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2천 마일 이상 뻗어있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매년 2천 명 이상이 종주를 시도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10퍼센트도 안 되고, 평균 6개월을 걸어야 끝자락에 도달한다는 멀고 험한 코스다. 이 길을 40대 중반의 두 친구가 걷기로 했다. 진지한 의도나 나름대로 결심한 바가 있어서 모험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우연히 마을 뒷자락에서 트레일 표지판을 보고 충동적으로 나선 것에 가깝다. 그렇다고 등산 경험이 많은 친구들도 아니라서 한 친구는 첫날부터 배낭이 무겁다며 물건들을 계곡에다 던져버렸다!

이 위태롭고도 매혹적인 산행기는 무엇보다 강박적이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다.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면서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꼭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길을 밟아봐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도 없다. 힘들면 중간에 샛길로 내려와 땡땡이를 치기도 하고 코스를 바꿔 차를 타고 건너뛰기도 한다. 등산의 전문가가 특별한 산행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숲의 전문가가 애팔래치아 산맥이 자랑하는 풍성한 수종을 보고하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는 산행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묘미와 즐거움이 있다. 티격태격하며 거리를 두고 산을 오르는 주인공들이 만나는 다양한 인물 군상은 물론, 트레일의 역사와 미국 동부의 숲의 풍경, 그리고 남북 전쟁, 석탄 산업, 관광 산업 같은 미국 근대의 역사까지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자연에 맞서는 거대한 드라마 대신 소소한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우리들이 삶에서 쉽게 얻는 편의들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다시 깨닫는다. 숲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품고, 가족과 우정의 소중함을 다시 돌아본다. 고국의 자연을 몸으로 하나하나 체험하면서 미국 사회를 반성적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빌 브라이슨의 유쾌하면서도 지적인 문장은 이런 깨달음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해주는 최상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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