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들고 달리기
어거스텐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가끔 나 자신도 그렇지만 사람들을 보면 모두 조금씩 미쳐있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갑작스런 분노의 표출, 노이로제 히스테리 강박증 편집증 우울증 그리고 콤플렉스 등등까지. 늘 바쁘고 경쟁해야 하고 급작스럽게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안정적이고 평안한 상태의 정신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런 모든 상황이 지나고 나면, 왜 그랬을까? 내가 미쳤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특히 그런 면면이 드러날 때, 공격적이거나 타인 또는 사회에 해가 된다고 다수가 느끼고 더 이상 통제가 가능하지 않을 때, 우리는 ‘미쳤다’라고 정의내리고 계속적인 상담을 하거나 병원에 격리시키고 약을 준다.

이 책은 너무 기가 막히다.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모든 상황이 마치 거짓말 같다. 그것도 불쾌하고 끔찍한 소설 같은 거짓말. 자고 나면 다 괜찮아진 현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쉴 것 같은 그런 꿈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읽다가 내려놓았는데, 다시 잡을 때 보니, 작가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같다. 그래서 뒤의 옮긴이의 말을 읽었다. ‘작가의 실제 경험에 느슨하게 기댄 이야기’라는데, 느슨하게 기댔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논픽션일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읽었다. 물론 맨 뒤의 ‘에필로그’를 읽고 나서야 논픽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정말 기절할 뻔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내가 너무 세상을 모를 수도 있고, 또 이런 소설 같은 일들이 실제로 많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다.

논픽션 소설로서의 매력을 느끼기엔 너무나 날카롭고 군더더기 없는 현실 묘사가 끔찍하고 불쾌했다. 정신 나간 사람들의 정신 나간 세계의 과하고 과한 세상이랄까. 온갖 지저분한 얘기이며, 더 이상 바닥으로 떨어질 수 없을 만큼 욕설과 비극이 난무한다. 결국엔 환자들의 정신을 치료하는 의사의 정신과 그 치료방법을 믿은 게 불찰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어린 시절을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으로 그리고 또 쿨하려고 최대한 노력한 작가의 글 솜씨는 뛰어났다. 그 가운데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걸 축하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비위가 약한 독자들에겐 심히 거슬릴만한 내용이 많아 주의를 요한다. 

열세 살에 차갑고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시인을 꿈꾸며 자기밖에 모르고 정기적으로 정신이 나가는 엄마를 둔 어거스텐은 학교에 가기를 너무 싫어한다. 매일 소리 지르고 싸움만 하던 부모가 이혼을 했을 때, 안도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자신을 감당하기 싫어한 (그 엄마의 정신 상태로는 불가능했겠지만!) 엄마로 인해 엄마를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네 집에 드나들고 또 그곳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변할지 생각해봤는가. 물론 어린아이를 기르고 교육하는데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열세 살 어린이는 모든 걸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할 만큼 성숙한 성인이 아니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고 거짓으로 약을 먹여 ‘자유’를 주는 의사가 제 정신인가. 사랑을 받고 제대로 먹을 권리가 있는 아이를 그렇게 더러운 집에 방치하는 게, 그런 게 자유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열네 살밖에 안 된 자기 딸을 사십대의 부자에게 넘긴 그 비뚤어진 의사의 처방이, 가뜩이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치료했는지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다. 나중에는 머니를 받고 성을 팔기까지 하는 나탈리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어거스텐은 생각한다.

‘자유는 우리 것이었다. 우리에게 잠을 자라고 명령하는 사람은 없었다. 숙제를 하라고 명령하는 사람도 없었다. 버드와이저 열두 캔을 마시고 변기에 토해도 누구 하나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왜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을까? 선택의 자유가 내가 가진 전부인 것 같은 때에 왜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까?’

열세 살 어거스텐이 바란 것은 아무렇게나 쓰레기처럼 방치되는 자유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신을 이끌어줄 어른이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할지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나 미칠 권리가 있다. 조금쯤 미쳐있는 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고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해치다 못해 남을 해치고 나보다 약한 남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나만 옳다고 믿고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상담이나 약이 아니라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런 모든 사람들이 어거스텐처럼 엄청 당하고 엄청 깨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스스로 깨닫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들 모두 사랑으로 치료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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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oko 2007-06-1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정서상 '소설'이라 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마존에서는 논픽션으로 분류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