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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 오디세이
정승희 지음.사진 / 사군자 / 2006년 11월
평점 :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온 건 구릿빛 피부에 벌거벗은 사람들이었다. 또 그저 그런 ‘원시림 자연에 대한 향수’를 그리는 책인가 보다 했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그들의 원시적인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그려놓았을까. 이번엔 그 눈속임에 속지 말아야지 하면서 찬찬히 읽기 시작했을 때, 그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봤었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연예인들이 그런 오지에 가서 고생 열라 하고 와서 이국적인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하고 다른 환경에서 새로 다진 결심도 말하고 등등... 그런 곳이 대부분 문명화된 사회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그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 인기가 뭐고, 텔레비전이 뭐길래 저런 고생을... 안쓰럽기도 했었다. 나야 편한 집에서 과자 우적거리며 재밌게 봐서 좋았지만도... 억만금을 줘도 안 한다, 그러다 둑은 사람도 있지 않던가.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런 허황한 내기에 억만금을 걸 사람이 없기에 자신만만하게!)
그런데 여기 이 책을 쓴 저자는 ‘도전 지구 탐험대’를 촬영하면서 10년 넘게 아마존 오지를 다닌 카메라 감독이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곧 그가 왜 이 책을 쓰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진 하나 하나에 그의 애정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멋지게 찍힌 풍경이나 예술사진과는 좀 달랐다. 즉 흙, 바람, 자연, 인간 냄새가 나는 사진들이었다. 그 안에는 그가 따스한 마음을 갖고, 그들과 하나 되어 바라보았던 시선대로 모든 자연이, 사람들이 그리고 생활까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럴듯한 감상만 하는 사진이 아니라 함께 냄새 맡고 함께 보고 느끼는 그런 사진들이었다.
수많은 사진들 가운데에서 골랐겠지만, 옷을 입지 않은(그들은 몸 자체가 제일 아름다운 옷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그렇게 몸에 색칠을 하고 치장을 했던 것이다!) 그들의 사진들에 민망한(내 시선에! 아무래도 시선이 좀 가지 않는가 말이다!) 모습은 없었다. 물론 센스 있는 사진과 글 배치에도 그의 따스함이 배어있었지만, 어쩌다 슬쩍 드러나는 사진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또한 아마존의 생생함은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에도, 나뭇잎에 쌓인 벌레를 집어먹는 손에도, 인상을 찌푸리고 찻잎을 한 줌 입에 털어 넣는 모습에도 잘 나타나있었다.
글도 사진만큼 많은 느낌을 주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그의 말솜씨에 놀라고 때로는 함께 분개하고 또 나중에는 그와 함께 그의 입처럼 말하곤 하는 것이다. 10년이란 세월을 그는 아마존과 함께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가 그 동안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자연과 인간이 위협하는 위험들, 또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보다는 실질적인 불편함, 육체적인 고됨과 피로, 또 잠재적인 문제 요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마치 그 10년을 그와 함께 여행한 기분이다. 때로는 아주 유쾌해서 깔깔대고 웃어대며 읽었다. (노팬티로 돌아오면서 끼는 청바지를 입을 때면, 어느 쪽으로 정리할지 고민이 된 것 빼곤 괜찮았다고 하는데 안 웃을 사람이 있을까!) 때로는 힘들고 익숙해지기 어려운 육체적 불편함에 함께 몸을 비틀기도 했다. (실제로 막 가려울 때가 있었다! 앗, 지금도!) 또한 살인이나 둑음 앞에선 함께 숙연해지기도 하고, 인디오들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학대하고 둑인 살인자들에겐 분개하기도 하고, 편하자고 만들어놓은 문명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인간성을 더 상실하는 쪽으로 몰고 가며 이젠 지상의 일반 가치가 되어버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 잘난 척하는 우리가 우리 문화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비판에는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다. ‘한국인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나지만 여기의 10살박이 아이보다 제 전통문화에 대해 보여줄 수 있는 게 없다. 온 부족이 함께 추는 춤을 찍고, 그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를 촬영하고 있다보면, 내가 우리의 탈춤이라도 추고 장고라도 연주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 내 속에는 그렇게 대한민국의 문화는 없고 산업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산업이라는 게 있었기에 우리에게 현재 담배도 있고, 커피도 있고, 삼양라면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던가.
이 글을 읽으면서 솔직히 기본적인 의식주가 보장되지 않는 오지에서 그렇게 애정을 갖고 일을 하고 또 진심으로 아마존을, 아마존의 부족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정승희가 부러웠다. 그들의 문화를,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그가 얄밉도록 부러웠다. 그 넘의 이상한 화장실 문화 때문에 중국에도 못 가는 내가 어찌 그가 부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각자 자기 몫이 있는 법!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개미랑 그 벌레... 못 먹을 것 같다.
‘그렇게 만났던 ‘싱구’는 늘 내게 ‘자유’의 대명사처럼 각인되어 왔다.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도, 돈으로 보장받는 것도, 법의 테두리 안에 보호받는 것도 아닌 태초의 자유,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는 순간 부여 받은 그런 자유가 아직 싱구에는 남아있다.’
그래서 정승희는 빌고 또 빈다. “아마존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