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The Cambridge Companion to Pop and Rock>>(2001)을 번역한 것으로,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가 ‘케임브리지 지침서’라는 이름으로 펴내는 시리즈 중 하나이다. 저자들의 집필 의도와 무관하게 이 책은 대중 음악 강의용으로 적합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사이먼 프리스의 <<사운드의 힘>>(1995)이 국내에 소개된 이후로 대중 음악 관련 서적들이 더딘 행보로나마 꾸준히 발간되고 있지만 막상 일반인들이 접하기에 적합한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이렇듯 전문적인 이론서가 먼저 발간되고 입문용 책이 뒤늦게 소개되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순서가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미권에서도 대중 음악 연구 일반을 폭넓게 다룬 책들은 최근에야 서서히 발간되는 중이다. 이런 상황은 의외로 쉽게 이해된다. 어떤 분야의 연구 영역이 전문화되고 그 성과가 축적되어 그것들을 서로 일관되게 조율하고 설명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려면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중 음악 연구의 주요 논점과 문제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단행본으로는 로이 셔커의 <<대중 음악의 이해Understanding Popular Music>>와 키스 니거스의 <<대중 음악 이론Popular Music in Theory>>가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여기에 최근 들어 기획력을 갖춘 출판사가 중심이 되어 유명 학자들의 논문을 모아둔 형식의 편저가 속속 발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 책을 포함하여 데이비드 헤스몬덜프(David Hesmondhalgh)와 키스 니거스가 편집을 맡은 <<대중 음악 연구Popular Music Studies>>, 브루스 호너(Bruce Horner)와 토마스 스위스(Thomas Swiss)가 기획한 <<대중 음악과 문화의 주요 용어Key Terms in Popular Music and Culture>>를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책의 구성과 주제를 다루는 방식, 서술의 관점이 포괄적이면서 명료하여 일반인들을 가장 배려한 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을 잠깐 보자. 1부는 밖에서 본 대중 음악으로 그 토대를 이루고 있는 조건들(테크놀로지, 산업, 소비)을 검토한다. 이것들은 평소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대중 음악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매개의 해당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중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이런 조건들이 바로 대중 음악을 현재의 모습으로 이끌었으며 우리가 여기에 정서적으로 매료되는 요인이라는 점이 1부의 공통된 전제다.

2부는 안에서 본 대중 음악으로 그 체계를 구성하는 장르와 스타일(팝, 록, 소울, 댄스, 월드 뮤직)을 다룬다. 글의 구성은 장르의 역사를 따라가기도 하고 문제를 중심으로 삼기도 하는데, 대중 음악의 전체적인 장에서 개별 장르가 어떤 차별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그 일부를 구성하는지, 그리고 장르에 따라 제작과 소비의 패턴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초점을 둔다.

3부는 다시 밖에서 본 대중 음악이다. 여기서는 대중 음악의 논의에서 핵심적으로 부각되는 논쟁들(해석, 성차, 정치, 인종, 로컬리티)이 주제가 된다. 대중 음악은 기본적으로 차이를 바탕에 두고 갈등과 대립과 경쟁이 펼쳐지는 장이다. 이런 갈등은 대중 음악과 비 대중 음악처럼 내부와 외부 간에 벌어지기도 하고, 음악가와 청중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기도 하며, 음악의 용도와 의미를 두고 펼쳐지기도 한다. 대중 음악이 현대의 문화적 산물 가운데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긴밀한 구성과 일관된 관점이 이 책이 일차적인 미덕이지만, 한편으로 이 책은 대중 음악 연구의 현 수준과 깊이를 보여주는 이론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총출동하여 (줄잡아) 지난 30년 간 대중 음악 연구에서 축적되어 온 이론적 성과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아도르노의 주장이나 포크와 록의 저항 담론에서 보듯 대중 음악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 초기에는 섣부른 단정이나 무모한 일반화가 많았지만, 상이한 관심과 이론적 배경을 가진 많은 학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면서 주장들이 세련되게 다듬어지고 좀더 정교한 논리가 개발되었다. 이와 더불어 초기의 지배적 담론에서 소외되었던 영역이 복권되어 역사 서술이 바로잡히고, 새로운 현상이 가져오는 장점과 단점을 두루 검토하는 균형 감각이 길러지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학문적 조명을 받지 못했던 팝과 댄스 음악을 적극 조명하는 것이 이채롭다. 팝 분야에서는 감상적인 발라드와 (소홀하기 쉬운) 동요, 찬송가를 재평가하고, 댄스 음악의 경우 하위 문화에 편중되었던 기존의 서술에서 벗어나 댄스홀의 역사를 통해 20세기에 춤과 음악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살펴본다. 한편 록의 진정성의 뿌리를 찾기 위해 포크를 넘어 19세기의 낭만주의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간 록의 등장의 급진성을 부각시키려는 노력 때문에 희생되었던 중간 시기를 복권하려 한 시도도 주목할 대목이다. 흑인 음악의 서술에서 허슬러 라임과 같은 구어적 전통을 배려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렇지만 책에 담긴 논의의 무게는 그동안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연구 분야에서 확인된다. 가장 대량으로 제작된 음악이 가장 사적으로 소비되는 아이러니를 팝의 존재론적 본질로 설명하는 대목이나 록의 모순을 ‘하위 지배’ 문화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것, 그리고 “백인이 블루스를 연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표현되는 인종에 관한 고정 관념을 기능주의 관점으로 돌파하는 대목이 그러하다. 더불어 글로벌화와 디지털 경제의 문제, 그리고 해석적 전략 면에서 결정론적 사고를 경계하며 빛과 그늘, 양방향을 모두 바라보려는 신중함이 돋보인다. 한편 최근 대중 음악 연구의 참신한 패러다임으로 각광받고 있는 민족지학의 방법론을 통해 인디 록의 관습과 성차 문제를 조율하는 문제를 살피고, 카리브해 지역 슈퍼스타들의 초국가적 실제를 들여다보는 장도 무척 흥미롭다. 아울러 음악학의 최근 화두인 신체에 관한 담론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최근 들어 대중 음악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새로운 장르는 눈에 띄지 않지만 전체적인 지형에서는 여전히 변화의 흐름들이 존재한다. 롤링 스톤스 같은 과거의 록 스타들에서 보듯 이제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공연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공연의 명분을 위해 앨범을 내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동이 음악 소비 주체로 급부상하여 관련 시장이 성장하는 중이며, 영미권 중심의 음악 헤게모니가 위축되면서 전 세계 음악 중심지가 새롭게 재편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중고음반 시장과 디지털 음원 거래 등 눈에 잡히지 않는 음악 경제의 규모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새로운 하위 문화가 생성되는 대신 펑크와 고스, 로커빌리 같은 과거의 하위문화가 다시 현재로 불려와 안정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모습들이 포괄적인 이슈와 연계되어 논의로 흡수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이 책에는 스타 프로필 15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종의 인물론으로 쓰여진 독특한 글들로 그 자체가 독립적인 텍스트이면서 본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마빈 게이와 흑인 음악, 봅 말리와 월드 뮤직, 아바와 유로팝 등). 스타가 대중 음악에서 가장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고, 스타를 통해 대중 음악의 역사와 논점을 집약적으로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스타 프로필은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압축해서 정리하는 축약본이자 안내자 역할을 한다. 본문의 내용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프로필을 먼저 읽으며 친숙해진 뒤에 본문에 도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아울러 서문 뒷부분에 수록된 팝과 록의 연대기를 참고하며 대표적인 노래와 앨범을 찬찬히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책에 달린 주는 모두 번역자가 작업한 것이다. 처음에는 소박한 정도로 출발했지만 편집자와 원고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분량이 상당히 늘어났다. 언어를 넘나드는 번역은 늘 끈기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법이지만 저자가 여러 명인 책은 특히 까다롭다. 글을 쓰는 스타일과 전개 방식, 표현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특히 9장은 아마 독자들에게도 가장 부담스러운 장이겠지만 번역을 하는 입장에서도 만만치 않은 경험이었다. 이것은 팝의 해석이라는 분야 자체가 까다로운 이유도 있고, 구체적인 예 없이 이론들의 흐름을 훑어보는 전개 방식 때문이기도 하고, 저자 특유의 문체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팝의 해석과 관련된 부문은 대중 음악 연구에서 비교적 늦게 시작된 분야이지만 최근에 가장 활발한 성과를 내놓고 있는 분야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 책이 훗날 개정판을 낸다면 테크놀로지에 관한 장과 더불어 가장 많은 개정이 필요한 장일 것이다.

끝으로 내게 멋진 책을 발견하게 해준 운과 이렇게 원고를 최종적인 책으로 정성껏 옮겨준 한나래 출판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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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보인다 클래식이 들린다
데이비드 렌돌프 지음, 이창희 (외) 옮김 / 마루(금호문화)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클래식 음악 세계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초보자들을 유혹하는 책이 많지만 데이비드 랜돌프의 이 책만큼 똑 부러진 책도 드물다. 명곡 해설에 주관적인 감상을 덧붙인 일반 서적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책들이 먹기 좋게 요리된 음식을 주는 것이라면, 랜돌프의 책은 음식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다. 즉, 무슨 음악을 들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음악을 들을 것인가가 이 책의 관심사다. 사실상 음악 미학 입문서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음악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악보를 들여다보며 분석적으로 음악에 접근하지 않는(혹은 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책으로 철저하게 감상자 위주로 논의를 전개한다. 여기에는 저자의 확고한 믿음이 바탕에 있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예술, 비서술적 예술이므로 표제나 가사보다 음악 자체의 의미가 일차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언어적 설명이나 일상의 감정이라는 차원에서 음악에 접근하는 태도에 회의적이며,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태도에도 마찬가지로 회의적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음악에서 청자가 느끼는 정서적 반응이다.

물론 이런 믿음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 분석적 태도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해 지적 분석이 감정적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음악을 지나치게 청각적인 경험에 제한하고 있다(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귀를 이끄는 것이 꼭 소리만은 아니며, 음악외적 해석이 음악 경험을 얼마든지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미학 책이 아니라 초보자가 클래식 음악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고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더없이 훌륭하다. 초보자들이 주눅 들지 않고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데, 무엇보다 감상자들이 음악 감상에서 실질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을 설명한다는 점이 책의 장점이다. 이는 음악 형식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가령 반복을 통해 형식의 원리를 설명하고, 악장 구성을 대조와 다양성으로 풀어내고, 형식을 정적인 성격과 동적인 성격으로 구분하여 분류하고,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를 창조성의 핵심 영역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책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독창적인 대목이다. 쉬우면서도 정곡을 찌른다는 말은 바로 이 책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비교적 접하기 쉬운 곡들에서 예를 따왔지만 그렇다고 교과서적인 명곡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인덱스가 첨부되어 있어서 곡 설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다행이다(당연히 있어야 할 인덱스가 언제부터 고마운 일이 되었는지). 번역도 나무랄 데 없는 이 책이 그럼에도 그에 값하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마 진부한 제목 때문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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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종말
폴 로버츠 지음, 송신화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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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제 유가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지만 국내 여론은 의외로 담담하다. 에너지 위기야말로 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지만, 일반인들은 에너지 문제보다 휘발유 가격에 붙는 세금에 더 관심이 많다. 에너지는 경제 발전과 동의어로 여겨질 만큼 현재 인류 문명을 나아가게 하는 근본 동력이다. 문제는 현재의 에너지 체계로는 자원이 유한하다는 점, 그리고 환경 문제와 같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명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언젠가는 문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일이다.

가끔씩 TV에서 보여주는 미래 에너지 시장의 청사진은 장밋빛 희망으로 가득한 꿈의 세계다. 하지만 그런 꿈이 실현되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은 무수히 많다. 왜 이렇게 기술의 진전이 더딘 것인가. 이 책을 읽다보면 에너지 관련 문제는 기술의 문제보다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치는 이권 다툼과 조정의 장이다. 세계가 석유를 비롯한 탄소 화합물에 의존하는 비중이 워낙 높다보니 기득권을 가진 자들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자들의 갈등의 골도 그만큼 깊을 수밖에 없다. <석유의 종말>은 이런 갈등을 대의적인 차원에서 현실적으로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책이다.

책은 제목에서 보듯 대단히 어둡고 우울한 전망으로 출발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다. 미국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미국 정부의 역할을 특히 강조하는데, 정부와 미국인들의 에너지 팽창주의 사고를 질타하면서도 나름의 지정학적, 정치적 특수성을 인정한다(따라서 우리에게는 좀 불편하게 읽히는 대목도 있다). 이렇듯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현실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덕목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살펴봄은 물론 유기 화합물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에너지 관련 통계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한편 미래 에너지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상세히 보고한다. 정보 면에서도 이 책은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에너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든 절박한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에너지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했으면 한다. 더불어 케이티 앨버드의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도 함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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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죽음의 교향곡 - 브루노 발터가 만난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지음, 김병화 옮김 / 마티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바야흐로 말러 세상이다. 이미 클래식 연주 시장에서 별미가 아니라 정규 식단으로 자리잡은 말러는 이제 출판 시장으로 진격하는 중이다. 말러에 관한 또 한 권의 책이 발간된 것인데, 아동용 서적을 제외하면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음악 출판계에서 말러만큼 꾸준히 사랑 받는 음악가도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소개된 말러 책들이 주로 심도 있는 청취를 돕거나 음악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딱딱한' 책이었다면, 이제야 일반 애호가들을 위한 '말랑한' 책이 나온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전기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책과 가까이서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브루노 발터가 말러를 회고하며 쓴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은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 발터는 말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고, 말러의 음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선구적으로 노력한 지휘자로, 그들의 관계는 푸치니와 토스카니니의 관계와 비슷하다. 또한 말러야말로 개인적인 삶이 그대로 자신의 음악에 반영된 예가 아니던가. 이 정도면 이 책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예술가의 성격이나 태도, 심경을 이렇게 내밀하고 솔직하게 회고하는 책을 만나기도 어렵다. 그것은 발터 역시 위대한 예술가로 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 예술가가 또 다른 예술가를 역할 모델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물에 집중하다보니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조망이 다소 부족하다. 말러와 발터가 함께 활동했던 세기의 전환기의 빈의 모습과 당시 음악 생활이 어떠했는지가 좀 더 자세히 묘사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책이 우리에게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점은 생략하자.) 대신 발터가 말러의 곡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피력하는 대목과 풍부한 사진 자료 및 해설은 이 책의 가치를 드높이는 요소다. 말러를 좋아하는(그리고 좋아할)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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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귀
문국진 지음 / 음악세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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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진 능력 가운데 가장 매혹적이면서 신비한 것은 아마 예술적 창조력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예술가의 삶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모차르트의 귀>는 법의학자가 쓴 책답게 작곡가들의 삶 중에서도 질환에 관심이 많다. 병은 유명 작곡가들의 삶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낙인 같은 것으로, 이런 병에도 불구하고(혹은 그로 인해) 그들은 놀라운 투혼을 발휘해 불멸의 작품들을 남겼다. 병은 작곡가들의 신화에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베토벤과 귓병, 슈베르트와 매독, 슈만과 정신병은 음악사의 에피소드에서 단골로 나오는 주제이다.

하지만 아무리 병이 작곡가의 삶의 흥미로운 부분인들 음악 작품과 관련이 없다면 한낱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내가 책방에서 이 책을 훑어보다가 마음을 정한 이유는 우연히 펼친 차이코프스키에 관한 장 때문이었다. 울별 증상과 주요 작품과의 관계를 도표로 나타내고, 비창 교향곡의 상반된 악장 구성을 그의 조울증과 관련지어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읽을 만한 책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아뿔싸! 찬찬히 책을 읽다보니 그 대목이 유일하게 작품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장이었다.

단순히 작곡가의 병력을 확인하고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질환이 작곡가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었고, 그것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었고,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그의 음악을 듣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 말하지 않는다면 법의학자의 전공적 호기심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베토벤의 청각 장애와 합창 교향곡의 불협화, 슈만의 후기 곡들에 나타난 정신병적 징후, 말러 음악의 신경증적 특징 등은 음악학에서 상당한 연구가 이뤄진 분야다.) 게다가 문장도 썩 매끄럽지 못하고, 글이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으며, 병명과 관련하여 투박한 한자어가 그대로 등장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못 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좋은 소재이지만 지엽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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