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카 프라티카 동문선 문예신서 157
마이클 캐넌 지음, 김혜중 옮김 / 동문선 / 200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20여 년 동안 서양의 음악학은 다른 인문학적 조류에 발맞춰 변화를 모색해왔다. 한 마디로 말해 소수의 '위대한' 작곡가들 중심의 전통과 그에 바탕을 둔 경직된 이론적 접근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인데, 그런 과정에서 그간 억눌려있던 여러 목소리들이 분출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주변부로 밀려난 음악을 재평가하고(대표적으로 초기 음악 운동) 대중 음악을 포괄적인 음악사 흐름에 끌어들이는가 하면, 연주나 악기, 심지어 음반을 중심으로 역사를 구성하기도 한다. 문화 연구에 영향을 받아 사회학적,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음악사를 해석하는 작업도 있었고, 음악 전통의 산업적 물질적 경제적 토대를 검토하는 작업도 이어졌다. 영국의 마이클 캐넌의 <무지카 프라티카>는 이런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술로 꼽힌다.

이 책은 서양 음악의 역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작곡가들의 이름과 레퍼토리보다 오히려 사상가, 기호학자, 사회학자--베버, 벤야민, 바흐친, 바르트, 에코, 아탈리, 사이드, 제임슨 등--의 이름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음악적 스타일의 변화보다는 악기 발명과 그 메커니즘의 발전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시대의 변화에서 중요하게 간주되는 힘은 기보법과 인쇄술의 발전, 패트런의 변화, 콘서트홀과 대중 시장의 성장이다. 그래서 축음기와 녹음 장비, 전자 악기 등 테크놀로지가 음악 문화의 패러다임을 지배하게 된 20세기를 논의하면서 재즈와 록 같은 대중 음악에 일정 부분을 할애한 것은 자연스럽다.

<무지카 프라티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적인 음악 활동 이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런 활동들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관습과 시대적 조건의 변화들을 통해 기존의 음악사를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원문 자체가 딱딱한 이론서의 틀에 갇혀있는 데다가 번역을 거치면서 가중되는 어려움이 독서를 힘들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각주가 전혀 없어서 웬만큼 기초적인 음악 지식이 없으면 소화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공들여 있을 만한 가치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에이지 - 영혼의 음악
양한수 지음 / 아침이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수많은 음악이 있고, 음악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수많은 음악책이 있다. 음악에 따라 책의 구성과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클래식 가이드는 위대한 작곡가와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단일한 서사를 따라가는 교양의 장이며, 재즈 이야기는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끌려온 흑인들의 애환으로 시작한다. 록은 인종 융합과 사회 참여의 장을 중심으로 기술되며, 여기서 나온 저항의 이데올로기는 힙합에 이르러 더욱 심화된다. 한편 월드뮤직 산책은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관광객의 발걸음을 닮았다. 뉴에이지는 번잡함을 피하고 휴식을 위해 시골과 자연을 찾는 도시인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뉴에이지 영혼의 음악>도 제목에서 보듯 이런 관점과 그리 멀지 않다. 책은 음악 해설서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 뮤지션과 음반 중심의 실용적(편의적) 구성에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확하지 않은 문법과 어휘 구사, 감정적인 형용사와 주관적인 감상의 나열이 곳곳에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초적인 정보를 원하는 독자에게 꽤 유용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사실 이런 책을 읽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슨 음반을 사고 무슨 곡을 들을지 알려주는 것 정도니까.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 '사운드적으로는 수동적인 음악이고, 사상적으로는 히피 이후 기독교와 다른 영적 가치를 모색하는 흐름' 정도의 이해밖에 없는 내가 굳이 이 책을 선택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책의 강점은 뉴에이지 음악을 현대 음악의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 파악하여 포괄적으로 규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과 웨스트코스트 재즈에서 뉴에이지의 맹아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이 책의 심각한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나는 지금 저자의 해석에 반론을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정보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다.

책에는 사실의 왜곡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바그너를 줄기차게 후기 낭만주의라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바그너는 브람스보다 스무 살이나 많다. 파리의 만국박람회는 저자의 서술(1899년)과 달리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에 열렸고, 여기서 드뷔시가 영감을 얻어 쓴 곡은 <바다>가 아니라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다. 이런 사소한 오류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나가면서 툭툭 던지는 말이 사실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 비엔나 악파가 구체적인 주변 소음과 자연음을 탐구한 과정에서 새로운 음렬 기법이 나왔고, 이것이 훗날 샘플링 기법의 전범이 된다는 주장(p.73)은 처음 듣는 소리다. 바그너와의 대조를 부각시키기 위해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를 특권층의 전유물로 몰아붙이는 논리(p.273)도 기이하긴 마찬가지다. 대중 음악과 관련된 정보에서도 왜곡은 계속된다. 전혀 다른 장르인 punk와 funk를 붙여놓고 마치 동의어처럼 제시하거나, 별개의 지역에서 별개로 발전한 하우스와 테크노를 인과관계로 설정하거나, 크라프트베르크가 힙합의 흐름을 이었다고 우긴다(실상은 정반대이다). 하지만 가장 압권은 히스패닉에 대한 각주 설명이다. "중남미 제국에서 정치정세의 불안과 빈곤으로 인하여 자기 나라를 빠져나와 미국에 밀입국하는 자들이 끊이지 않는데, 이런 사람들을 '카리비언 블랙' 또는 '히스패닉'이라 부른다." 나는 혹시라도 이런 치명적이고 악의적인 왜곡이 확대 재생산될까 두렵다.

이런 오류들은 저자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한다. 그래서 뉴에이지 음악과 관련된 정보들도 솔직히 믿지 못하겠다. 열정과 부지런함은 분명 미덕이지만 그것만으로 글쓰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의 기본은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다소 오만한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고교 시절 과학 교과서를 다시 들춰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우주의 생성과 태양계의 구성, 원자 구조와 주기율표, 중력과 양자 역학, 지각 변동과 화석, 빙하기와 기상 변화, 생명의 출현과 세포의 신비, 그리고 인류의 진화의 문제까지. 물론 교과서처럼 정답과 정론으로만 이뤄진 책은 아니다. 수많은 가설과 추정과 실험과 오해와 고집이 바탕을 이룬 산물로, 자연의 수수께끼와 맞선 인간 지성의 도전의 기록들이다. 그래서 저자의 바램대로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만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밝혀주고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점은, 오늘날 우리가 우주와 지구와 생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불완전하고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현대 과학의 지형도를 흥미롭게 그려줄 뿐만 아니라 인간을 더없이 겸손하게 만들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굴
대니얼 맥닐 지음, 안정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런던의 국립 미술관 뒤편에 보면 국립 초상 미술관이라는 곳이 있다. 영국 역사에 중요한 인물들의 초상화(사진 포함)를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사람의 얼굴이 갖는 다양함과 미묘함을 이만큼 잘 보여주는 곳도 드물 것이다. 대니얼 맥닐의 <얼굴>은 이런 얼굴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해부학과 생리학을 비롯해서 역사학,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등 거의 모든 학문적 방법을 동원해 얼굴에 담긴 의미와 비밀을 탐색하고 있는, 말 그대로 얼굴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해부학, 개체성, 표정, 아름다움의 4부로 나눠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로 과학과 인문학의 이상적인 조합을 보여주는 글쓰기라는 점을 들고 싶다. 얼굴 생성 과정에 대한 진화론적인 설명과 얼굴 인식의 메커니즘의 고찰은 과학적 호기심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며, 가면, 화장 등 얼굴과 관련된 문화적 관습과, 거짓말, 웃음 같은 현상의 의미를 고찰해보는 즐거움도 있다. 입술이 장의 내벽처럼 내피라서 키스는 상대의 내면과의 접촉을 의미한다는 대목이나 우리의 뇌는 얼굴을 캐리커처로 인식한다는 대목, 그리고 일본의 가면극 노(能)에서 조명과 상징적 몸짓을 통해 가면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모코 마카이나 라브렛 풍습은 좀 충격이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든 순전히 학문적 관심이든 얼굴에 대해 흥미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
다니엘라 마이어.클라우스 마이어 지음, 김희상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옮긴이는 후기에서 털을 갖고 무슨 책이 되겠느냐고 했다지만, 사실 털은 기가 막힌 이야깃거리다.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짓기 좋아하는 인간이 자유자재로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신체의 일부인 털을 가만히 내버려뒀겠는가. 그래서 털은 그만큼 정치적 입장과 유행이 민감하게 표출, 전개되는 지점이었고, 또 그런 이유에서 사회적 억압이 가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털>은 이렇게 흥미로운 수염과 머리카락을 소재로 삼아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는 책이다.

책의 장점은 수월하게 읽힌다는 것이다. 서양사를 종횡무진 오가며 털이 시대와 장소, 종교에 따라 어떻게 의미를 달리했는지 보여주는 책으로, 수염 난 여성들에 대한 정보나 여성들이 털을 다듬기 위해 벌인 자기 고문의 사례들, 그리고 목욕술사와 외과전문의의 이야기 등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그럼에도 뭔가가 허전하다. 그저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었다는 느낌 정도인데, 흥미진진한 소재를 손에 들고도 그 가능성을 십분 펼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심층 분석보다는 표층의 사례에 치우쳐 있고, 그 사례들 또한 서양의 과거 역사 중심에 사전식으로 쭉 나열되어 있어서 읽는 도중에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책을 덮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지엽적이긴 하지만, 책의 곳곳에 격을 떨어뜨리는 생뚱 맞은 표현들이 들어가 독서를 방해한다. 큰 기대만 걸지 않는다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