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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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해진 기사 하나. 동남아를 강타한 최악의 지진해일에도 불구하고 야생 동물의 피해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동물들이 빼어난 감각으로 해일이 밀려올 것을 미리 감지하여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앞에 몰려오는 파도를 보고도 멀뚱하게 당하고 만 인간의 감각은 도대체 무슨 고장이라도 난 것일까? 왜 인간의 감각은 이렇게 둔한 것일까?

이런 질문을 품은 사람이라면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을 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공기 중의 전자기장에 큰 변화가 생겨 정전기가 발생하는데, 인간 피부에 비해 훨씬 건조한 동물의 피부가 이런 정전기에 민감하게 반응해 털이 곤두서고 몸을 떤다는 것이다(p.150).

이 책은 감각에 관한 온갖 지식을 망라한 백과사전으로, 전체적으로는 교양 과학서보다 인문서에 좀더 가깝다. 생물학적, 발생학적, 병리학적 정보들과 흥미로운 실험들이 많지만 그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감각과 관련된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사례들의 소개이다.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나 <색의 유혹> 같은 개별적인 감각을 다루고 있는 책들도 많지만, 인간의 감각을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그것도 시적 향취를 더해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여전히 독특하다. 더욱이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통합감각(공감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더한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장은 공감각과 미각이었고, 아쉽다면 미묘한 감각(과 왜곡)을 두루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알코올 음료에 대한 대목이 없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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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색스 지음 / 살림터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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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회화에 나타나는 강렬한 원색이 정신병으로 인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최근에 읽은 <우주의 고독>에서는 외계인에 납치되었음을 주장한 사람들이 측두엽 간질 환자라는 가설을 제기한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10분 이상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 기이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이다... 벌써 10년도 전에 국내에 소개되어 지금은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바로 이렇게 뇌신경 기능의 이상으로 인해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기이한 세상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놀랍고도 신기한 사례들로 가득한 이 책은, 그러나 그저 감동과 휴머니즘을 의도한 것 이상이다. 인식, 감각, 기억, 의지, 아이덴터티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시도하는 책이자, 병리와 인간을 통합하여 질병에 대한 대안적인 접근을 모색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신경계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기이한 인식이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기 위한 나름의 적극적인 반응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질병에서 정상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오히려 질병의 상태가 행복할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 개개인을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존중하면서 그들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의학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길을 열어주고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이보다 더 설득력 있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책도 드물 것이다. 요즘 예전의 책들이 속속 복간되면서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 유행이던데, 이 책이야말로 하루빨리 복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골고루 나눠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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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의 황금궁전 - 코르토 말테제
휴고 프라트 지음, 홍은주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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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제일 가치가 다양성에 있고, 그래서 의미 있는 외국의 문화가 적극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는 기대에 비해 그다지 재미가 없다.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주인공의 흥미진진한 모험을 따라가는 설렘보다는 의무감에서 역사책을 학습하는 듯한 고역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코르토 말테제의 자유롭고 고독한 코스모폴리탄주의와 냉소적인 그림체와 유머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의 먼 후계자인 <마스터 키튼>이 오히려 더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기억에 남는다.

출판사에게 묻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성완경 교수의 <세계만화탐사>를 보면 이 시리즈는 수채화로 되어 있는데, 왜 흑백 만화로 발간했을까? 이 때문에 원작의 매력이 치명적으로 손상되고 말았다. 또한 시리즈를 순차적으로 발행하지 않아서 익숙해야 할 캐릭터가 중간 중간에 생경하게 등장한다. 특히 전체 시리즈의 기초가 되는 제1권은 이후의 인물 전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작품으로 반드시 먼저 소개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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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고독 - 과학 오디세이 1,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는가?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 이한음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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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표는 분명하다. 공상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외계인의 문제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따져보자는 것. 그래서 외계인은 어떤 모습이며, 어떤 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어떻게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지, 또 그들은 어떻게, 왜 그 먼 거리를 날아오는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추리한다. 아직 목격되거나 밝혀지지 않은 사실에 대해 접근하려면 기존의 것을 둘러보는 것이 순서일 터. 따라서 외계인의 존재를 이야기하려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고찰이 먼저이며, 외계인의 외양과 감각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생명체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어떤 외양과 감각을 발전시켰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의사 소통 가능성을 다룬 장에서는 가장 객관적인 학문인 수학이 도구로 활용되며, 외계인의 여행을 다룬 장에서는 현대 물리학 이론이 동원된다. 결국 외계인학(책의 원제)은 자연 과학이 동원된 생물학/인간학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영리한 책이 실은 그렇게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아마 그것은 외계인에 대해 갖는 우리의 상상의 지점이 외계인과 인간이 만났을 때 벌어질 흥미진진한 드라마(혹은 파국)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어떤 물질로 만들어졌고, 어떤 식으로 번식을 하며, 어떤 감각 기관으로 세상을 인식하는가 하는 개체적이고 국부적인 사항보다는 그들이 먼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로 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마침내 지구에 왔을 때 벌어질 여러 갈등 같은 집단적인 드라마에 우선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 책을 반길 사람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한 기본적인 과학적 지반을 필요로 하는 과학 소설가 지망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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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수레 - 옛 중국인들의 여섯 가지 과학적 상상
홍상훈 지음 / 솔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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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옛 문헌들에서 인조 인간과 UFO 이야기를 찾아낸다. 혼란스러운 현대사 초엽에 쓰여진 과학적 유토피아 소설을 소개한다. 발상만으로도 50점은 따고 들어갈 이런 시도는(저자는 '고전의 대중화 작업'이라 부른다) 중국의 고전 문헌들에서 과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글을 찾아 여섯 가지 주제에 따라 정리하고 있다. 이런 시도의 밑바탕에는 물론 동양의 전통 문화가 정신적 가치만을 강조한다는 통념의 이면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있었겠지만, 사실 이 책은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경쾌하고 다소 산만해서 그저 부담 없이 읽는 민간 설화집에 가깝다.

예기치 않은 이야기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있지만, 하나의 책으로서의 통일성이나 구성의 치밀함은 떨어진다. 쉽게 말해 억지스러운 구석이 많다. 가령 동양의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인형 이야기를 인조 인간으로 설명하거나 마술 책상을 컴퓨터로 해석하는 대목은 아무리 양보해도 저자의 지나친 상상이다. 또 의술을 다룬 대목은 과학적 발상이라기보다 풍자 문학에 가깝다(재미있는 것은 저자 스스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중국에도 서양과 비슷한 과학적 사고와 세계관이 나름대로 구축되어 있었음을 깨닫기보다는, 땅덩어리와 인구와 역사가 얼만데 그런 색다른 상상력이 한둘 없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단편들에 저자가 나름대로 붙인 코멘트에 있다. 길지는 않지만 중국인의 사고와 서구인의 사고를 비교하며 나름대로 해명(?) 비슷한 작업을 하는데, 이 대목이 신선하다. 어차피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이므로 기술 문화가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고, 이런 기술을 추진하는 욕망 역시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 아닌가. 결국 문제는 기술을 대하는 사고의 차이일 것이다.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넘어 좀더 견실하고 독창적인 시도가 될 수도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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