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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평점 :
세간의 숱한 호평들을 듣고 뒤늦게 접하는 영화는 다분히 실망스럽다. 다 보고 나서 영화관 문을 나서며 '뭐야, 별거 아니잖아!'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반면 아무런 평도 없이 또는 악평을 극복하고 본 영화는 의외의 만족스러움을 주기도 하는데 두 경우 모두 기대치로 인해 생겨나는 결과가 아닌가 한다. 상반기 만화계에 단연 최고의 화젯거리는 만화가 최규석의 등장이고 단행본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의 발간일 것이다. 하지만 기대치가 너무 컸던 것일까. 호평들을 등에 업고 읽은 <공룡 둘리..>는 만족스러움보다는 실망이 더하다. 많은 제작비를 들였음이 분명한 질좋은 종이에 잘 인쇄된 책이건만 동인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편집상의 숱한 오류들은 책을 읽는 내내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고 '사랑은 단백질'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펜선과 컷분할, 연출력 등에서 아직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면죄부와 가산점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음악 전문 사이트 <가슴>에 한 인디밴드를 소개하는 글에서 '현재 한국의 사회적인 상황이나 우리들(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고, 그렇다면 노래에서도 사랑이나 자잘한 일상을 얘기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안에 내재된 끝 모를 분노와 절망감, 상실감을 표출하는 것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현재 우리의 갈망을 얘기하는 '살아 있는 음악'으로서 대중음악을 규정한다면 말이다.'라는 말과 함께 '그렇다고 모든 뮤지션들이 다 그런 노래를 만들라는 것은 아니지만, 왜 그런 뮤지션들이 이리도 한국에는 별로 없느냐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곳은 분명 아닌데도 말이다.'라고 덧붙인다. 이 말은 만화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현실은 연애 문제 말고는 고민이 없는 중산층 집안의 여고생이 다가 아니며 죽고 죽이며 칼싸움을 해야 하는 무협시대도 아니다. 그럼에도 주독자층이라고 여겨지는 여학생의 기호에 맞춰 가로세로 몇 개의 선으로 배경을 처리해 버린 채 머쉬맬로 같은 달콤한 분위기만을 뚝뚝 떨어뜨리는 학원물과, 남학생의 기호에 맞는 허무맹랑한 무협물과 판타지가 대부분이다. 말그대로 한국의 사회는 불특정의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곳이 분명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규석은 위에서 인용한 글에서처럼 '현재 우리의 갈망을 얘기하는 살아 있는' 만화를 그리려는 시선을 갖고 있다. 그의 시선은 날카롭지만 왜곡되지 않았으며 보기 편한 곳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들여다보기 불편한 부분을 헤집고 드러내며 그속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사실 이전에도 메이저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동류인 작품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또한 훨씬 이전에 지면을 탔고 새롭게 김혜린의 단편집 <노래하는 돌>에 실린 '11월의 초상'과 '우리들의 성모님'은 같은 맥락을 걷고 있다. 단지 김혜린이 '순정만화 작가'라는 억울한 굴레로 인해 다양한 독자층을 얻지 못한 반면 <공룡 둘리..>는 그만의 색을 낼 수 있는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끄러운 펜선이 아닌 거친 연필선의 뎃생이, 박광수의 여타 작들에서 볼 수 있는 곱디 고운 색이 아닌 채도 낮은 색들이 주를 이루는 최규석의 작품들이 지금 우리 시대에 어쨌거나 주목을 받고 있고 책이 팔리고 있다는 점은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제 처음의 기대치를 털어버리고 맨눈으로 그의 작품을 대한 후 갖게 되는 새로운 기대는, 신인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 무딘 칼날의 비평에서 제대로 벗어나는 것이다. 풋풋한 딱지를 떼고 나서 맞게 되는 날선 칼날의 힘에도 단단하고 견고하게 버텨내기를 바란다. '막일로 단련된 근육질 마냥 투박하고 탄탄한' 그의 시선이 흐물거리는 시선이 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