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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존 반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아일랜드 출신 작가로는 오스카 와일드를 무척 좋아하고 제임스 조이스는 그럭저럭 좋아한다. 그리고 이제 이 작품으로 2005년에 부커상을 수상한 존 반빌을 막 읽었다. 오스카 와일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날카로우면서도 유머가 있고, 냉철하면서도 지적인 우아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도 그 자체로서 흥미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으로는 세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필체로 소외당한 계층을 잘 그린 <더블린 사람들>이 있다. 그에 비해 존 반빌은 무덤덤하고 잔잔하다. 인물들도 있는 듯 없는 듯, 스토리가 흘러가는 것도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그리는 것도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평온한 바닷가를 연상시키듯 하다. 그렇다고 햇살이 비추는 것은 꼭 아니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이 병으로 아내를 잃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닷가로 되돌아와 현재와 과거, 즉 어린 시절의 먼 과거, 최근에 아내를 잃은 과거 그리고 현재 자신이 머무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엇갈려가며 그리고 있다. 둑음을 선고받고 함께 힘든 시절을 보낸 아내를 떠나보내는 괴로움이 억눌린 감정으로 잘 표현되어있고,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만난 그레이스 부인에 대해 느꼈던 첫 감정, 그리고 곧 그녀의 또래 딸과 하는 풋풋한 첫 사랑도 아련한 느낌을 주고, 쌍둥이 아이들의 격렬한 자기들만의 정신적, 육체적 소통은 그에게 알 수 없는 경외감과 소외감을 준다. 나른하게 섹시한 여자 어른을 바라만 보다, 감정 표현이나 태도가 당당하고 담대했던 또래 어린 소녀를 만나면서 주인공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장한다. 물론 결론에서 드러나는 이야기로 보아 그 상황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쉬운 것만은 아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를 잃고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남자, 어쩌면 그녀의 둑음이 어린 시절 사라졌던 둑음을 다시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어린아이가 상상하는 어른들의 세계는 어른이 된 다음에도 또 다른 놀라움이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짐작할 수 있는 어른들의 세상은 실제로 완전히 다른 세상일 수도 있으니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잔잔하고 평온한 필체로 처음부터 시종일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바람에 읽기가 좀 지루했다. 과거의 인물이나 상황, 그리고 현재의 상황과 인물 묘사 등이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너무 길었다고나 할까. 과거와 현재 사이의 괴리감도 그 연결감이 떨어져 틈이 느껴졌고. 아무튼 평탄한 스토리에 비해 읽기가 그리 수월한 책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