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학교들고 토요 휴교를 하는 날. 창조과학회에서 주최하는 제1회 지질답사를 쫓아갔다 왔다. 그 전날 저녁, 지난 번 근무학교 선생님들과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얘기를 듣고는 바로 전화로 신청하고 쫓아간 답사. 내가 쫓아간 과학 선생님들은 두분 다 남의 본보기가 될 만한 기독 교사들. 나야 무늬만 천주교 신자구, 진화론이니 창조론이니 머릿 속에서 편리하게 구분해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년에 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한 공개수업을 하다가 창조론 얘기를 진지하게 꺼내시는, 존경하는 교감 선생님(울 학교도 기독교 계통 재단) 말씀을 듣고 관심이 생겼다. 대학원생 시절 , [한국에서는 진화론을 교육하나, 창조론을 교육하나]하고 만나자마자 다짜고자 질문하던 어느 외국인 생물학 교수 생각도 나고. (그 교수님이 원하는 답은 진화론이었음) 창조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어떤 증거를 제시하는 것일까?

그러나 답사 여행은 만만치 않았다. 새벽 6시50분 고속버스로 서울로 출발하여, 잠실 올림픽 경기장 앞에서 1차로 일행이 떠난 것이 거의 9시. 용인에서 나머지 일행이 합류. 버스는 일반 관광버스보다 좁고 좌석도 뒤로 안 젖혀지는 중형 버스. 안그래도 학생들 휴교로 더욱 밀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첫번째 목적지인 충북 제천에 도착. 도담 삼봉을 곁눈으로 보고, 다음 목적지로. 우리가 가는 곳이 워낙 minor한 곳들이라 일단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차는 안 막혔지만, 왜이리 갈 길은 먼지. 지질학 교수님의 강의는 차내에서 계속 되었지만 뒷좌석에 앉은지라 거의 안 들림. 차내 마이크 설비도 없음. 주변의 석회암 절벽과 구비구비 흐르는 강들만 기억에 남음. 그 경치들이 전부 한국의 그랜드 캐년이다라는 말씀은 기억에 남음. 여기가 건조기후가 아니라, 식물들로 덮혀있고, 사람들이 그 위에 살고 있어서 폼이 안나는 것뿐이라는 말씀. 그렇게 버스는 달리고 또 달려서 겨우 고씨동굴 앞 식당가에서 늦은 점심을 먹음.


동굴
드디어 고씨 동굴로 향하는 다리 위. 다리 앞에 얼굴은 꿀꿀이요, 몸은 다람쥐인 이상한 마스코트가 2개 서 있어서 분위기 망침.


동굴 안 물흔적
고씨 동굴은 동굴 입구에서 헬멧을 쓰고 가게 되어 있는데, 조금 들어가자 이게 왜 필요한지 알았음. 허리를 구부리고 지나가야하는 좁은 통로를 지나자, 교수님이 위 사진에서 보이는 흔적을 가르키시며 이게 바로 노아의 홍수같이 거대한 물의 기운이 지나가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흔적이다라고 하심. 수십만년에 걸쳐 방울방울 흐르는 지하수가 이런 흔적을 만들 수는 없다고 하셨음.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군. 흠흠. 끄덕끄덕.

시간은 이미 예정보다 대폭 지연. 첫번째 단체 답사라 시행착오가 많음. 다음 목적지인 통리 협곡은 도대체 어디냐. 앞자리로 옮긴 보람 없이 정신없이 졸다가 도착. 난 가파도키아에서 2시간동안 입 꼭 다물고 가이드를 따라가는 데만 집중했던 협곡 도보 답사를 상상했는데, 버스는 한적한 산길 입구에 멈춰섰고, 아직 새잎이 돋지 않은 나무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걸어가자, 더 이상 가기 힘든 낭떠러지 등장. 나무들에 가려서 잘 안보이는 낭떠러지와 건너편 절벽 사이로 좁은 협곡이 있고, 협곡이 시작되는 곳으로는 미인 폭포가 떨어지고 있음. 그런데 이 곳이 지질학계에서는 한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함. 시야를 방해하는 나무들이 원수로다.


통리협곡
 

저 나무들 건너편이 또다른 절벽. 그 밑이 협곡. 사진 오른쪽으로 가면 미인 폭포가 있음. 사진 왼쪽은 아래편 사진과 같은 풍경. 교수님 주장으로는 이런 거대 협곡이 어떻게 수십만년간 조금씩 풍화 침식되어 생기냔 말인가! 단시간에 엄청난 힘을 받아서 그런거다! 곧 홍수론이다!임.


협곡

더 이상 접근 못하게 울타리가 쳐진 곳에서 찍은 사진. 저 밑으로 영동선 철길이 달리고 있고, 철길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도계역이 나옴. 영동선, 조만간 꼭 타보고 말테다!

단  두 곳밖에 보지 못했는데,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교수님은 석탄박물관에는 늦어서 못가지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노천 석탄층이 발견된 곳을 가보자고 하셨다. 그리하여 버스는 폐가가 즐비한 사북 탄광촌을 지나 남으로 남으로...그래도 탄광은 정책상 의미도 있고하여 돌아가고 있었음. 탄을 저장하고 실어내는 시설들은 처음으로 봄.

탄광촌을 벗어나 사람의 발길이 쉬 닿지 않는 깨끗한 자연을 보는 건 좋았지만, 어느덧 도로 표지판이 부산지방도로관리청으로 바뀌자(버스는 경북 영주에 진입) 사람들의 표정 변함. 나처럼 서울 외곽에서 온 사람들은 집에 갈 걱정. 최악에는 저녁식사 예정지인 태백에서 내려 근처 큰 도시로 나가 심야 우등 고속을 탈 생각까지 함. 

어린 대학생들과 나이든 교수님들도 계셨기 때문에, 결국 일정을 바꿔 그대로 영주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기로 결정. 그런데 영주 나들목까지도 한참 국도를 달림. 중간에 봉화쉼터라는 국도벽 간이 휴게소에서 저녁식사 해결. 경상도 음식은 그다지 기대를 안하지만, 여기서 먹은 백반은 정말 맛있었음. 


봉화쉽터
밥을 먹고,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선배 선생님이 사주시는 간식거리를 들고 나오니, 밖은 깜깜. 정신없는 상태에서 기념으로 한장 찍음. 저녁식사 자리에서 귀가길 카풀을 긴급 결성. 천안으로 가는 교수님과 대학생 팀에 얹혀가기로 함. 휴~ 다행이다.

그리하여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 그 때의 후유증으로 이번 주는 고열과 몸살에 시달리다, 오늘에야 겨우 회복기미. 그래도 나름대로 (여러가지 의미로) 의미있는 답사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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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4-29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너무 이쁘세요. 엄살이 심하십니다 ㅠ.ㅠ;;;
그나저나 빨리 건강해지시길...

BRINY 2005-04-29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살이라뇨? 제가 언제 엄살을...? 아, 그 마스코트 얘기라면, 실제로 그런 황당한 마스코트가 저 다리 입구에 딱 서있었다는 얘긴데요^^;;

날개 2005-04-2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님 사진이군요...!+.+ 너무 귀여우세요~ (앗, 귀엽다고 하면 실례인가요? ㅎㅎ)

perky 2005-04-30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넘 예쁘세요. 선생님 분위기도 물씬 풍기구요. ^^ 이런곳이 있는 줄 몰랐었는데,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참 멋진 곳들입니다.

BRINY 2005-04-30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가 귀엽다는 말은 많이 듣지만, 이렇게 여러분께서 예쁘다고 하시면^^;; 옆에 유치원생 하나 끌리면 딱 어울릴 사진이라 별로 맘에 안 들었지만, 워낙 찍은 사진이 없어서 올렸는데, 그냥 놔둬야 겠네용~