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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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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하나인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가 방대한 데이터를 기초로 명확한 숫자를 제시하며 현 상황의 위기를 그저 담담하게, 그러나 조목조목 설명해 줌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확히 일치하는 기후 위기에 관한 책, #시간과물에대하여 를 읽었다.

마그나손 작가는 빙하 곁에서 태어나 빙하가 사망선고를 받기까지의 긴 시간을 지켜보아온 조부모와의 삶,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준비하다 북유럽 신화와 힌두교와의 연관성을 발견하며 깨닫게 된 신화 속의 연결고리, 어린 시절 본 다큐멘터리를 보고 다짐했던 대로 악어의 보호를 위해 연구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외삼촌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을 보따리에서 풀어낸다. 전혀 연결점이 없는 것 같은 이야기들의 종착점은, 한 곳이었다. "이제 우리는 전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연장과 모든 장비와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상과 후손을 둘 다 실망시킬 것이다.(P.296)" 더 늦기 전에, '오래된 근시안의 신, '탐욕'(p.254)'에의 믿음을 거두고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는 외침이 한가운데 말이다.

마그나손은 1809년 아이슬란드에 군주제를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싶었던 예르겐의 '빈자가 부자와 똑같은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일반 사람들의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생각, 상상할 수 없는 낯선 개념이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단어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아이슬란드의 완전한 독립은 그로부터 140여 년이 지난 후인 1944년에야 달성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갑자기요? 갑자기 역사 이야기를요?라고 어리둥절해 있을 때, '자유'나 '평등'과 같은 단어와 같이, '해수산성화', '지구 온난화', '환경위기'라는 단어 역시 그때의 '자유'와 '평등'처럼 지금 우리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슬쩍 샛길에서 빠져나온다.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걸린 100여 년과 '환경위기'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는데 걸릴 100여 년의 시간의 무게가 과연 같을까. 더 좋은 것을 깨닫는데 걸리는 희망의 시간과 완전히 나쁜 것을 깨닫는데 걸리는 절망의 시간이 같을 리 없다. 게다가 1800년대의 100년 동안의 변화의 속도와 2000년대의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얼음이 물이 되는 -1도와 0도, 그 사이. 물이 수증기가 되는 99도와 100도, 그 사이. 무언가 전혀 다른 것 변해버리는 급변점은 그 한순간이겠지만, 실은 우리는 차근차근 단계를 밝아 변화의 순간을 맞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한순간의 티핑포인트를 향해 돌진하는 중인 것이다. 우리의 삶이, 지구가, 급변하는 급변점이 어디인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때라는 것만큼은 안다. 우리는 그 급변점을, 영원히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단어는 우리의 감정과 느낌에 영향을 미친다.

단어로 인해 우리는 존재의 상태를 파악하고 우리의 가슴에 잠들어 있는 것을 묘사할 수 있다.

단어는 보이지 않던 행동들을 엮어 얼개를 짠다.

(p.82)'.

어떤 식으로든 자연의 '이용 가치’를 논하는 경제학에 속해있는 권력으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들, 다국적 제조 기업에 값싼 에너지를 팔기 위해 물길에 막히거나, 수장될 위기를 맞은 자연들. 권력을 쥔, '어떤 사태가 와도 무사한 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결코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게 함으로써 늘 굶주림과 공포를 부추겨 더 많은 계곡을, 더 많은 폭포를 기꺼이 희생하도록 조종하여(p.71)' 망가져버린 자연들... 티베트고원의 빙하 680곳을 조사한 결과 95%가 후퇴했고 알래스카에서는 98%의 빙하가 급속히 감소했음에도, 13곳의 빙하가 (국지 강수량이 증가한 덕에) 더 커졌기 때문에, 그것을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증거로 내세우는 권력의 말(p.206)'들이 우리의 감정과 느낌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행동을 엮는다. '전 세계 석유 이익이 하루 약 6000억 달러에 이르는 상황에서 산유국들은 우리의 어휘와 세계관을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주물렀다.(p.239)'는 문구가 머리를 꽝! 하고 내리쳤다. '현실을 창조하기 때문에 말을 소유하고 말을 배포할 수단을 소유해버린 (p.237)'권력의 말에 현혹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새삼 그 권력의 말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후학자들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 여러 책을 통해 깨닫는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뭐냐고? 이 책의 앞과 뒤에서 반복되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답이 되어줄 것이다.

"증조할머니가 1924년에 태어나셨으면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지?"

"아흔넷"

"넌 언제 아흔넷이 될까?"

"2102년 아냐?"

"맞아. 그때 너도 지금 할머니처럼 활기차길.

어쩌면 바로 이 집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네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처럼 2102년에도 너의 열 살배기 증손녀가 찾아와

이 부엌에 함께 앉아있을지도 모르고."

"그래, 어쩌면."

"계산 한 번 더. 네 증손녀는 언제 아흔넷이 될까?"

"2092에 94를 더하면...2186년!"

"그래. 상상할 수 있겠어? 2008년에 태어난 네가 2186년에도 살아 있을 아이를 알 수도 있다는 거 말이야.

그럼 1924년에서 2186년까지 전부 몇 년일까?"

"262년?"

"상상해보렴. 262년이야.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거야.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야.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고."

(p.28)

"250년 넘게 말이지.

그건 너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간이야.

너희의 시간은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누군가,

너희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자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시간, 너희가 빚는 시간이란다.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어.

너희는 하루하루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단다."

(p.354)

내가 지금 기후 위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그 무엇보다도 '우리 다음 세대의 삶'을 '지금의 우리'가 망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위의 문장들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누군가의 할머니, 누군가의 아들딸, 손주, 손녀가 아니라- 당장 나의 증조할머니에서 나의 증손녀에게까지 이어진 가까운 사람들의 시간을 내 손으로, 극심한 가뭄과 극심한 폭우가 반복되고 해수면 상승으로 번영의 흔적이 모조리 사라진 세계로 빚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우리가 지금 누리는 안락한 삶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희생시킨 대가(p.229)'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낙원을 물려받아 망쳐버린, 이기주의와 탐욕의 노예(p.295)'로써 후손들에게 '수치'로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후손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를, 나를 위해서'. 우리는, 나는. 멈춰야 한다고- 책을 읽으며 수없이 STOP 경고등이 번쩍였던 것이다.

마그나손의 조부모님의 이야기에서, 배워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의 마음과, 자연에의 경외와, 사랑의 마음을. 그리고 그렇게 배워 일구어낸 것들을 우리의 자손들에게 떳떳한 마음으로 전달해 줄 수 있어야만 한다. 수치스러운 조상이 되겠는가? 당당한 조상이 되겠는가. 우리는 지능이 있으므로, 옳은 선택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를 다 읽고, 달라이라마의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 새겨보았다.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까지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탐욕에 눈이 멀지 않기를. 그럼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것이다.

저의 믿음이나 경험,

저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보건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이롭거나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자신의 삶이 쓸모가 있게 되는 거니까요.

(...)

부자들이 사치를 누려도

만족은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바라기 때문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으면,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면-

그런 삶은 의미를 잃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경이로운 지능이 있습니다.

이 지능을 활용해 세상의 행복을 늘리고

평화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공감을 사회에 선사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이바지하는 것 말입니다.

(p.123)

*본 리뷰는 출판사를 통해 제공받은 책을 읽고 남기는 리뷰입니다.

두렵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책을 보내주신 #북하우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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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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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선하고 사려깊은 문장을 계속 써 주세요. 삶과 세상과 우리를 계속 다정하게 사랑해주세요, 하고 작가님을 응원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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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착각 - 허수경 유고 산문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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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드시지 못하고 창가에 놓아두고 떠난 귤, 의 빛을 담아내었다는 책 표지를 쓰다듬어본다. 세상을 떠난 작가의 글을 다듬어 그가 그리 삼키고 싶어했던 향기로운 과실의 색을 담아 그의 생일에 세상에 나온 귤빛 책. 그런 마음들이 담겨져 만들어진 책을 어찌 함부로 읽을 수 있을까. #오늘의착각 을 조심스레 한 페이지씩 읽어보았다. 허수경 시인님이 살았던, 보았던, 그려내려 애썼던 그 시간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듯 한 착각에 빠져든 채로.

2년 동안 뉴스나 책에서부터 시작된 생각들을 여덟차례에 걸쳐 문학 계간지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모은 책. 나는 그중에서도 두번째 챕터인 '김행숙과 하이네의 착각, 혹은 다람쥐의 착각'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창작자이기보다는 독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예정이어서일까, '글을 '해석'함에있어 '오독'하고 마는 '미래의 타인'의 입장으로, '문학을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무수한 눈에는 한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위장된 저속한 흑백논리에 근거한 도덕적 판단이 숨어있(P 41)'으며 '무수한 문학평론가가 아도르노의 권위에 기대어 하이네를 읽기도 전에 그를 단죄하는 걸 보면서 그건 하이네라는 상처가 아니라 하이네, 라는 한 시인의 후대를 살면서 엄청난 비극을 겪은 이십세기의 상처(P 41)'라고 생각한다고 하이네의 편을 들어주던 시인의 글. '다만 그 시와 그의 시들을 읽는 순간만이 그 상처를 치유한다.(P 42)'고 말하는 시인의 글. 그 글속에서 나는 '그러니까 당신도, 시인들의 삶을 판단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의 시 속에 담겨진 상처를, 시대가 한 사람에게 낸 파열음을, 읽어내주세요. 귀기울여 들어주세요.'라고 당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착각'이라는 단어는 부정의 말꾸러미 안에 들어있던 단어였다. 하지만 삶 속에서 만난 모든 것들, 아주 옛날에 살았던 사람이 남긴 글들, 당장 내 옆의 이웃이거나, 혹은 먼 나라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의 소식들을 접하며 그것을 이해하고, 납득하고, 끝내 결국에는 오독하고 '착각'하여, 다시 그 착각의 말들을 길어내 시를 쓴 시인의 글을 읽다보니, 원래 느낌 그대로 더없이 고통스러운 단어인것도 같고 세상을 믿기 위한 더 없이 천진한 단어인것도 같아 어느 말꾸러미 안에 담아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메이고 말았다. 단어 하나로 이리도 다채로운 시선을 뻗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겠지. 여덟편의 '착각'에 관한 이야기 덕분에 나도 잠시 함께 시인이 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물론, 그러니까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것이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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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지음 / 난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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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단편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를 다 읽고 비죽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김진송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다. 김성중 작가님이 떠오르기도 하는, 그로테스크한 환상소설. 아, 이런 분위기의 작품을 쓰시는구나, 기대감을 안고 다음 페이지로 내달릴 준비를 했다. 그러나 세번째 작품, <달팽이를 사랑한 남자>에서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야했다. 이건, 이건... 너무나도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용납 불가능한 불쾌함이 머리를 지배했다. 책을 덮을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번 펼친 책의 끝장을 덮을때 까지 다른 책을 펴지 못하는 완독의 병을 가진데다 이 책은, 끝가지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기에 며칠 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그의 그로테스크의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꼭대기의 사람들>을 읽고 다시 크크크, 하고 웃음을 짓다 <종이 아이>에서 또다시 취향의 벽에 가로막힐뻔 했지만, 꾹 참고 <안섬 한 바퀴>를 읽고난 뒤 그 다음 작품들부터는 시간이 어찌 가는 줄 모르게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나 허탈한 타임루프물이 있을까 싶었던 <안섬 한 바퀴>, 실제로 이런 설치작품이 있다면- 이라고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던 <어린 왕자의 귀향>, 드라마 '더 킹'보다 훨씬 현실감있는 대체역사물이라 평가하고싶은 <섬>, 그리고 심리전의 화룡점정을 찍은 중편소설 <서울 사람들이 죄다 미쳐버렸다는 소문이......>까지. 한 사람의 내면의,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흔들리고 충돌하는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해 힘있게 끌고 나가는 서사속에 푹 빠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볍게 헛웃음이 비져나오는,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들이 마음에 들었다. 달팽이가 후려친 뒤통수가 아팠지만 그정도는 슬쩍 흐린 눈으로 못본척 하기로 결심했다.


책을 다 읽고 유난히 기억에 남은 단어가 있었다. 바로 '생각 사냥꾼'이라는 단어. <섬>에서도 그랬고 <서울 사람들이 죄다 미쳐버렸다는 소문이......>에서도 결국 사람들은 '생각'을 '사냥'당했다고 볼 수 있을텐데,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내 생각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언론에, 주변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내 생각을 사냥당한채로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언제나 나의 생각이 어디서, 누구로부터 도래한 것인지를 제대로 살피며 살아가고싶다. 그것이 생각을 사냥당하지 않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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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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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의 사랑스러운 수다쟁이 포지션을 맡고있는 오은 시인님의 산문집, <다독임>을 읽었다. 책읽아웃을 통해 2주에 한번씩 목소리로 만나왔던 오은시인님에 대한 이미지는 맑고, 사랑스럽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길수가 없어 저도 모르게 수다러워지고, 누군가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함께 호들갑스러워지던 사람, 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거기에 한 문장을 더 붙이고 싶어졌다. 세상을 아무렇게나 되는대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바라보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시인, 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내가 가진 이미지는 이런 것. 유난히 남다르게 예민한 안테나로 세상의 빈곤한 삶에 온 힘을 다해 파고들어 정성껏 어루만지고 다듬어 결국 반짝이게 만드는 사람, 이라는 이미지. 그래서 그들은 유난히 남들보다 더 자주 아파하고, 더 자주 슬퍼하고, 더 자주 행복해하고, 더 자주 신나하는게 아닐까. 그러니까, 오은 시인님처럼 말이다. 오늘도 오은 시인님은 다독(多讀)을 통해 세상을 다독이고(p.6), 세상속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p.116) 그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질문하며(p.107), 남의 일을 나의 안으로 끌어들여(p.101) 스스로의 안과 밖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내다보기도 (p.79) 하겠지. 그리고 그러한 시선과 질문 끝에서, 단어의 외연을 넓혀가(p.30)고 계시겠지. 특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오은 시인님만의 안테나로 그렇게 포착한 다양한 생각들을 읽을수 있는 책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유난히 크게 두드린 이야기는 다름아닌 '부끄러움'과 '시행착오'에 관한 이야기였다. 두 단어 모두 나에겐 그저 부정적 말주머니 안에 담겨있던 단어였는데 오은 시인님의 글을 읽고나니 새삼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제대로 마주하려하지 않았었다. 그저 숨기고 모른척해야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어떤 일에 실패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에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제대로 마주해 '반성을 하고, 조금 더 떳떳하고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p.137)'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일들 앞에서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에게 더 가까워지는(p.239)'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시인님은 말하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마주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낮잠을 자다 깨어나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조카를 꼬옥 품에 안고 등을 다독다독, 다독여주었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던 그 어린 몸의 온기를,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엄마의 예순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프라하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내 손등을 다독다독 다독여주던 엄마 손의 온기역시,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어떤 기쁜 순간, 혹은 어떤 슬픈 순간. 많은 사람들과 다독임을 나누었다. 다독다독, 우리는 그렇게 서로 그 행복이 흩어지지 않도록 잘 다독였고, 그 슬픔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차분히 다독였다. 그 다독임의 순간들이,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겠지. 부지런히 다독다독, 내 삶속의 모든 것을 다독이며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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