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풍경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그려져 있는 이 책은 내게 일본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소박하고 깔끔하면서도 정갈한 풍경이었다. 그런 풍경의 일본의 한 어촌이 이 작품이 전개되는 장소이다.

인형을 등에 업은 다섯 살배기 요꼬와 등교거부 중인 고등학생 소키치는 바닷가에서 산책을 하다 우연히 만나고 함께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와 바다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한순간 새빨갛게 물들이는 해님이 바다라는 이불을 덮고 자러 들어가는 시간인 것이다. 그렇게 얘기는 아름다운 동화처럼 시작된다.

등교거부라는 말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주인공 소키치는 어찌 보면 청소년기의 반항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언뜻 보면 그렇다. 하지만 소키치를 학교에 나오게 하려고 찾아다니는 담임선생님을 피하는 소키치, 토산물 가게를 하는 누나와의 갈등, 그럭저럭 혼자 사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도 하는 소키치, 도시락 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또 밤에는 음악을 들으러 술집에 가는 소키치를 따라다니다 보면, 소키치가 단순히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으로 학교를 안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사춘기에 겪을 수 있는 반항기는 기성세대 사회와 학교가 만들어 놓은 교육 체제, 그 체제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재’라는 획일화된 존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부모 세대와의 갈등 등 여러 가지가 섞여들고 있지만, 소키치의 문제는 좀 다른 양상을 띤다.

뼛속까지 어부였던 아버지가 어느 날 어부 일을 그만 두고 어울리지도 않는 민박집을 하면서 대기업이 송전탑 세우는 일을 돕는 일을 한 것, 그리고 그 일을 소키치가 이해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 버린 아버지의 일이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시기와 맞물렸던 것이다.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 그 고장이 겪고 있는 어려움, 그 안에서 사는 많은 또 다른 청년들, 자신 같은, 또는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들을 보면서 소키치는 의문을 갖게 되고 그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섬에서, 바닷가에서 어부라는 1차 산업 직종이 사양길에 들어서고 농촌이나 어촌을 버리고 도시로 나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끔 배를 타는 소키치는 왜 아버지가 어부라는 직업을 버렸을까. 뼛속까지 어부라고 느낀 아버지, 그 자신도 그 피를 물려받은 것처럼 느끼는 소키치에겐 그 의문을 푸는 것이 자신을 찾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게 될 것이었다.

‘집안 대대로 해오던 고기잡이를 포기하면서까지 아버지가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인지 소키치는 좀 더 알고 싶었다. 안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인생은 아버지의 인생일 뿐이다. 자신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른 채 살아간다면 수동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소키치의 여정을 따라가며 어부 또는 자연과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1차 산업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 그리움과 추억이 함께 살아난다. 산업과 자본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거대 기업들, 입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결국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정치권, 그에 희생당하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성까지도 씁쓸한 대비를 이루며 작가의 섬세한 필치 아래 그려져 있다.
 
무작정 반항하는 청소년, 마음엔 안 들지만 벗어날 용기가 없어 불평을 일삼으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불행한 과거를 겪었지만 새로 태어나려고 노력하는 소녀 등 그들의 고민과 휘청거리는 태도 그리고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 모두 자연스럽고 간결한 문체로 표현되어 있다. 자연 그대로의 바다가 만들어내는 세차고 아름다운 소용돌이를 많은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소키치의 아버지 그리고 그가 한 일 모두를 짐작하고 알게 되는 소키치는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뭔지를 깨닫고 그를 위한 첫 발을 내딛는다. 개발도 최소의 자연파괴를 염두에 두고 하는 애정을 담은 건강한 자연관이 그대로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또한 절제되고 간결한 대화 속에서도 서로의 진심이 녹아드는 가운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소통과 이해가 아닐까. 개발과 자본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라는 현대의 평범하지만 중요한 주제를 청소년의 입장에서, 청소년의 입을 통해 다룬 작품이었다.

히데요와 소키치의 잔잔하면서도 설익은 우정 같은 사랑의 싹틈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다. “눈부셔, 나한테는.” 이런 말이 최고의 사랑 고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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