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으로의 동반자

사신 치바 ㅣ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공포소설이나 괴기소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추리도 많이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제목으로 그렇게 당기는 책은 아니었다. 책 제목만 봐서는 좀 무서운 얘기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둑음의 신이라니... 하지만 책을 읽기 전에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주워들은 얘기들이 그렇게 무서운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검증받고 나서야 읽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우려였다. 사신이 들려주는 얘기가, 사신이 나오는 얘기가 이처럼 따스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 사신이 이토록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니... 일본 사신이란 게 다 아쉬울 정도로 재밌고 즐거운 작품이었다. ^.~

이 책은 사신(死神)인 치바가 이중의 주인공인 이야기다. 치바가 1인칭으로 자신이 데려갈 사람들을 일주일 동안 동행하면서 그 사람들 얘기를 쓰는 것이니, 어찌 보면 그 사람들 얘기가 주된 얘기일 때는 그 사람들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서두에 ‘음반 매장에 비정상적으로 자주 드나들고 이름으로 동네나 사의 이름을 쓰면서 대화의 포커스가 미묘하게 빗나가고 맨손으로 사람과 접촉을 하지 않으며 항상 비를 몰고 다니면 그는 사신, 치바’일지 모른다고 시작한다. 사신들은 자살이나 자연사가 아닌 사고사 등을 일주일 동안 철저히 조사하고 ‘가’인지 ‘보류’인지 결정한다고 한다.

목차가 알려주듯이 얘기는 모두 여섯 개이며 각각 장르를 달리한다. 스토커 리포트,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로맨스, 로드무비, 하트워밍 스토리로 되어있다. 중간 중간 치바가 생각하는 인간에 대한 생각, 조사 상대인 인간들의 심리와 과거 그리고 현재, 또한 앞서 나왔던 얘기들이 뒤로 가면서 얽히고설키는 구성 등 하나하나의 이야기도 나름 끝을 가진 결론이 되면서 동시에 세월이 흘러 그 이야기들이 얽히는 맛도 나름 참 멋지다.

둑음을 두려워하는 어느 이발사에게 치바가 해주는 죽음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죽는다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뿐이야. 무서울 것도 아플 것도 없어.” 사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둑음이란 녀석을 향해 달려간다. 언제 어느 때 그 녀석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참 우습게도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둑음은 매일 내 옆에, 나와 함께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내 처지에서 말하자면 살아남은 이 세 사람만 해도, 이르든 늦든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종족은 언제나 자신의 죽음은 제쳐놓는다.”

치바가 볼 때,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의 대부분은 인생이 아니라 단순한 시간’이라고 한다. 맛도 모르고 잠이 필요하지도 않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둑지도 않고 인간다운 ‘사소한’ 고민도 없고, 분노나 복수라는 감정도 없는 사신에게 인간의 시간은 그런 것이다. 그는 그것이 비록 야쿠자의 의리라도 그 의리로 둑거나,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기꺼이 뭔가를 하면서 둑는 ‘연애’ 감정을 결코 모를 것이다. 인간의 고민이라는 것이 사신이 보기에는 ‘자신에 대한 고민’ 뿐이라 하더라도 인간에게 자신의 둑음 자체보다 주위 사람들이 둑는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죽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모를 것이다.

‘아주 작은 미묘한 거짓말은 실수에 가깝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사랑인 것이다... 영원한 삶을 꿈꾸는 인간의 허망한 꿈보다 더 허망한 것은 영원히 인간으로 살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신 치바>를 읽고, 더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인간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