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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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역사에 대해 지식이 있었다면 이 책을 좀 더 잘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책장을 덮었다. 매우 특이한, 실험적인 형식으로 저 먼 신화시대에서부터 현재를 넘나들며 자신과, 가족과, 민족의 삶 속에 흩뿌려진 슬픔으로 만든 이야기로 끝없는 미로를 만들어 내는 이 소설을 솔직히 말해 무척 힘들게 읽었고, 사실상 반쯤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양자는 우리가 그것을 관찰할 때만 입자로 거동하듯, 인간의 존재 역시 누군가 바라보아 줄 때 온전히 존재할 수 있으며(p.372), 세상이 존재하려면 누군가가 끊임없이 세상을 지켜보아야 한다(p.374)는 생각으로 작가는 주변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수집하고, 공감하고, 슬퍼하며 이런 형식으로 기록했던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 추측해 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동유럽 국가들이 겪은 역사와 긴밀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의 무지가 더욱 아쉬웠다. 


우리가 존재한다면 그건 우리가 관찰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서 절대로 눈길을 거두지 않는 무엇 혹은 누군가가 있다.

그것이 더 이상 지켜보지 않을 때, 우리에게서 고개를 돌릴 때 죽음이 온다.

P.373


소설 속 화자의 '강박적 공감-신체화 증후군'이라는 병으로 인해 그의 할아버지, 고모할머니, 살면서 만난 사람들, 심지어 인간이 아닌 생명에까지 '이입'하며 발견한 생의 슬픔들 속에서 작가는 반복적으로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가 무찌른 괴물, '미노타우로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어떤 영웅신화가 어떤 학살과 학대와 차별의 증거가 될 수 있는지,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입장에서 세상을 관찰할 것인지 즉, 어떤 세상이 존재하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타인의 슬픔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 몇 달 전 독서모임 친구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었던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나서 내내 머릿속에 머물렀던 질문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나의 대답은 여전히, 백 퍼센트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만 그 슬픔의 존재를 알아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것. 타인의 슬픔을 모른척하지 않는, 없는 취급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는 것. 이 소설 속 화자처럼 타인의 고통을 신체화하는 것 까진 무리일지라도 누군가의 슬픔을 바라봄으로써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슬픔이 다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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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세대
백온유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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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책에 대하여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약속을 품고 살아간다. 그것이 누군가와 직접적인 대화로 나눈 약속일 수도, 혹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도덕적 규범일 수도, 법전에 명시된 법규일 수도, 혹은 어떤 개인적 목표일 수도 있다. 백온유 작가의 신작 소설집 <약속의 세대>는 그런 약속들이 무너진 순간 상처 입고 무너져내린 마음을 어떻게 다잡고 다시 설 수 있는가에 대해 묻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헌신하는 만큼 보상이 따를 거라는 기대, 

인내하면 찬란한 미래가 당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헐거운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라며 사는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다

- 작가의 말 중

약속에는 무언가를 향한 신뢰와 기대, 희망이, 그리고 그 뒤편엔 구속과 강박이라는 이면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어떤 위계적 관계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일 때도, 고용인과 피고용일때도, 가족 안에서도. 동등하지 않은 위치에서 발생하는 약속들은 관계를 억압하기도 하고 일방적인 책임을 강요하기도 하고, 종내에는 일상을 파괴하기까지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사회와 나 사이에 응당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던 약속이 무너졌을 때, 신뢰에 균열이 갔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다시 서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작품은, 가장 여운이 짙었던 마지막 작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이 작품 속에는 당연히 지켜졌어야 할 사회 시스템의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 한국을 떠나버린 한 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결국 믿음이 산산조각 난 채로 남겨진 폐허로 결국 다시 돌아와 서서 그것을 제대로 응시하는 이모의 모습을 보며 그 용기를 내기까지 걸린 긴 시간의 암담함이 참 애달팠다. 


오늘도 나와의 약속이, 친구와의 약속이, 가족 간의 약속이, 사회적 규범과 법규가 이곳저곳에서 무너지고, 깨어지고 있을 테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내일을 믿을 것이고 나를 믿을 것이고 당신을 믿을 것이다. 사회의 보편적인 규범 속에서 누군가를 돌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도 하며 살아갈 것이다. 끊임없이 기대하고, 그 기대가 깨지는 순간순간들이 이어질 것이므로, 도망치지 말 것. 지치지 말 것. 기대한 것만큼 손에 쥐지 못했다고 해도 그 삶을 외면하지 말 것. 우리 모두는 각자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니, 그러니 서로에게 조금만 더 다정해져야 한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사람이 힘들 때 ‘나만 이렇게 힘든가’ 싶으면 더 힘들어지잖아요. 

나와 똑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옆에 있으면 조금 덜 외롭거든요. 

고통을 이겨낼 방법을 제시하기보다 

비슷한 고통을 안고 분투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게 소설의 역할 아닐까요.


<약속 못 지키는 사람들, 그들에 배신당한 사람들…>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60401/133649915/2

백온유 작가 인터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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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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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책이나 영화 때문에 좋아진 술이 있다. 첫 번째로는 김렛. 챈들러의 소설 '기나긴 이별'에서 "진짜 김렛은 진 반과 로즈 라임 주스 반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대사가 있어서, 이 소설의 팬들은 이 레시피를 '챈들러 김렛'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어 바에 가면 항상 김렛을 찾게 되었더랬다. (그러나 저 '로즈사의 라임주스'가 한국에서 수입하는 업체가 없어 정식 레시피로 맛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도 한다. 나는 한때 자주 가던 바에서 딱 한 번 챈들러 레시피로 마셔본 적이 있다.) 또 하나는 영화로도 유명한 <캐롤>의 원작 소설에 나온 '올드 패션드'. 이 칵테일은 한때 몇 번 들러보았던 '책바'에서 처음 마셔보고 그 반해버렸던 칵테일이다. 원래도 술을 좋아하는 편인데,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가미된 술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이 책은 그 '이야기가 가미된 술' 이야기가 끊임없이. 정말이지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나 많이 알고 계신 걸까. 도대체 .... 그동안 얼마나 술을 많이 마신 것일까?라는 정말이지 순수한 궁금증이 자꾸만 피어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더랬다. 마치 작가님이 피츠 제럴드의 소설을 읽으며 '이분, 꽤나 드셨군'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2년 전 출간된 전작 <밤은 부드러워, 마셔>의 두 번째 책인데, 첫 번째 책의 표지를 보니 그 당시에 이 책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찾아읽지 않았던 걸까?라는 후회를 잠깐 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아직 안 읽은 게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재밌게 읽을 책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 :) 후훗. (사실 한은형 작가님의 소설도 읽어본 게 한 권도 없어서 스스로 너무 놀랐고, 몇 권 읽어보려고 리스트에 업 해 놓았다. )

책을 읽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여행을 하다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함께 시간과 마음을 나누며 알게 된 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당연히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기다 보면 너무나도 술이 마시고 싶어지는데, 책 속에 나오는 술은 마실 수가 없으니 에잇! 하고 나도 모르게 냉장고로 달려가 맥주캔을 따고 만 것이 여러 번이다. 마셔봤던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 술의 맛과 향이 절로 살아나 입맛을 다신 것도 여러 번이고. (그러나, 나의 첫 블러디 메리의 경험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기에 이 술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땐 정말로 눈살을 찌푸리며 읽었더랬다. 크크 왜 두 번이나 나오는 건지... 표지의 불독이 영화 <패터슨>에서 패터슨의 시 노트를 씹어 먹은 그 녀석이라는 것도 재밌는데 그 녀석이 마시고 있는 게 블러드 메리라서 또 웃었다.) 책을 읽으며 술 이야기의 재미도 재미였지만, 무언가에 이토록 깊게 빠져들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다시 한번 나에 대해 깨달았다.

'판매 1위' 라든가 '요즘 사람들이 제일 좋아해요'

라는 말에 마셔 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세상의 권위나 인기는 나의 기호에 그다지

(어쩌면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내 삶을 하나씩 채워가는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으셨지 않을까.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을 이리 저리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을 내 삶에 들여놓을지를 결정하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나도 이렇게 단단한 취향을 갖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 귀는 정말이지 얇디 얇아 문제겠지만.


다 읽고 나서는 윔블던의 상징이라는 핌스 칵테일을 마셔보고 싶어졌고, 김환기의 서러움을 생각하며 마셨다고 하신 뮈스카도 마셔보고 싶어졌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홍콩에서 한 모금 마시자마자 우웩 하며 다시 입대지 못했던 블러디 메리. 그것을 한 번 제대로 다시 마셔보고 싶어졌다. 당장 코냑 한 병 사와 하리보 곰과 지렁이 젤리를 풍덩 넣어버리고 싶어지기도 했다. 적절한 음식과,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사람들과 나를 페어링 해서. 아무튼, 마셔. 마십시다.

(+) 전작인 <밤은 부드러워, 마셔>도 읽어보아야겠고, 초현실 주의자의 술을 이야기하며 나왔떤 <에르메스 수첩의 비밀>이라는 책도 궁금해서 찾아 읽어보아야겠다. 아참참 한은형 작가님의 소설들도 물론.


#을유문화사 #밤은부드러워마셔 #한은형 #을유문화사_서평단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책에 대하여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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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철학 - 고대 철학가 12인에게 배우는 인생 기술
권석천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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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를 재밌게 읽었다. 그래서 권석천 작가님의 '철학'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우선 '최선'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간다.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첫 번째 의미로 '가장 좋고 훌륭함. 또는 그런 일.', 두 번째 의미로 '온 정성과 힘.'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이 책은 두 번째 의미에 좀 더 주목한다. 잘 살기 위해, 좋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좋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할 수 있는 한의 온 정성과 힘을 다해 삶을 마주하는 태도야말로 '철학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앙일 테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최고의 삶'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향에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충실히 살아내는 '최선의 삶'을 위한 철학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p.8)

이 책의 묘미는 무엇보다 고루하고 지루하고 따분할 것만 같은 고대 철학의 고전을 부러 찾아 읽고 싶게 만든다는 점이다. 까마득한 옛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우리의 고민과 똑 닮은 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아마 작가님이 오랜 기자 생활 동안의 경험을 녹여내어 철학을 우리의 삶에 쉽게 대입해 보고, 거기에서부터 어떻게 고민하고, 사고하고, 사유하고 깨달아 나아가야 할지 이끌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천 년이 흘러도 인간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조금은 잠재워준다. (한편으론 수천 년이 흘러도 인간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삶의 허무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열두 명의 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에서 나에서 타인으로, 그리고 세상으로 시선을 이동시킨다. 1부와 2부에서 아주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과 비교해 3부에서는 조금 그 힘이 약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아마 3부에서 소개한 철학자들의 이름이 1,2부에 소개된 철학자들이 비해 나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중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나'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숙한 인간이라서인지 1부의 내용들에서 특히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 듯하다. 특히 '질문'하는 힘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 본다. 내향형이라서 누군가에게 질문하기 꺼려졌다면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줄이라도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평생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충분히 질문하지 못한 채로 생긴 신념은 엉성하고, 삐뚤어져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남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짜 궁금한 것은 '궁금한 마음과 표정' 그대로 물어보라"는 말과 플라톤의 "초보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내가 왜 이런 실수를 했지?'하고 창피함을 느끼는 대신 '새로운 상황에서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남의 비웃음이 너무 두렵고, 실패가 너무나도 두렵다. 이 '남의 비웃음'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은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불필요한 행동뿐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라는 문장 속의 '불필요한 생각'일 것이다. 남의 비웃음이 두려워서, 실패가 창피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죽을 텐데, 그건 두렵지 않은가? 하고 나에게 계속, 질문해 보아야 할 일이다.


많은 작가의 책들과 모든 종류의 책들에 대한 독서가 

자네를 두서없고 불안하게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게.

자네의 마음속에 확고하게 자시 잡을 생각들을 끌어내려면, 

자네는 적은 수의 뛰어난 사상가들 사이에 오래 머물면서 

그들의 작품을 소화해야 하네. *세네카/독서의 방법, 15쪽 

(...)

세네카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과도한 독서의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주죠.

"그날 소화할 수 있는 한 가지만 고르라"고요.


열두 명의 철학자들 중 가장 나를 '멈칫'하게 만든 철학자는 바로 세네카였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 당장의 내가 가장 마음에 걸려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딱히 '과도한 독서'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일단 한 달에 열 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읽기'의 제대로 된 마무리로 '서평'을 제대로 써 두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지만 도무지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내 스스로가 참 싫은 요즈음이기 때문이다. 한 달에 열 권이 누군가에겐 '과도'하지 않은 수겠지만 나에게는 꽤나 '과도한 수'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내지 않고 제대로. 세네카의 글들을 다시 곱씹어 읽으며 또다시 다짐해 본다. (항상 다짐하지만 그렇지만 매일매일 재미있어 보이는,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책이 자꾸만 자꾸만 출간되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이 책은 그래도 서평을 남기며 소화해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책에 대하여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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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리히터 - 영원한 불확실성 현대 예술의 거장
디트마어 엘거 지음, 이덕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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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작가 미상>을 보았었다. 그때의 난 미술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실제 인물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었는데 영화 덕분에 이름을 알게 되었었다. 그러나 사실 지금에 와선 이 영화의 후반부는 거의 기억에 없다. (3시간이 넘는 영화였는데, .... 잤나....?) 전반부 어린 주인공의 이모 엘리자베스가 그 역겨운 '인종 개량'(우생학)의 희생자로 목숨을 잃는 장면, 그리고 주인공이 미술대학에 진학한 후 선전미술을 그리는 장면 같은 것만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니까 정작 중요한 그 이후의 리히터의 작품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영화를 본 직후엔 리히터에 대해서 더 공부해 보아야지,라고 생각했었지만 영화의 내용이 흐릿해지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그 생각은 스러져갔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이름이 다시 내 머릿속에 소환된 것은 몇 년 후 곽아람 작가님의 책 <공부의 위로>덕분이었다. 표지의 이 '사진'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읽는 사람>) 누구 작품이지? 하고 앞날개를 펼쳤을 때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고 해서 놀라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니 함께 검색된 영화가 있었고,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다 보니 왜 내용이 익숙하지, 하고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영화 <작가 미상>을 생각해 냈다. 두 번째 만남으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이름이 드디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이름 기억'까지가 끝이었다.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던 중 을유문화사의 피드에서 그렇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미술가의 이름을 보았다. 영화를 보았던 2018년과는 다르게, 코로나 시절 동안 미술에 급격하게 빠져들어있었던지라 드디어 때가 왔다, 싶어 서둘러 서평단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도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작년 말에 '아마도 2024년의 마지막 책'일 것이라고 성급하게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2024년의 마지막 책도, 2025년의 첫 책도 아니지만 어쨌든 디트마어 엘거가 성실하게 탐구하고 기록한 리히터의 '거의 모든 것'을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해 읽어내었다. 그가 기록한 리히터의 작품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하고, 그러나 다시 되돌아갔다가 다시 나아가기를 반복한다. 구상과 추상을 오가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문지른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관철하는 리히터의 일화들을 읽으며 혹시 이 분 회피형인가? 하고 잠시 장난스러운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는 어쩌면 오히려 하나의 사조,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노선'을 정하는 것을 온 삶을 다해 거부하며 오히려 명료하게 '확증편향'의 위험을 스스로에게, 또 우리에게 경고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책 거의 초반 부의 "내가 그림으로 표현한 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자 함이 아니라 나 자신도 이 어려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리히터의 말은,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겨우 이해되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자마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실 처음 읽을 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윤혜정 작가님의 추천의 글을 다시 되짚어 읽었다.


절대적 그림도, 아름다운 이상향도,

명확한 진실도 존재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흡수해

도로 뱉어 내길 반복하며

세상을 보는 예술 공식을 만들어 냈다.

사실 작금의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숱한 비극적 상황들 역시

지나치게 확고한 신념과 신성불가침한 이념,

결연한 태도와 정형화된 정체성 등

모든 게 압도적으로 분명해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말을

역사와 예술의 과오에 맞서며

명예를 지켜온 리히터에게서 듣는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탐구 중입니다,

고민을 지속할 작정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 영원한 불확실성>

추천의 글 <의심으로 그리는 희망의 비가 by. 윤혜정>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불친절한 책이었다. 120개에 달하는 도판이 실려있긴 하지만 리히터의 작품을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120점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하지만 이 성실한 예술가는 너무나도 성실하게 자신의 작품을 아카이빙 해 왔기에 그의 홈페이지에서 그가 작품 뒤에 붙인 숫자만으로 간단하게 작품을 검색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모든 작품을 검색하며 읽지는 못했지만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들을 홈페이지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를 확인하며 읽을 수 있었다. (https://www.gerhard-richter.com/en)


사진회화, 추상화, 풍경화 등 다양한 스타일을 오가는 리히터의 예술 세계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 삶의 경로, 그 경로 위에서 만난 예술가들, 컬렉터들, 갤러리스트들과의 관계들, 당대의 평론들까지 방대한 이야기 꾸러미를 펼쳐놓은 이 책은 왜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예술가인지를 납득시킨다. 책을 다 읽고 영화 <작가 미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영화의 시작이 나치 독일의 퇴폐미술전이었다는 것이, 소년이 바라본 불타는 드레스덴 위로 날아가는 전투기들이 나오는 장면이 그의 그림 <폭격기(13)> 와 겹쳐진다는 것이, 이제야 새삼 눈에 보인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선택의 부재,

구성의 부재,

스타일의 부재,

내용의 부재와 같은 용어가

리히터 작품의 특징이다.

주자네 에렌프리트의 리히터의 초상화에 관한 논문

<특성없이> 중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부재'야말로 리히터가 끝없는 고민 끝에 어렵게 선택한 답이었음을 알겠다. 언젠가 꼭, 그의 작품 <October 18, 1977 (1977년 10월 18일)> 연작과 <Birkenau(937/1~4)(비르케나우)>를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영화를 마저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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