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한 다음날 아침은 요리가 취미시라는 모코 어머니가 맛난 아침을 잔뜩 차려주셔서 나는 밥을 2공기나 먹어야 했다. 식사 후, 모코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출발! 목적지는 쿠니사키 반도.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일본 고대사를 좀 공부하다 보니까 일본 고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었다.
어제는 한밤중에 도착해서 몰랐는데 모코의 집은 벱푸만과 벱푸만을 둘러싼 츠루미산이 눈앞에 펼쳐진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다. 경치가 탁 트인게 매우 상쾌했다. 밤새 비가 내려서 국도는 젖어 있었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도중에 마츠리를 열고 있는 절에 들려봤다. 아주 높은 계단 위 좁은 땅위에 절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거기서 불경이 들어있는 통을 돌리는 거랑(옛날 사람들이 글을 몰라 경을 못 읽으니 그 대신 경이 든 통을 돌리는 걸로 읽는 걸 대신했다고 한다), 올해의 운세를 점치는 거랑, 제비뽑기(참가상인 찹쌀떡 2개 뽑았다-_-), 한해의 액운을 몰아내기 위해 스님이 대나무채로 양 어깨를 먼지나도록 팍팍 쳐주는 것도 했다. 절 주위는 커다란 편의점이 있을 뿐 주위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큐슈JR 선로와 나란히 북상하여 우사 신궁에 도착. 이 신궁은 일본 3대 신궁의 하나라고 한다. 경내가 굉장히 넓었고,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보물관 건물은 최근에 지은 것인데 깔끔하게 지어져 있었다. 보물관 앞의 연못과 아주 잘 어울리는 풍경. 신궁을 둘러보고 기념사진도 찍고 뒷문으로 신궁을 나오자 관광객 상대 상점이 늘어서 있었다. 거기서 시럽같은 걸 바른 숯불구이 떡꼬치와 유자차를 사먹었는데, 가게 할머니가 우리 보고 미인이라고 칭찬을. 호호호~
그리고는 박물관에 갔다. 논밭 한 가운데 위치한 박물관으로, 건물 주위에 고분들이 위치해 있었다. 쿠니사키 반도 여기저기에 위치해 있다는 마애불의 실제 크기 모형이 현관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래해 온 불교와 건축 문화 등이 어떻게 큐슈로 들어와 퍼졌으며, 문화의 전파에 따라 문화양식이 어떻게 변화해갔는가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안내판을 보았다. 박물관 자체는 실제 유물도 많았지만, 유적의 모형이 많았고, 실제 유적 모형 안에 들어가 볼 수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후쿠아먀에 있던 현립히로시마역사박물관도 그랬지만, 최근 지어진 일본의 지방 박물관들은 단순한 유물의 전시 뿐 아니라, 당시 시대상을 체험할 수 있게해주는 모형 시설과 역사 설명 시설들에 신경을 많이 쓴 거 같다. 사방을 금박으로 칠한 암자의 모형과, 일본 전통 시골 주택 안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어두운 박물관 안을 나와, 표주박을 엎어놓은 것 같이 만든 고분도 구경했다. 고분 위에 올라가니 작은 사당이 세워져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너른 들판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너는 정말 이런 풍경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셔터를 누러주면서 모코가 한마디.
그리고 우리는 박물관 안에서 보았던, 마애불이나 암자를 실제로 보려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런데, 길을 헤매다 결국 지쳐버려서 벱푸로 돌아가기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산속 인적없는 도로를 지나게 되었는데, 내리막길을 달리던 도중, 어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다른 아닌 토토로의 정거장이었다! 길 옆에 계단식 논 가운데로 몇채의 집이 옹기종기모여있는 작은 마을이 있고, 길 한쪽은 절벽이었는데, 그 절벽 밑의 버스 정거장에 커다란 토토로 간판과 고양이 버스 간판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횡재냐!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기뻐 날뛰며 차를 멈추고 구경을 하였다.
산길을 빠져나온 차는 석양에 물든 바닷가를 따라 달리다 벱푸로 들어섰다. 오늘의 숙소는 모코가 특별히 잡아둔 일본식 온천여관. 벱푸 온천은 언덕 위에도 있지만, 바닷가를 따라서도 길게 온천여관이 늘어서 있었다. 그 중의 한곳으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정식을 먹고, 온천탕으로 갔다. 온천탕 자체는 자그마했는데, 글쎄, 노천온천이 바닷가를 향해 나있었다! 이미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 벱푸만 건너편의 불빛이 보였다. 조용한 파도소리도 들려왔다. 내일 아침에도 꼭 와야지~
나를 위해 휴가까지 내주고 종일 운전까지 해 준 모코에게 감사, 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