌리…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난 뒤, 당당히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 진이는 놈이에게 첫 정을 주며 기둥서방이 되어달라고 하지만, 그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어 놈이는 떠난다. 결국 기생은 기생대로, 의적은 의적대로의 삶을 살지만, 그들의 운명과 사랑은 얽히고설킨다.
하나 정말 흥미로웠던 것은 황진이와 사또와의 관계였다.
“오늘 내 수청을 들러온 것이냐?”
“수청을 들라시면 들어야지요.”
“그럼 네 진짜 마음은 어떠하냐?”
“굳이 여쭈신다면, 싫습니다.”
억지로 기생을 품지 않겠다는 사또와 황진이의 관계는 마치 서로 권력 다툼을 하듯 보인다. 실제 권력을 가진 사람의 겉멋 들린 아량과 피권력자이면서 진정한 권력을 쥐고 있는 듯 보이는 일개 기생의 관계는 알 듯 모를 듯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결국 친구 같은 몸종의 신랑을 살리기 위해 마음이 동해 옷고름을 푼다는 황진이, 다음 날 아침, 목적을 달성하자 다시 옷고름을 다잡아 맨다. 그 달라진 모습에 사또의 한 마디가 의미심장했다. “소견 좁은 여자만이 방금 마신 물에다 침을 뱉는 법이다.” 황진이도 지지 않는다. “어떤 못난 남정네가 기생 하나 품는데, 이리 오래 걸린답니까?” 그러면서 진정한 남자로 서화담을 꼽는 황진이…
북한 작가의 대사들은 간혹 너무 순수해서(!) 식상한 것도 있었고, 2시간 반이 넘는 영화는 2시간이 지나자, 좀 지루했다. 배우 하나하나의 몸짓, 손짓, 눈짓까지 표현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2시간 정도였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같은 역할을 별 시간차도 없이 다른 두 여배우가 하다 보니, 아무래도 전작의 포스가 많이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오면서 화면을 봤는데, 혼자 한참 웃었다. 의적 놈이의 밑에서 의적을 하고 황진이 몸종의 신랑이 되는 사람 이름이 개똥이가 아니고 ‘괴똥’이었던 것이다. 그걸 누가 그렇게 들었을까 싶어서, 별 것 아니었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