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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 신경과의사 올리버 색스의 병상 일기
올리버 색스 지음, 한창호 옮김 / 소소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렇게 나는 구조되었으며 이야기의 끝입니다.” 사고를 당한 모든 사람들이 이런 행복한 결말을 맺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강원래와 이승복 의사, 그리고 이젠 영실이의 남편이 되었을 그 남자친구(인간시대)를 떠올렸다. 어느 누구보다도 활동적이었던 그들이 한 순간의 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되고 그 치료과정에서 느꼈던 좌절감, 어려움도 상상했고 차라리 둑고 싶은 심정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도 안쓰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대입도 해보았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놀랐던 건, 의사이자 환자가 되는 색스 의사의 명철함이었다. 결단력과 신속함, 꼼꼼함에도 놀랐다. 그리고 그의 유머와 따스함에 한 번 더 놀랐다. 신경과 의사인 그가 갑자기 사고로 인해 환자가 되고, 아무도 없는 산 위에서 한쪽 다리가 완전히 마비가 된 상태에서 자신의 상태를 진찰하고 자신이 구조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는 노력, 그리고 그 이후에 수술 및 회복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 심리에 대한 전문 의학 지식과 자신이 일반 환자로서 겪었던 모든 심리 변화가 그대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일반인과 달리 늘 환자를 대하고 다루면서 어떤 정서에도 빠지지 않고 환자를 치료했던 그 분석력과 냉정함에 기인했던지, 색스 의사는 자신이 정신착란에 빠지는 과정까지 명철하게 그리고 있다. 자신의 다리가 어디 있는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수술이 제대로 되었다고 해도 걷는 법조차 잊어버린 상태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물론 그 대상이 자신이란 것도 느끼고 둑을 것 같았다고 한다. “좋아요, 의사 선생.(...) 다친 다리를 잘 살펴보시겠습니까?”
구조되자마자 느꼈던 안도감은 어느 덧 사라지고 이젠 환자로서의 시간을 견뎌야만 한다. 색스 의사는 간혹은 의사로서, 또 간혹은 철저히 환자로서 행동한다. 물론 분석도 뒤따른다. “환자가 되면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인내를 배우는 것입니다!” 긴장성이 없는 근육이 완전히 둑어버렸다는 느낌은 색스 환자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정신착란까지 일으키게 한다. ‘병원의 병동은 짓궂은 농담으로 악명 높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나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다리가 거기에 없었다! 다리가 거기에 없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론은 그것이었다. ‘나는 나의 다리를 상실해 버렸다.’ 자신의 다리 대신 마치 다른 ‘어떤 사람의 다리’가 침대에 있음을 발견했을 때, 드는 상실감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프로이트는 ‘자아란 무엇보다도 신체자아’라고 했다는데, 신체가 자신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 다음과 같은 증상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푀츨 증후군(시각적 운동감각의 착각), 해리 장애(다중인격장애라고도 하며, 예전에는 빙의라고 불렀다.) 실제로 보이고 느끼는 것과 실재라는 관념 사이엔 얼마나 큰 심연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색스 의사는 그 심연을 음악, 멘델스존의 음악으로 뛰어넘었다. 가짜걷기로부터 실재적인 걷기로 들어갔던 것이다.
색스 의사는 환자로서 겪게 되는 병원의 제도, 공식성과 관료주의도 꼬집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두 사람은 각자 역할을 하도록 강요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아는 전문가로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의 역할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또한 차트에서 보듯이 의사는 ‘평범한 회복’으로 간주하지만 그 일을 직접 겪은 색스 환자는 ‘이 친구들 미쳤군. 회복은 아주 특수한 사건이며 일련의 경이롭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 회복은 엄청난 사건이며, 차라리 어떤 일이 도래하게 되리라는 징조로, 새롭고 상상할 수 없는 힘이 도래하게 되는 것이지. 이런 사건이나 앞으로 닥치게 될 일이란 탄생이나 재탄생이라 할 만한 것이지.’라고 생각한다.
유난히 남성적이고 건강하고 활기 넘쳤던 색스 의사는 환자가 되면서 심한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근육을 소리쳐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내가 부르는 소리를 귀머거리인 근육은 듣지 못했다.’ 경쾌한 글 솜씨 못지않게 이런 자잘한 유머가 곳곳에 깃들어 있어 책 읽기가 훨씬 즐겁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렇게 유머로만 점철된 책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듯한 의학적인 부분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환자로서 직접 새로운 면을 발견한 그는 그 영역을 발전시켜나가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지난 보름과 이번 보름 사이의 단 한 달 동안 나는 거의 죽을 뻔했으며 마지막 순간에 구조되었다. 난도질 된 살이 꿰매지고 결합되었고, 느낌이 없는 지옥의 변방에서 끝이 없는 것 같은 긴 시간 동안 다리를 잃기도 했고, 회복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지만 기적같이 다리가 회복되었다. 나는 내면세계의 토대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다. 아니, 내면세계가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이성이 창피당하는 일을 겪었고, 정신이 모욕을 당하는 일을 겪었다. 근육조직과 감지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연스런 육체와 영혼, 육체와 정신 간의 통일성이 깨져버리면서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심연에서 구출되어 다시 태어났으며, 다시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용기가 꺾였고 침몰하는 배 같은 신세였지만 불가사의하게 구조되었다.’ 색스 의사가 환자로서 겪었던 모든 실제와 심리 변화 과정의 결론이다.
환자가 되면 겪게 되는 모든 일은 그 절차를 따르는 ‘순례여행’이다. 그 순례여행에서 마침내 모든 환자가 완쾌라는 성지에 다다르기를 바래본다. 신체적인 완쾌가 아니더라도 그 장애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관대함을 배운다면, 그 환자는 어떤 성지보다도 더 높은 곳에 이르는 게 아닐까. 내게도 언젠가 일어날 수 있는 사고, 나를, 사고를 객관화시키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