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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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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젊은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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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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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학의 두 거장이 나눈 편지를 모아 발간된 책,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알라딘 신간평가단의 마지막 책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책과 담을 쌓았던 어린이였으므로. 게다가 앞으로도 나의 '아이'를 가질 일이 없는 독신주의자이므로 동화라는 것과 가까이 지낼 길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어른이라서- 두 거장의 이름이나 근근히 '어디서 들어 보긴 했다.' 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어서 이 책에 선뜻 다가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일단 두 분이 어떤 책을 썼을까, 책 목록을 훑어보았는데 권정생 작가님 책 목록에선 아동문학 문외한인 나에게도차 무척 익숙한 책 제목들이 많이 눈에 띄여서 어쩐지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너의 착각이야. 아직 멀어..) 그리고 이오덕 선생님의 책 목록에서 교육론, 작법론에 대한 책이 많았기에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진중하게 우리 문학과, 국어교육에 온 인생을 바쳐온 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태 이런 분들에 대해 몰랐던 나의 부족함을 잠시 반성하고, 이오덕 선생님의 책 목록을 열심히 훑어보고있다. 조만간 글쓰기나 우리말교육에 관련된 책 몇 권을 읽어봐야겠다라고 생각중이다.


*  *  *


편지를 쓰는 시간이란, 오롯이 이 글을 받을 사람과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시간일 것이다. '쓰는 시간'뿐만이 아니다. 이 편지를 받고 상대방으로부터 답장이 오는 그 '돌아오는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삶의 꽤 많은 부분을 상대방을 생각하고, 상대방을 염려하고, 상대방을 궁금해하는 데 쓰이는 것 이리라- 그게 바로 편지를 쓴다는 일, 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간'이 없다. 누군가를 위하여 '시간을 냄'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 이 시대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고, 너무나도 흔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컴퓨터나 핸드폰의 메신저를 통해 언제나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가고, 온다. 상대방의 말에 대해 사유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한 일이다. 사유할 시간이 없어짐으로써, 인내라는 단어는 사전에나 등록된 생소한 단어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점점 참을성이 없어지고 있다. 상대방의 여건따윈 안중에도 없이, 내가 보낸 메세지에 1이 남아있다고. 지금 나 무시하냐고. 예전에는 도무지 벌어지지 않았을 싸움마져 일어나곤 한다. 


어린이 문학에 대해 위에서도 언급했듯, 아는 바가 없다. 그래서 두 분이 나눈 대화에서 어린이 문학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 감흥이 생기지는 않았다. 다만, 30년. 내가 살아온 거의 모든 시간동안 이어져 온 편지를 읽어가며- 편지를 쓴다, 라는 행위의 따스함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과 행동을 동일시하고자했던 어찌보면 순교자 같은 모습의 권정생 선생님의 삶이 아름답기도,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아름답고 아픈 삶에의 관심을 끊지 않고 계속해서 살갑게 그의 하루하루를 염려하는 이오덕 선생님의 마음씀슴이 역시 정말 아름다웠다. 본인이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와 타인의 삶을 염려하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고받은 두 분의 30년 우정을 바라보며 나는 누구를 염려할 수 있고, 또 누가 나의 삶을 염려해줄 수 있을까에 대해- 나의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지를 쓴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사실 내 책상 서랍속엔 부치지 않은 편지가 꽤 많이 들어있다. 못한, 이 아닌 않은. 편지들. 막상 쓰기야 쓰는데 그것을 부치는 '행동'을 하기가 참 힘이 든다. 게을러서일수도, 혹은 '행동'을 위한 마음의 동함이 부족해서일수도. 누구나 그러하듯 이 책을 읽고 나면 편지를 쓰고 싶어질게다. 나 역시 그랬다. 그 '누구'를 떠올리는 '시간'부터 챙겨봐야할 일이다. 누군가를 생각하기위해 '시간을 내는 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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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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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나이브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시절.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떤 이해관계, 그것을 넘어서는 모두에게 최우선으로 선택될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그리고 그 가치는 어떠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하여도 지켜질 거라고. 그러나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던,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치는 어떤 이들에겐 그들이 신봉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가차없이 버릴 수 있는 하찮은 것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아, 내가 인간이라면 응당 가질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던 도덕적 가치가 누군가에겐 한쪽으로 치우쳐진 생각일 뿐일 수가 있는거였구나 라는 것을. 그러니까 불과 몇 해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의 보편적 가치는, 누군가에겐 내가 가진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나는 그것이 '편견'이어야 하는 사회가 내가 살고있는 사회라는 것이 믿어지질 않았다. 믿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다.


손흥규 작가의 <다정한 편견>은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던 보편적 가치, 를 지칭하는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비슷한 사람의 글을 만날 때면,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안도감이 느껴진다. 아직은 모든게 다 잘못된 것은 아니야, 하는 그런 안도감. 그리고 울컥, 하고 가슴이 반응을 한다. 솔직히 이런 세상을 만나게 될 거라곤 생각을 못해왔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을 만나게 된 것이 더 없이 소중하면서도 더 없이 슬퍼지기도 한다. 참 별 것 아닌데. 어려운 이웃을 보면 측은지심을 가지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도와주려하고 조금이라도 나누려 하는 마음. 과한 욕심을 부리는 사람에게 욕심부리지 말라고 충고할 수 있는 마음. 좋은 것은 함께 하려고 하는 마음. 그러한 마음들이 보편타당한 것이 아닌 세상에 살고있는 것이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게 삶이라면, 최선은 괴물이 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하지 않아서 인간다워지는 게 아니라,

타락의 속도를 늦출 용기를 지녀서 인간다워지는 존재니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더럽혀지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괴물은 되지 말자."라고 서로를 다독여주는 사이가 될 수 있을 터다. 나이가 들 수록 이기적이 될 수 밖에 없는것이라면, 그래, 작가님의 말씀처럼 적어도 그 속도라도 늦춰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므로. 우리는 인간이니까. "편견이 필요한 시절이다. 아름답고 올바른 편견이 절실한 시절이다. 해서 나는 편견을 사랑한다" 라고 말씀하셨던가. 맞다. 지금의 우리에겐 이 <다정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그것이 편견이 아닌. 보편적이고 당연한, 모두에게 같은 무게를 가진 가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도덕적인 문장이란 도독을 옹호하는 글을 뜻하지 않는다.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적었다고 해서 도덕적인 문장인 건 아니다.

문장의 경우 도덕성이란 우리가 글로 옮기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이해를 뜻한다.

그러한 바탕 없이 관습적인 문장을 남발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문장의 윤리를 저버리는 셈이다. (중략)

타인에 대한 이해 없이 도덕이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타인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지키고 살아야 한다.

시련이 없을 때 우아해지기란 퍽 쉽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우아해지기란 쉽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만의 원칙을 허물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뇌하는 그대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희생을 감내한 그대가 누구보다 우아하다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었기에 어떤 공통된 주제는 없는 책이었다. 그러나, 모든 글들이 나름의 무게를 가지고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바뀌던 변하지 않는 시선을, 태도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어려운 시대다. 그래서 더욱더 이 변치 않는 시선을 가진 글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님의 글을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을 향해서도, 그리고 본인 스스로를 향해서도 엄격한 태도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본인이 직접 체득한 감정만을 적고자 한 우직함. 그 우직함이, 그 다정한 편견이. 정말 우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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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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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라고 하면 쇼핑몰 스타일난다 라던가 (틀려) 아니면 웹툰 작가 난다님 (그만해) 이 먼저 떠올랐었다. 생소한 출판사 이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도시나 여행에 관련된 에세이들이 소프트 아이스크림같이 달달하고 보드라워지기만 한 이후로는 전혀 읽지 않았고 관심조차 없어졌었기에, '걸어본다'라는 시리즈명도 처음 들어보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다른 시리즈에선 어느 도시를 다루고 있는지 궁금해져 알라딘에서 출판사로 검색을 해 보니 그간 내가 읽고 ‘아, 참 좋다’라고 생각했던 <밤은 선생이다>와 <여행, 혹은 여행처럼>이 목록에 포함되어있어서 깜짝. 그리하여- 그렇다면 이 책도 좋을 것이다, 라는 어떻게 도출된 결론인지 그 연산 과정을 짐작하기 어려운 결론을 맺고 책을 펼쳤다.


예전부터 언젠가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벽이며 바닥은 온통 화이트 색으로, 가구는 매트리스 하나와 커다란 책상 한 개만. 그리고 벽 한쪽은 통유리로. 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삶의 내음이 묻어나지 않는 공간같은 건 상상속에서나, 잡지속의 컨셉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공간이며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쩐지, 내가 그 방 안에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색. 무취. 무미. 깨끗하고 청초하지만, 아무런 색도, 아무런 향도 느껴지지 않는 플라스틱 같은 느낌. 왜일까. 정말이지 사적인 개인적인 취향으로 가득 차 있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어째서 이렇게 플라스틱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걸까. 고민스러웠다.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모으고 수정하여 낸 책이라 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이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쓴 것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기록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쓰인 만큼 '이런 것에 대해 모를지도 몰라,' 라는 전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책이 조금은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지금. 이 순간의 뉴욕의 현대미술, 패션, 문학'에 대한 쉴 새 없는 레퍼런스들을 쫓아가기가 버겁기도 했다. 왼편에 주요 작가에 대한 설명은 적혀져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해서 언급된 작품들을 인터넷을 찾아보며 읽을 수밖에 없었기에 독서시간이 배가 되었더랬다. 나는 좋은 문구가 있는 페이지는 아래쪽을, 나중에 공부해야할 내용이 있는 페이지는 위쪽을 접어놓는 습관이 있는데, 




이 모양이 되었다. 아아, 갑갑하다. (깊은 한숨)


모든 일기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을 전제로 쓰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일기라는 것은 사적인 영역의 글이며, '읽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쓰는 사람'을 위한 글이다. 그래서인 것 같다. 이 책이 플라스틱처럼 느껴졌던 것은. '너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게'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나의 매일을 기록해 두자'라는 목적으로 쓰인 글. 화살표가 안으로만 뻗어나가고 있는 글이기에 이 책이 유독,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무미건조함이 과연 '단점'일까. 아니, 나는 이 책의 강점이 바로 그 '무미건조함'이라고 결론지었다. 앞서도 말했듯 나는 여행 에세이들의 '달달함'과 '낭만 가득함',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느낌에 질려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무미건조함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일단 '재미있는(웃긴)' 것을 좋아하지만 센스 있게 웃기지 못 할 거면 차라리 이렇게 차분하고 새침한 편이 낫다는 생각.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글쓴이의 지난 하루하루의, 조용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단지 내가 모르는 것이 많아, 조금은 버거웠을 뿐.



그가 살아있었다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책을 쓰든 뭘 쓰든 자기중심적으로 뉴욕을 느끼고 살라고.

모든 것의 시작은 지독하게 사적인 거라고.

그런 의미에서 '취향'은 내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초라하기도, 아귀다툼같기도 한 일상을 다른 레벨로 격상시킬 수 있는.

일상을 그보다 나은 것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하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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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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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으로 소설가가 말해주는 소설 작법, 글 쓰는 방법, 에 대한 이야기일거라는 얄팍한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읽은 순간부터 그러한 기대는 정말로 제목만 보고 성급히 가진 기대였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글을 왜 쓰는가, 하는 질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너무나도 쿨한 태도가 오히려 호감이 갔다. 그럴싸한 미사여구를 붙여 설명하려 들었다면 오히려 반감이 생겼을지도. 작법에 관한 책이면 어렵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안고 읽기 시작했었던 터라 오히려 더 즐겁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책 속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사는 곳에 대하여 가족이나 친구, 문인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쏟아놓는다. ‘왜 쓰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저 쪽에 내 팽개쳐 놓고 그저 사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놓는다. 그런데, 그 거침없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그리고 그 두서없는 이야기들 속에서 그가 '왜 쓰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창한 목표나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오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자연스레 글이 되어버렸다는 느낌.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는 느낌. 그러니까, 왜 쓰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 도 없이 쓰고 말았다, 라는 느낌.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예민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나라면 쉽게 발견하지 못했을 일상의 작은 조각들에 대하여 꾸밈없이 이야기하는 작가님의 무겁지 않은, 그렇다고 가벼운 것은 아닌 글이 좋았다. 100개의 경험을 해 본 사람과 10개의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당연하게도 차이가 클 것이다. 한창훈 작가가 이토록 예민하고 섬세하게, 그러면서도 굉장히 온기가 느껴지는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일반적인 ‘작가’로서는 하지 못할 수많은 ‘노동’의 경험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직접 체득하여 알게 된 것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는 법이니까. 작가님의 다양한 '노동'의 경험으로 체득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누구의 글 보다 생생했고, 꾸밈없었고, 체온만큼의 딱 좋은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물 긷는 것도 미뤄두고 그대로 곁에 앉았다.

마파람 불기 시작해서 등대 수월산이 안개에 포위당할 때까지,

벼랑 위 가마우지가 잠수 끝내고 깃털 다듬을 때까지,

오후 여객선이 바다를 하얗게 가르며 들어올 때까지,

밤 어장 나가는 어선이 슬슬 밧줄을 풀 때까지 할머니의 일은 계속되었다.

세상 시간이 이 정도 속도로 흘러가주는 게 고마웠다.

나는 기운이 강하고 튼튼한 시인을 만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여리고 세세하기만 하다면 군이 총질만 잘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소설 쓰겠다고 소설책만 보면 반쪽짜리 되기 십상이듯이 시인도 반(反) 시인의 세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멀고 낯선 것에 대해 기웃거리기. 그것과 이것의 연결 통로 만들기.


실은 한창훈 작가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어서 이 책을 읽은 후에 작가님의 소설 목록을 죽 둘러보았는데 섬,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역시나 많았다. 태어나고, 자라고, 먹고 살며 겪어온 섬의, 바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놓았을지, 그 따스한 시선으로 써 내려간 소설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이 책을 읽어서는 소설가가 왜 글을 쓰는가, 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기는 힘들다. 아마 그것은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답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직 작가 본인도. '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을는지도. 그 답을 찾기 위해 살고,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답은 사실, 타인보다는 본인 스스로에게 더욱 간절하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솔직히, 그 '이유'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하고 반문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말과 글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나는, 왜 읽는가. 나는, 왜 블로그에 글을 쓰는가. 나는, 왜 그림을 그리고 왜, 사진을 찍고 여행을 가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그리고 역시나 다시 반문한다. '왜'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모든 일에, 명확한 이유가 필요하냐고. 어쩌면 나는 그 '이유 찾기'에 몰입한 나머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말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하고 있는 어떤 것. 그것으로서 삶은, 더, 풍요로워지는 법일지도 모르겠다.



'물소리를 꿈꾸기에 최적의 장소는 사막입지요.'
바다를 그리워하는 어부를 본 적이 있는가. 그리워 달려가면 바다는 날카로운 현실이 되고 마는 까닭도 있지만
꿈속에서의 그것은 실제보다 크도 거세하면서도 신비하게 채색된다.
어쩌면 꿈꾸기 위해 내륙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꿈꾸는 곳은 늘 멀리 있는 법. 먼 곳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꿈꾸는 것.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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