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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스캔들 ㅣ 창비청소년문학 1
이현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평점 :
처음에 스캔들이라는 단어를 보고는 청소년들의 ‘풋풋한’ 연애얘기나 ‘추문’이 이는 연애얘기인 줄 알았다. 스캔들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뜻 가운데에서도 요즘에는 유난히 그런 뜻으로 많이 쓰이지 않는가. 그래서 막연히 교사와 학생의 연애 감정, 남녀 친구들 간의 삼각관계 또는 동성 친구들 간의 어떤 감정 등 그런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어쨌건 이런 이야기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스캔들 범주에 들어가는 케이스들이 아닌가. 그런데 웬걸. 전혀 잘못 짚었다. 사실 여기서 스캔들이라는 말은 어떤 ‘사건’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물론 잠깐 마음 설레게 하는 감정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저 ‘사건’의 범주 안에서이다.
주인공(!) 이보라의 중딩 학교생활백서 1조는 ‘튀지 않는다, 밟히지도 않는다!’이다. 만만치 않은 중딩 생활을 보내기 위한 보라의 지침인데, 난데없이 천방지축 이모가 학교 교생으로 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물론 공과 사를 분명히 구별하는 보라는 이모를 모른 척하고 이모도 나름 협조한다. 그런데 이모는 단순히 나이 서른에 외모가 빼어나서만 튀는 이모가 아니었다. 보통 사회의 범주에서 보면 용납하기 힘든 현실을 갖고 사는 이모였다. 그런 이모의 ‘사생활적인’ 사진이, 가면과 닉네임을 쓰면서 2학년 5반 아이들이 이용하는 비밀 카페에 뜨면서부터 사건은 크게 불거지기 시작한다. 이용도도 낮은 카페였지만 가면 쓴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때리는 게임은 너무 한다는 댓글과 함께 아이들이 모두 한번쯤은 해본 게임이었다.
이모의 사진들과 카페 존재 사실을 담임도 학교도 차차 알게 되고, 담임은 교생의 수업 참관, 조례와 종례도 금지시킨다. 그에 대항하는 이모와 그에 열 받은 담임, 그리고 마침내 열 받은 담임이 작은 잘못을 한 인호를 가격하면서 일은 삽시간에 벌어진다. 학교와 교사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학생은 정학을 당하고, 학교와 교사들,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 모두 경직 일변도로 치닫는 가운데, 마침내 동영상이 카페에 뜨고 아이들은 비밀카페를 공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행동개시에 들어간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봤듯이, 결국 이 세상의 어떤 사회든 단체나 구조, 체제는 그게 어른들의 세상이건, 아이들의 세상이건 그 본질은 같다. 치사함, 비굴함, 협박, 반항, 배신, 영웅, 정의 등등이 모두 인간 내면에, 사회 속에 공존하는 감정들인 것이다.
이야기는 마치 추리물처럼 흥미진진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밝혀지면서 재미를 더해간다. 실제 이야기가 전개되는 기간은 이모가 교생실습을 나온 한 달이지만, 그 한 달이 전체적인 학교나 교사, 학부모 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라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조숙하지만 평범했고 또 범생이었던 이보라가 이젠 남들이 따가운 시선을 던지는 처지가 된다. 하지만 이제 보라는 ‘적어도, 나 자신의 시선에 대해서라면 당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요즘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사건을 겪고도 학교는 변한 게 없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늘 똑같을 것이다. 대신 그 가운데에서 우리 중딩 아이들은 나름의 이런저런 성장통을 겪으면서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덜 힘들게 만만치 않은 고집불통 학교에서 중딩 생활을 해내며 성장할 것이다. 생각하면, 한편 마음 한쪽이 아릿하게 아파오고 또 한편 아련한 추억이 깃든 내 중딩 생활이 떠올랐다. 그때는 왜 그렇게 웃을 일도 많고 울 일도 많았던지… 그립다, 그때가…
현실에 맞게, 아주 재밌게,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청소년 소설을 만났다. 교사도 아니고 학부모도 아니고 중딩 조카를 둔 이모나 고모도 아니지만, 정말 재밌게, 단숨에 읽어낸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