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세계 - 과학소설의 상상력을 통해 내다본 인류의 미래
프리먼 다이슨 지음, 신중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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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배신감이다. 모호한 제목 아래 붙은 부제가 '과학 소설의 상상력을 통해 내다본 인류의 미래'다. 그래서 SF에 그려진 미래의 모습을 과학자의 입장에서 흥미롭게 풀어쓴 책인 줄로만 알았다. 한데 과학 소설과 관련된 내용은 부분적으로 조금 등장할 뿐이다. 침소봉대의 전형이다.

다음에 든 생각은 실망감이다. 이 책에서 그나마 읽어볼 만한 대목은 과학 기술의 사례들을 이데올로기와 윤리의 관점에서 서술한 부분이다. 하지만 굳이 이를 위해 이 책을 집어들 생각이라면 비슷한 주제를 보다 포괄적이고 흥미롭게 다루고 있는 다른 좋은 교양 과학서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래도 책의 초점은 미래 사회의 모습에 놓여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책이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부실하다는 인상이다. 미처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독특한 아이디어나 비전이 없어서 굳이 전문적인 과학자가 아니라도 대충 그려봄직한 미래의 모습이다. (출판연도가 오래된 탓일까? 7년의 세월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저자의 시야가 낙관적이고 윤리적인 틀에 갇혀 있는데, 이를 독자들에게 설득시킬 논거의 힘이 부족해 보인다.

따라서 결론은 이렇다. 원제가 독자에서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미래상은 이 책에 없다(혹은 기대치에 못 미친다). 부제는 출판사(혹은 역자)가 임의로 갖다 붙인 제목이다. 바라건대 나처럼 과학 소설에 대한 흥미에 끌려 이 책을 잡는 실수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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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 석용중,이현숙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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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접하기 쉽지 않은 러시아의 과학 소설이라는 정보에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과 이 책을 두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우리들>을 선택했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선례를 남겼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고,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검증된' 작품이기도 하고, 또 소비에트 체제에 비판적인 소설을 간만에 접하는 즐거움도 맛볼 겸해서다. 그런데 아무래도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작가의 문체였다. 간결한 문장과 단어가 마치 기계 부품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성, 생략과 비약, 스피디함과 꼼꼼함을 오가는 상황 묘사와 전개, 전편을 휘감는 섬뜩하면서 차가운 분위기는 모더니즘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열린책들의 악명 높은 오탈자와 만나니 계속적으로 독서가 방해를 받는다. 분명 어려운 소설은 아닌데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이후 이렇게 몰입이 안 되는 소설은 처음이다.

또 하나, 이런 식의 디스토피아 소설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포맷이라는 점도 있다. 이성과 과학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고발, 그리고 이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소설은 <우리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멋진 신세계>와 <1984>에서 이미 교과서적인 지위를 얻었다. (카프카의 소설은 이와 달리 통제된 사회에 대한 공포를 '은유적으로' 넌지시 드러내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소설이 계속적으로 힘을 갖는 한 이유인 것 같다.) 보다 넓게 보자면, 이제 사회의 모든 세세한 면면들이 통제되고 억압되는 거시적 전체주의보다 '미시적으로' 작동하는 전체주의가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초판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만났더라면 좀더 내 마음을 움직였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너무 늦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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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뮤직 - 과학소설 1
그레그 베어 / 움직이는책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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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정신적 성숙은 모자란 유전공학자 버질 울람의 손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지능을 가진 세포. 이것의 의도하지 않게 증식하면서 인류가 파국을 맞게 되기까지의 모습을 그린 SF가 바로 <블러드뮤직>이다. (적어도 내겐) 상당히 신선한 주제였고 소설은 비교적 속도감 있게 읽힌다. 인간이 만든 괴물이나 몸 속에 거주하는 또 다른 존재의 이야기는 <프랑켄슈타인>과 <기생수>를 연상시키지만 파괴적이고 묵시록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고(영화 <28일 후...>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잠시 있긴 했다), 마치 세상의 종말에 천국으로 인도되는 듯 평화롭고 종교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인류의 종말이 새로운 종으로의 발전으로 귀결되는 결말 때문에 다들 <유년기의 끝>을 자연스럽게 언급하지 않았나 싶다.

초반부의 속도감 있는 전개는 상당히 흥미진진했으나 후반부에 이르러 정보 이론을 빌어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은, 원문이 원래 불친절한 것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솔직히 따라가기가 상당히 버거웠다. 시각적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면이 선뜻 눈앞에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 또한 지적할 수 있겠다. 아이디어의 참신함에 비해 소설적 얼개가 다소 미진했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깊은 인상을 준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기회가 닿는다면 원래의 단편 소설로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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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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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기다려왔다. 어깨에 힘주지 않고 즐겁게 페미니즘의 대의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남성, 여성을 편가르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책을.

저자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은 해방적이고 포괄적이며 생산적이다. 책은 서두에 페미니즘의 적이 (남자가 아니라) 가부장제, 성차별주의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가부장제는 권위와 동의어이며, 따라서 생득적으로 물려받는 특권으로 누군가가 누군가를 지배하는 사회라면 모두 페미니즘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계급 차별, 인종 차별, 아동 학대, 동성애 혐오 모두 페미니즘이 외면해서는 안 될 문제들이다. 이렇듯 페미니즘은 대단히 포괄적이며 그렇기에 또 그만큼 급진적이다.

벨 훅스는 소수의 여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귀족 페미니즘, 남성을 모두 적으로 상정하는 페미니즘, 행복보다 물질적 성공에 초점을 두는 페미니즘, 아카데미 내부에 들어앉은 강단 페미니즘, 그리고 무엇보다 왜곡된 페미니즘 상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유포한 미디어와 이에 편승해 이익을 챙기는 자본주의의 탐욕을 맹렬히 거부한다. 페미니즘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권위와 지배와 폭력이 없는 해방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지배가 있는 곳은 어디든 사랑이 부족하다.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꿈은 사랑이다. 그리고 결국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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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리 1 - 쥘 베른 컬렉션 02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2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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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리>는 정체가 알쏭달쏭한 소설이다. SF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고(지금의 관점에서 볼 때), 아동 소설이라 부르기에는 군더더기 설명이 많고, 모험 소설의 관점에서 보자니 해양 생태 보고서 같기도 하고, 네모 선장이라는 신비한 존재에 초점을 맞춰 미스터리 물로 보자니 결말이 뭔가 미진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애매모호함이 오히려 독서를 흥미롭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는 법. 그러니 발상의 전환을 하여 이렇게 뒤집어 말해보자. 허무맹랑한 공상이라 치부하기에는 과학적인 치밀함이 돋보이고, 어른 아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흥미진진한 모험물이며, 아울러 해양 생물과 지리에 대한 경이로운 지식과 탁월한 묘사가 펼쳐져 있고, 선장의 수수께끼는 모호하게 처리됨으로써 오히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19세기 말의 유럽은 과학에 대한 믿음이 커져가는 것과 동시에 신비에 대한 호기심이 그 이면에서 자라던 시절이다. 또한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쟁이 한계를 모르던 시절, 미지의 것에 대한 열광과 두려움이 공존하던 시절이다. 네모 선장과 아로낙스 박사가 바다를 무대로 펼치는 모험은 이런 시대 상황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텍스트다. 상상력과 과학, 낙관과 비관이 잘 조화된, 고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책이다. 지구본을 옆에 두고 노틸러스 호의 궤적을 따라간다면 독서의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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