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요코 - 마녀에서 예술가로
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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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저께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작품을 뉴욕에서 발표한 백남준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그의 작품 세계에 공감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창조의 의지, 창조의 행위 자체가 주는 경외감 같은 것이었다. 자신이 만든 무엇으로 세상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클라우스 휘브너의 <오노 요코>에서도 비슷한 감흥을 느꼈다. 특히 요코의 경우는 훨씬 더 극적인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다. 만인의 스타의 아내이자 부유한 아시아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편견을 극복하는 드라마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은 예술가가 결국 세상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도록 굴복시킨 드라마가, 평화와 자유를 사랑한 한 영혼이 시대에 개입하고 세상을 바꾼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책은 이런 극적인 면을 자제하고 그녀의 예술에 초점을 맞춰 차분하게 서술한다.

20세기 중반 뉴욕의 플럭서스 운동은 현대 미술이 테크닉에서 아이디어를 거쳐 이제 행동으로 무대를 옮겼음을 보여주는 조류였다. 이제 예술은 세상과 유리된 채 미술관의 프레임 속에 갇힌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작품 속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세상을 달리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 이 책을 빼곡이 메우고 있는 도판들과 행동 지침들을 보면 오노 요코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 간 명철한 지성의 소유자였는지를 알 수 있다. 세상의 편견과 맞선 그녀의 삶이 그대로 예술에 반영되는 순간이다. 물론 그녀는 조형 미술만이 아니라 영화와 음악에서도 부단한 창조적 걸음을 내디딘 전방위적 예술가였고, 또 사업에도 특출한 재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그녀에게 반감을 가졌는지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도저히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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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상록, 예술가의 초상 02
솔로몬 볼코프 엮음, 김병화 옮김 / 이론과실천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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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정치를 주제로 삼아 가장 할 말이 많은 클래식 음악 작곡가라면 단연 바그너와 쇼스타코비치를 들겠다. 바그너가 19세기 중반 유럽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자발적으로 뛰어든 풍운아라면, 쇼스타코비치는 불행히도 20세기 소련의 스탈린 치하 시대라는 그 때, 그 곳에 있었던 작곡가라고 할 수 있다.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굴곡을 정면으로 부딪히며 살았던 그가 들려주는 우울한 예술가의 초상은 그래서 더욱 비극적이고 또 매혹적이다.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가 만년의 쇼스타코비치를 인터뷰한 것을 정리한 이 <증언>은 발간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몰고 온 문제작이었으며, 금년 초에 출판 25주년을 기념하는 판본이 다시 나올 정도로 계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이 책에서 쇼스타코비치가 회상하는 것이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생애나 음악에 대한 언급이 책 여기저기에 등장하지만, 책의 중심은 그가 알고 지냈던 동시대의 수많은 예술가(와 정치가)의 이름들이 차지한다. 책의 하나의 큰 줄기는 음악의 축을 따라 진행되고, 또 하나는 스탈린의 공포 정치를 축으로 진행된다. 물론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스탈린과 쇼스타코비치의 관계다. 책은 스탈린을 채찍과 당근을 주며 작곡가를 길들인 독재자로 그리며, 본인은 이런 정치와 명성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신성한 바보 유로지비(yurodivy)로 묘사한다. 여기에다가 내부자의 시각에서 동료 예술가들을 평가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특히 마야코프스키와 프로코피에프에 대한 그의 평가는 충격적이다.

결국 <증언>은 가혹한 시대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들과 기회주의적이고 무능한 동료들의 행태를 매섭게 몰아붙이면서, 자신에게 가해진 비난과 편견과 오해를 덜어내려는 쇼스타코비치의 자기 변호인 셈이다. 그러니 책을 덮고 나자 슬그머니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과연 쇼스타코비치는 어느 정도로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그는 철저하게 시대의 희생자인가, 아니면 실은 바그너를 능가하는 고도로 정치적인 인물인가. 아니면 이 모두가 솔로몬 볼코프의 날조의 산물인가. 모든 의혹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쇼스타코비치가 대단히 복잡하고 모순된 지성을 소유한 작곡가라는 점이고, 20세기 음악사에서 매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또한 그의 시대와 고국의 상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은 사족에 불과하다.

간만에 러시아적인 정신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되어 즐거웠다. 더불어 다시 체호프의 소설을 들춰볼 이유가 생긴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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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 - 풍월당 주인 박종호의 음악이야기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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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에 관한 실용적인 가이드는 딱 두 종류다. 명곡들을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사전 형식의 곡목해설집과 필자의 주관적인 감정을 담은 에세이. 곡목해설집은 레퍼런스로서는 쓸모가 있지만 책으로서 읽는 재미는 없으며, 에세이는 정작 음악 이야기는 별로 없고 필자 개인의 추억과 감상이 주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곡목해설집은 음악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말해주지만 우리가 실제로 음악을 경험하는 바와는 거리가 있으며, 에세이는 필자의 음악적 경험은 있지만 그것이 음악 구조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둘 사이에 깊고 아득한 심연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음악을 직접 상대하면서도 책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는 책은 없는 것일까. 왜 음악 형식과 경험이 어떤 식으로 매개되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책은 없는 것일까.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역시 전형적인 음악 에세이 구성을 따른다. 음악에 관한 서술은 형용사와 비유 몇 개를 사용하여 대충 넘어가고, 주로 곡에 관한 부수적인 정보, 음반에 관한 정보, 곡 또는 연주와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이 글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이 사람은 이 곡의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려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여기서도 답을 찾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는 진회숙의 <클래식 오딧세이>가 한발 앞선다. 음악 전공자답게 곡에 대한 경험을 활자로 풀어쓰려는 노력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과 후일담이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는 <클래식 오딧세이> 또한 마찬가지며, 더욱이 전공자로서 갖는 자부심이 지나쳐 종종 독서를 불편하게 하는 점이 많았다. 꽤 유용하게 읽었으면서도 얼굴을 찡그리고 봤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은 음악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음반에 관한 책이며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에 관한 책이다. 펭귄가이드를 볼 요량이 아니라면 무슨 음반을 살까 망설이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가이드이며, 음악을 주제로 한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동반자이다. 그러니 이런 책에 위와 같은 불평은 적절치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음악 앞에서 감상적으로 되지 않으면서도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을, 음악과 필자가 일대일로 당당하게 맞서는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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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
더글라스 아담스 지음 / 새와물고기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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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취향의 장벽은 몰입을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특히 SF 소설을 읽을 때 취향의 문제를 실감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예로 알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가 그러했는데, 더글라스 아담스의 이 책 또한 나를 어지간히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숨겨진 걸작 취급을 받으며 팬들 사이에 회자되던 이 책은 소문을 입증할 만한 책이기는 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다룬 책으로 황당한 장치와 우연의 남발, 생뚱 맞은 대화, 별난 캐릭터, 진지한 주제 바보 만들기 등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다. 하지만 재미라는 것은 머리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일텐데, 재미를 노렸음직한 대목이 별반 웃기지가 않다. 거참 낭패스럽다. where is the punchline? 내년에 개봉될 영화를 보면 조금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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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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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2천 마일 이상 뻗어있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매년 2천 명 이상이 종주를 시도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10퍼센트도 안 되고, 평균 6개월을 걸어야 끝자락에 도달한다는 멀고 험한 코스다. 이 길을 40대 중반의 두 친구가 걷기로 했다. 진지한 의도나 나름대로 결심한 바가 있어서 모험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우연히 마을 뒷자락에서 트레일 표지판을 보고 충동적으로 나선 것에 가깝다. 그렇다고 등산 경험이 많은 친구들도 아니라서 한 친구는 첫날부터 배낭이 무겁다며 물건들을 계곡에다 던져버렸다!

이 위태롭고도 매혹적인 산행기는 무엇보다 강박적이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다.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면서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꼭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길을 밟아봐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도 없다. 힘들면 중간에 샛길로 내려와 땡땡이를 치기도 하고 코스를 바꿔 차를 타고 건너뛰기도 한다. 등산의 전문가가 특별한 산행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숲의 전문가가 애팔래치아 산맥이 자랑하는 풍성한 수종을 보고하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는 산행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묘미와 즐거움이 있다. 티격태격하며 거리를 두고 산을 오르는 주인공들이 만나는 다양한 인물 군상은 물론, 트레일의 역사와 미국 동부의 숲의 풍경, 그리고 남북 전쟁, 석탄 산업, 관광 산업 같은 미국 근대의 역사까지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자연에 맞서는 거대한 드라마 대신 소소한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우리들이 삶에서 쉽게 얻는 편의들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다시 깨닫는다. 숲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품고, 가족과 우정의 소중함을 다시 돌아본다. 고국의 자연을 몸으로 하나하나 체험하면서 미국 사회를 반성적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빌 브라이슨의 유쾌하면서도 지적인 문장은 이런 깨달음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해주는 최상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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