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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일부러 책날개에 그런 사진을 실었을까. 아니면 원래 박민규 스타일인가. 어쩌면 둘 다 원본 박민규인지도 모르지. 왜 사진 이야기로 이 책의 독후감을 시작하는가 하느냐면, 그 사진에서 보이는 박민규 그대로가 바로 이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개성 있고 특이하고 새로운 시각이긴 하나, 전적으로 공감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는 느낌이다.
이 작품은 장편이긴 하지만 사실 그의 단편집인 <카스테라>와 더 닮아있다. 황당한 얘기들을 가득 태운 기차가 핑퐁핑퐁 달려가듯이 이야기는 재밌게 흘러가고 가끔은 은하철도 999처럼 핑퐁핑퐁 하늘도 나르고 또 가끔은 열기구를 타고 핑퐁핑퐁 날기도 하는 것 같다.
중학생인 ‘못’인 나와 남태평양 어느 섬에 있다는 수수께끼의 석상을 닮아 ‘모아이’라는 별명을 얻은 둘은 늘 한 쎄트로 따를 당하고 둑도록 주기적으로 얻어터진다. 맨날 머니도 뺏기고 때리면 맞고 달라면 주고 기라면 기고 까라면 깐다는 식이다. 못된 애들한테 걸려서 그런 것도 우연히 벌판에 탁구대가 있고 탁구를 치게 되고 탁구공의 원조 전설의 신화사 공을 얻어 탁구를 배우고 랠리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강한 자에게 그럭저럭 끌려 다니는 것도 캔만을 빼먹는 것도 다 좋다 이거야. 근데 뒤에 나타나는 헬리혜성은 뭐냐? 지구를 새로 부팅한다고? 맘에 든다고 짝퉁, 아니 외계인 문어처럼 그려놓은 괴물은 또 뭐냐고. 독수리 5형제의 극인가. 그런 돼먹지 않은 세상을 싹쓸이하는 거냐고.
“이상한 끝이구나. 그럼 그 순간 세계를 <깜빡>해버린 거야? 그럴 수도.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거야. 그 순간 그가 세계를 <깜빡>한 게 아니라 세계가 r<깜빡>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모아이, 그러고 보니 나도 분명 그런 적이 있었던 듯해. 나 여태 그걸 <깜빡>하고 있었어. 잘 들어 못, 여기 온 후로 나는 줄곧 그런 생각을 해왔어. 왜 우리일까? 답 같은 건 찾을 수도 없겠지만, 내 결론은 그거야. 뭐? 너와 나는 세계가 <깜빡>한 인간들이야.”
세계가 어쩌다 <깜빡>한 두 아이의 이야기는 나름 재밌다. 특이한 구성만큼이나 스토리도 한편 평범하면서도 특이하다. 하지만 말이지... 그래서 뭐 어떻다구? 어쩌라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을 아무래도 너무 재밌게 읽었나 보다. 그걸 좀 덜 재밌게 읽었더라면 <카스테라>나 <핑퐁>이 좀 더 재밌고 흥미롭게 다가 왔을라나. 하지만 어쩌면 후자가 원조면 어쩌지? 그럼 난 뭐 밟은 거지... 내가 너무 어른이고 너무 틀에 박힌 세상에 사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책날개에 있는 박민규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근데 자꾸 그의 정신 실험에 내가 말려드는 것 같은 느낌은 뭘까... 어디까지 이해하나 날 갖고 실험하는 것 같다. 빌 어 묵 을... 그런데도 박민규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그럴 만하니까 그랬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