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차와 이혼하라 - 자동차 중독 문화에 대한 유쾌한 반란
케이티 앨버드 지음, 박웅희 옮김 / 돌베개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자본주의의 병폐를 지적하는 말들 가운데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병주고 약주고'다. 애초부터 병을 주지 않았다면 약도 필요가 없겠지만, 자본주의는 이 둘 모두를 준다. 그런데 약이란 게 무릇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내해야 하는 법이라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해 또 다른 약이 필요하게 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시작되면서 지갑에서 돈이 술술 새어나가고, 이런 메커니즘으로 자본주의는 배를 불린다. 발을 한번 들여놓으면 여기서 빠져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자본주의 상품의 꽃인 자동차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무기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자동차는 일단 주인을 만나는 순간부터 주인을 배신하기 시작한다. 유지비, 교통체증, 주차난, 사고 위험 같은 직접적인 근심거리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 개인의 건강 위협, 인류의 환경 문제, 나아가 석유를 둘러싼 국제 분쟁에도 공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차를 버려라!

케이티 앨버트의 이 당돌한 책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똘똘하다. 자신의 주장에 대해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요, 충실한 자료조사와 상식에 근거한 논리를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설득시키고 있다. 1부는 자동차의 문화사라고 불릴 수 있는데, 19세기 말에 처음 등장한 자동차가 어떻게 순식간에 인류가 총애하는 물건으로 등극했는지를 보여준다(자동차는 20세기 문명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2부는 자동차의 해악보고서인데,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거론하여 자동차가 어떻게 삶의 질에 위협이 되는 존재인지 밝혀준다. 3부는 자동차와 결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거론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제아무리 자동차 예찬론자라고 하더라도 가슴 한구석이 뜨끔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아니면 중간에 책을 덮었거나.

책과 관련하여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책의 의도가 차의 해악에 집중하는 것이라 사람들이 왜 그토록 자동차에 매혹되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다소 미진하다는 생각인데, 특히 아쉬운 것은 자동차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운송 수단으로서만 여기는 태도다.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안겨주는 만족감 중에는 일정한 공간을 독점한다는 생각도 포함된다. 자동차라는 공간은 마치 집과도 같아서 그 속에서는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한다. 이것이 이동성과 결합하면 만족감은 극대화된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드라이브다. 드라이브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곳으로 이동한다는 목적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가 어디로든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는 욕망의 충족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공동체 의식의 회복도 꼭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자동차를 공동체 삶의 가치의 정 반대편에 두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자동차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게 해주기 때문에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또 하나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다. 이것은 외국의 사례를 수입할 때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기도 한데, 한국에서 자동차 산업은 특수한 지위를 갖고 있다. 한국이 급속도로 교통대국이 된 것은 정책적으로 장려한 결과로, 자동차 산업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고, 또 단일 산업으로는 자동차 산업만큼 고용효과가 탁월한 것도 없다. 산업 시스템 자체가 자동차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인구밀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차량 소유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교통 문제는 개인의 결단과 정부의 지원은 물론 산업 시스템의 개혁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양상을 띤다. 자본주의의 위력은 이래서 무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감 메디컬 사이언스 2
지나 콜라타 지음, 안정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논픽션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최근 국내에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는 미국 쪽의 논픽션들을 보면 대충 정형화된 틀이 있는 것 같다.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프롤로그에 이어 사건 해결에 매달린 인물들의 각고한 노력을 중점적으로 조명하는데, 여기에 그들의 성장과 이력이 적절하게 첨부되고 해당 주제의 간소한 역사가 독립된 장으로 들어가는 식이다. 그런데 불만인 것은 주제에 대한 관심에서 잡은 글이 주제보다는 인물들의 삶에 치중하면서(뭐, 여기까지는 괜찮다) 휴먼 다큐멘터리의 뉘앙스를 풍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책이 딱 그렇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미스터리를 다루는 책이 독감 자체에 대한 정보보다는 독감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분투했는지를 알리는 데 매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허탈한 것은 독감의 미스터리도 결국은 의문부호를 남긴 채 미완의 비밀로 남겨져 있다는 점이다. 본문의 표현을 빌자면 사건의 용의자는 잡았는데 살인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형국이다. 몰랐던 과거의 사실을 밝혀주고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주는 공로에도 불구하고 지향점과 종착점이 어긋나는 실망이 공존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폴 오스터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한 것이 <폐허의 도시>와 이어 <거대한 괴물>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의 글의 매력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달의 궁전>을 읽고 나니 내가 그의 소설에 대해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조금은 분명해졌다.

먼저 그의 글에는 작가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최근의 소설들이 메시지의 전달이든 풍자든 아니면 순수한 오락이든 작가의 집필 의도를 글 속에 드러내려는 경향이 많은데 폴 오스터는 철저하게 주인공의 삶을 전달하는 데 치중한다. 화려한 기교와 인위적인 장치를 모두 제하고 '스토리텔링'이라는 전통적인 임무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주인공의 삶에 몰입할 수 있다.

이런 그들의 삶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모종의 비극이다. 비극이라고 해서 엄청난 슬픔을 수반하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현대인이 느끼는 근원적인 상실감 내지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우연에 휘둘리는 인생의 아이러니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매혹적인 점은 그의 소설이 극히 사실적인 배경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현실적이고 신비적인 아우라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들어앉은 불가해한 진실이 마술적이고 계시적인 순간에 살짝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순간을 포착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능력이야말로 아마 폴 오스터의 가장 뛰어난 재주다.

3대에 걸친 주인공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광대한 벽화처럼 펼쳐지는 <달의 궁전>은 이 같은 폴 오스터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내가 이 소설에서 좋아하는 것은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고유명사들이다. 아폴로 우주선, <달나라 여행>, <80일간의 세계 일주>, 컬럼비아 대학, 센트럴 파크,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시카고 컵스, 뉴욕 메츠, 뉴욕 박람회, 랠프 앨버트 블레이크록, 브룩클린 미술관, 테슬라, 베트남전, 미국 서부, 인디언, 유타 주 사막 등... 이것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미국인들의 상상력을 규정해온 이름들이자 이들의 영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이름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기꾼 로봇 필립 K. 딕의 SF걸작선 3
필립 K. 딕 지음, 어윤금 외 옮김 / 집사재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필립 딕의 글은 여전히 읽는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테크놀로지 시대의 예언자라는 의미를 제하고도 그의 단편은 독특한 리듬을 갖고 있는데, 특별한 상황을 던져주고 여기서 비롯되는 기대를 막판에 뒤엎는 전형을 창조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붙들어매는 효과를 갖는다. 물론 그런 구성이 반복됨에 따라 참신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렇다면 그런 반전을 미리 짐작해보는 것도 그의 글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단편집이 늘 그렇듯이 모든 작품이 고른 수준의 만족을 주지는 않지만 필립 딕의 개성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앞서 소개된 단편집들에 비해 여기서 두드러진 점은 환각의 세계를 그려내는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분투하는 유기체 로봇을 그린 <전기 개미>에는 플라스틱 테이프의 펀치 구멍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나온다. <지도자에 대한 믿음>에는 약물의 힘을 빌어 지도자의 실제 모습을 보려는 주인공이 등장하며, <피리 부는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식민지>는 초반에 물건이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와 이 또한 환각을 다루었으리라 기대하게 하는데, 이런 기대는 완벽하게 배반당한다. 애초에 환각이라는 것이 실재의 인식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필립 딕 자신이 지독한 약물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런 주제가 가진 무게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F부족들의 새로운 문학 혁명, SF의 탄생과 비상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3
임종기 지음 / 책세상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SF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길--해당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본 뒤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대표작들을 일별하는 구성--을 택하고 있다. SF의 입문서마저 변변치 못한 국내 실정과 책세상 문고의 정형화된 포맷이 저간의 사정으로 작용했겠지만, 그렇더라도 저자의 목소리가 크게 부각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다. SF와 관련된 인터넷 문화가 발달되었기 때문에 굳이 책의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이와 비슷한 정보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SF 문학을 접하는 사람을 위한 무난한 길잡이 역할에 충실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차분한 어조로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배려한 서술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기대했던 바를 이야기하자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SF 문학 애호가들이 품고 있는 서구 문화에 대한 환상을 '행간'에서 읽고 싶었다. 내가 20년이 넘게 록 음악을 들어오면서 록 음악에 대한 나의 애착의 상당 부분이 미국과 영국에 대한 동경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SF를 탐독하는 애호가들 역시 나와 비슷한 욕망을 갖고 있으리라는 짐작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 책은 팬덤보다는 작품에 치중한 책이고, 따라서 위에서 행간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아무튼 좀더 많은 책들이 나와 SF에 관한 담론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럴 때 위에서 내가 기대했던, 서구적 상상력과 환상이라는 관점에서 SF라는 문화 현상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작업도 가능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