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색스 지음 / 살림터 / 1993년 2월
평점 :
품절


고흐의 회화에 나타나는 강렬한 원색이 정신병으로 인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최근에 읽은 <우주의 고독>에서는 외계인에 납치되었음을 주장한 사람들이 측두엽 간질 환자라는 가설을 제기한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10분 이상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 기이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이다... 벌써 10년도 전에 국내에 소개되어 지금은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바로 이렇게 뇌신경 기능의 이상으로 인해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기이한 세상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놀랍고도 신기한 사례들로 가득한 이 책은, 그러나 그저 감동과 휴머니즘을 의도한 것 이상이다. 인식, 감각, 기억, 의지, 아이덴터티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시도하는 책이자, 병리와 인간을 통합하여 질병에 대한 대안적인 접근을 모색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신경계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기이한 인식이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기 위한 나름의 적극적인 반응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질병에서 정상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오히려 질병의 상태가 행복할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 개개인을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존중하면서 그들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의학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길을 열어주고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이보다 더 설득력 있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책도 드물 것이다. 요즘 예전의 책들이 속속 복간되면서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 유행이던데, 이 책이야말로 하루빨리 복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골고루 나눠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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