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종말
폴 로버츠 지음, 송신화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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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제 유가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지만 국내 여론은 의외로 담담하다. 에너지 위기야말로 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지만, 일반인들은 에너지 문제보다 휘발유 가격에 붙는 세금에 더 관심이 많다. 에너지는 경제 발전과 동의어로 여겨질 만큼 현재 인류 문명을 나아가게 하는 근본 동력이다. 문제는 현재의 에너지 체계로는 자원이 유한하다는 점, 그리고 환경 문제와 같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명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언젠가는 문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일이다.

가끔씩 TV에서 보여주는 미래 에너지 시장의 청사진은 장밋빛 희망으로 가득한 꿈의 세계다. 하지만 그런 꿈이 실현되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은 무수히 많다. 왜 이렇게 기술의 진전이 더딘 것인가. 이 책을 읽다보면 에너지 관련 문제는 기술의 문제보다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치는 이권 다툼과 조정의 장이다. 세계가 석유를 비롯한 탄소 화합물에 의존하는 비중이 워낙 높다보니 기득권을 가진 자들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자들의 갈등의 골도 그만큼 깊을 수밖에 없다. <석유의 종말>은 이런 갈등을 대의적인 차원에서 현실적으로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책이다.

책은 제목에서 보듯 대단히 어둡고 우울한 전망으로 출발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다. 미국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미국 정부의 역할을 특히 강조하는데, 정부와 미국인들의 에너지 팽창주의 사고를 질타하면서도 나름의 지정학적, 정치적 특수성을 인정한다(따라서 우리에게는 좀 불편하게 읽히는 대목도 있다). 이렇듯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현실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덕목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살펴봄은 물론 유기 화합물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에너지 관련 통계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한편 미래 에너지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상세히 보고한다. 정보 면에서도 이 책은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에너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든 절박한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에너지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했으면 한다. 더불어 케이티 앨버드의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도 함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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