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
다니엘라 마이어.클라우스 마이어 지음, 김희상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옮긴이는 후기에서 털을 갖고 무슨 책이 되겠느냐고 했다지만, 사실 털은 기가 막힌 이야깃거리다.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짓기 좋아하는 인간이 자유자재로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신체의 일부인 털을 가만히 내버려뒀겠는가. 그래서 털은 그만큼 정치적 입장과 유행이 민감하게 표출, 전개되는 지점이었고, 또 그런 이유에서 사회적 억압이 가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털>은 이렇게 흥미로운 수염과 머리카락을 소재로 삼아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는 책이다.

책의 장점은 수월하게 읽힌다는 것이다. 서양사를 종횡무진 오가며 털이 시대와 장소, 종교에 따라 어떻게 의미를 달리했는지 보여주는 책으로, 수염 난 여성들에 대한 정보나 여성들이 털을 다듬기 위해 벌인 자기 고문의 사례들, 그리고 목욕술사와 외과전문의의 이야기 등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그럼에도 뭔가가 허전하다. 그저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었다는 느낌 정도인데, 흥미진진한 소재를 손에 들고도 그 가능성을 십분 펼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심층 분석보다는 표층의 사례에 치우쳐 있고, 그 사례들 또한 서양의 과거 역사 중심에 사전식으로 쭉 나열되어 있어서 읽는 도중에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책을 덮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지엽적이긴 하지만, 책의 곳곳에 격을 떨어뜨리는 생뚱 맞은 표현들이 들어가 독서를 방해한다. 큰 기대만 걸지 않는다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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