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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들
김영현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한국문학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읽은 작가나 작품의 한계성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간혹 친구들의 리뷰를 보면 생전 처음 그 이름을 들어보는 작가도 많고 유명한 작품인데도 아직 못 읽은 작품들이 많다. 김영현, 그도 그런 경우다. 중견작가이고 작품도 꽤 낸 작가인데, 이제야 그의 작품을 대했다. 김영현을 소개해준 친구는 이 작품이 좀 별로인 것처럼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전작들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김영현의 첫 작품이었던 <낯선 사람들>은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 소개에서 이 작품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비하는 것을 보면서 궁금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등에 업으려는 작전일까, 아니면 정말 그 정도 수준(!)의 작품일까... 다 읽고 나니 좀 이해가 되는 측면은 바로 주인공이 예비신부라는 것, 그리고 가족 간의 비밀을 알기 위해 그리고 사랑으로 감싸 안기 위해 애쓰는 면이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늙은 신학생인 성연은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나레이터이며 스토리를 끌고 가는 안내자 역할이라는 게 더 맞겠다.
추리물의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 스포일러 때문에 내용을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는 없지만 한 가족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 나름의 구성원을 중심으로 잘 그렸다고 보겠다. 지독한 수전노에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두 번째 부인 그리고 파산을 선고 받고 집을 찾은 첫째 아들, 그리고 그 집에 식모를 살던 어린 여자 아이... 지독한 늙은이의 둑음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경찰의 수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예비신부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수사물을 다룬 영화 같기도 하고 드라마 같기도 한 면은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 않고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해주었고, 추악한 인간들의 심리를 엿보게 되는 성연과 함께 독자들은 잔혹함과 애처로움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또한 그런 드라마적인 요소들은 다소 깊이를 떨어뜨리는 역할도 하고 있어 아쉬운 면으로도 남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족의 불행의 불씨와 그 불씨의 결과가 나타나는 모습은 빠르게 전개되는 동시에 긴장감이 돈다. 진실에 가 닿겠구나 생각하면 골목이 나타나고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하고 다가가면 스토리는 어느 새 담장을 넘고 있다. 새로운 비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독자를 놀라게 하는 동시에 그럴싸하다고 느끼게 해준다. 추리의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은 소설이다. 스토리와 심리가 제대로 결합된 재밌는 소설이다.
진실을 말해달라는 성연에게 형은 말한다. “진실은 없어. 세상은 모두 우연으로 차 있을 뿐이야. 너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너와 내가 형제가 된 것도 모두 우연일 뿐이라구. 우연! 세상이 모두 우연으로 되어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건 하등 다를 바가 없지. 안 그래, 신부님?” 하지만 진실을 알고자 했던 성연이 본 건 다름 아닌 지옥이었다. “심연 속에는 보아서는 안 되는 무서운 비밀이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죄악이 죄악의 알을 잉태하고, 죄악이 죄악을 낳고 있는 무시무시한 지옥의 풍경이었다.”
과연 뒤죽박죽으로 우연히 흘러가는 세상을 사랑이 바로잡을 수 있을까... 작가는 이야기 끝에서 의문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